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이 모인 대나무 숲이라는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서 자 유롭게 이야기한다. 전문가들은 익명성의 정도 혹은 공간의 폐쇄 정도가 SNS상 의 자유도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익명성이 높을수록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폐쇄성이 높을수록 관계의 양보다 질이 담보돼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익명성을 가진 폐쇄적 공간인 대나무 숲은 어떤 함의를 가질까.

 익명성 수준이 사용자 행동에 영향 미쳐

▲ 사진출처 | 고려대학교 대나무 숲 페이지

  논문 ‘SNS 상에서의 익명성 디자인 요소가 사용자의 감정 표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단순히 글을 쓸 때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넘어서 자신에 대한 기록이 얼마나 남는지가 ‘인식된 익명의 안정성’에 영향을 주어 사람들의 표현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ID, IP, 접속 시간, 글의 내용 등이 익명성 수준을 결정하고, 이는 곧 사용자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논문의 저자 서기슬(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씨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주요한 이유는 현실 세계의 자신이 그 발언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며 “단지 이름이 드러나는지 의 여부보다는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사람들의 표현을 더욱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적인 견해로 요즘 사회 풍토가 말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하고 그 말 한 마디로 주변의 여러 간섭을 받거나 따끔한 시선을 받아야하는 문화”라며 “그렇기에 사람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풀어 놓을 공간으로 대나무 숲을 만들고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폐쇄적 공간 안의 개방된 공간
  논문 ‘사회적 관계망에 따른 온라인 SNS 사용행태’에 따르면 SNS의 폐쇄 정도가 사람들의 표현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폐쇄적인 SNS일수록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의 글을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보다는 카카오스토리가 자신의 주소록에 있는 제한적인 친구와의 관계망을 통해 더 폐쇄적이며 개인적인 내용을 담는다. 사용자들은 오프라인에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반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도 관계의 양보다는 질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논문의 저자 홍성민(홍익대 영상학과) 교수는 대나무 숲을 폐쇄적 공간 안에 또 다른 개방된 공간의 성격을 지닌 아이러니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홍 교수는 “대나무 숲은 특정 단체 별 공간이기 때문에 폐쇄적 성향이 강한 반면 그 내용을 살펴보면 폐쇄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즉 형식은 폐쇄적일 수 있으나 내용은 폐쇄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나무 숲은 약하게 연결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weak tie)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이를 통해 마음 놓고 비슷한 고민이나 관심사를 가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일종의 ‘해우소’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