▲ 일러스트 | 김채형 기자
‘8호님 댓글 보면 참 연애 잘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드네요. 술 한 잔 하고 싶어요.’ 7월 31일 고려대학교 대나무 숲(고대숲)에 올라온 한 제보다. 실명 대신 1호, 2호 등 호수로 자신을 표현하는 고대숲 관리자 들은 제보로 들어온 글을 선별해 게시한다. 철저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 관리자의 속성은 이용자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본교 재학생으로 구성된 관리자가 ‘내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호기심도 한 몫 했다. 이에 9명의 고대숲 관리자 중 8호 관리자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8호 관리자가 다른 관리자의 의견을 수합했으며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 언제부터 관리자가 됐고,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8호) 7월 13일부터 신입 고대숲 관리자로 선정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대숲에 댓글을 열심히 남기는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댓글 다는 것을 넘어서 직접 제보를 검토하고 올려보고 싶어서 관리자에 지원했었습니다.”

 - 관리자를 선발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관리자가 더 필요하게 되면 고대숲 페이지에 관리자 모집 공지 글을 올린 후 페이스북 메시지로 지원자를 받습니다. 지원자에게 각자 고대숲 관리자에 어떤 각오로 임할 것인지를 묻고, 기존 관리자들 간 협의를 거쳐 선정합니다.”

 - 관리자끼리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저희끼리는 서로의 정체를 알고 있고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통해 소통합니다. 관리자들끼리 휴대폰 번호도 교환했고, 이따금 정기모임도 합니다.”

- 고대숲 운영 규칙에는 무엇이 있나
  “관리자끼리 공유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좋아요’는 공지글에만 누르고 제보를 올린 글에는 누르지 않는다. 둘째,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글에는 댓글을 삼간다. 이 두 가지 규칙은 관리자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정했습니다. 셋째, 숲밍아웃은 금지한다. 넷째, 공지글과 같이 관리자가 직접 작성한 글에는 ‘본 게시물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이 직접 작성하였습니다’를 적는다. 다섯째, 1시간에 2개 이상의 글을 업로드하지 않는다. 이는 페이지를 보는 분들의 타임라인을 도배하지 않기 위해서 정한 제한선입니다. 마지막으로 페이스북 메시지 제보는 받지 않는다. 이는 관리자도 제보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게 해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 제보는 하루에 몇 통 정도 들어오나
  “제보는 적으면 하루에 30개, 많으면 70개 정도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 게시할 글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올라오는 제보들 중에서 반응이 흥할 것 같은 제보를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관리자가 올립니다. 관리자마다 관심사가 다르므로 게시글을 어떤 관리자가 올리느냐에 따라 그 기준도 다르겠지요. 그렇지만 타인을 비방하거나 저격하는 글,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글, 고대숲에 올리지 않아도 실명으로 충분히 올릴 수 있다고 생각되는 글, ‘ㅇㅇ 학과의 ㅇㅇㅇ씨 너무 예쁘세요, 어떻게 찾을 방법 없을까요?’ 와 같이 연애 흥신소의 분위기를 풍기는 글들은 공통적으로 명백한 필터링 대상입니다. 이미 올린 글은 구글 드라이브 문서에 표시를 해 중복으로 글을 올리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 고대숲이 타 학교 대나무 숲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고대숲은 제보를 페이지에 1시간에 2개 이상 업로드 하지 않는다는 운영 규칙이 있어서 학우들의 타임라인을 도배하지 않습니다. 30분에 5개씩 제보를 업로드하는 모 대학 대나무 숲과는 다르죠.”

-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가 있는데도 고대숲 페이지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숲은 페이스북이라는 SNS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생각을 역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고파스와 다른 점입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제보 글이 있다면
  “(8호) 저는 핑프족과 관련된 제보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관리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고대숲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비슷한 유형의 제보를 여러 개 올리는 등 이 제보 저 제보 모두 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보가 넘쳐흘러서 정작 고민을 토로하는 제보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됐습니다. 관리자인 저도 이런 의미 없는 글들을 올리는 것에 신물이 나고 있었는데, 마침 제 속을 후련하게 긁어주는 듯한 제보가 들어와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 앞으로의 운영 계획이 있다면
  “고대숲의 필터링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해, 정말 학생들이 가진 고민만 올릴 계획입니다. 최근 괜찮은 동아리를 알려달라거나, 학교 포탈에서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교환 위주의 제보만 들어오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제보들은 걸러내서 고대숲의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용어설명>
*8호: 각각의 관리자들은 들어온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부르고 있다. 1호부터 11호까지, 은퇴한 3호와 군대에 간 5호를 제외한 9명이 고대숲 페이지를 관리하고 있다.

*숲밍아웃: 고대숲 관리자와 커밍아웃의 합성어. 관리자가 스스로 관리자임을 밝히는 것을 뜻한다.

*핑프족: 핑거 프린세스족. 직접 정보를 찾지 않고 손가락만 움직여 주위에서 정보를 알려주길 바라는 사람을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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