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까지의 대학은 교육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동시에 교육을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여겨,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최근, 대학이 교육을 외부에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대학 교육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대학이 일반인에게 교육과정을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영향은 어떠할까. 현재 한국컴퓨터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현철(정보대 컴퓨터학과) 교수의 자문을 통해 대학이 교육을 공개하게 된 과정과 그 의의를 살폈다.

 산업시대, 권력집단이던 대학
  대학의 변화는 대학 내 교육 방식의 변화와 길을 함께 한다. 고등교육기관에서 진행하던 초기 교육은 적은 인원의 학생을 앉혀놓고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소수집합교

▲ 2000년의 수업시간을 상상한 1919년 그림. 당시 전형적인 산업시대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육’이라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 칠판이 교실 속으로 들어간 이후 한 교실 안에서 더욱 많은 학생들이 동시에 같은 내용을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이 대중화 돼 이전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하나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 후에도 강의실에 칠판을 놓고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칠판을 대체할 만큼 보다 효율적인 방식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칠판이 교실에 도입된 시기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와 맞닿아있다. 기계를 만들어 대량생산을 하던 효율성을 중시한 시대적 사고가 교육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학생들이 제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보다 빠르게 습득하는 데 교육의 목적을 뒀다. 같은 기술만 반복해 교육하다보니 교육 자체도 점점 획일화됐다. 또한, 19세기 말은 자본주의로 인해 경쟁체재가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던 때다. 경쟁의 결과로 사회 많은 분야에는 권력집단이 생겼으며, 그들은 사람을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으로 지배했다. 당시의 대학도 교육계의 권력집단으로 볼 수 있다.

 Web 2.0의 등장과 교육의 변화
  대학의 교육방식이 바뀌기 시작한 배경엔 21세기 초 등장한 Web 2.0가 있다. Web 2.0이란, 특정 한 사람이 데이터를 독점하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데이터를 생산·공유하는 사용자 참여 중심의 인터넷 환경이다. 동시에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은 사람들이 더 이상 어떤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움직이지 않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개성,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 존재했던 기존의 권력집단들이 점차 와해됐다. 김 교수는 “예전엔 소수 정치가들이 국가의 모든 것을 결정했었지만 지금은 국민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며 “이 시대가 경쟁이나 소유가 아닌 공유와 협업의 메커니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육 분야도 서서히 변화했다. 모든 사람이 진리로 여겼던, 하나의 지식만 쫓는 교육의 모습에서 탈피해 서로가 가지고 있던 지식을 개방하고 공유하는 협업 방식으로 변해갔다. 이런 변화의 물결이 일던 2002년, 미국 MIT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학교육을 최초로 공개했다.

 교육 공개의 도화선이 된 MIT
  MIT는 1999년부터 대학 내부에서 인터넷시대에 대응하는 교육정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MIT는 기존의 E-learning 사업에 뛰어들 경우 수년 내 E-learning 사업 상위권에 진입하는 정도의 성과로 그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무료로 대학교육을 웹상에 공개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함과 동시에 시장을 이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그들은 OCW(Open Course Ware)라는 이름으로 MIT내 교육을 공개한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대학교육을 외부에 무료로 공개하면 MIT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 우려했다. 하지만 당시 총장인 찰스(Charles M. Vest)는 이를 ‘시대의 요구’라며 교육 공개를 그대로 진행했다. 크게는 대학의 사회기여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작게는 교육이 공개된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껴 MIT 강의의 질을 개선하게 만드려는 것을 의도한 것이었다. 찰스는 대학 교육의 핵심은 ‘지식의 창조’를 넘어서 ‘기회의 창조’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강의 공개 이후 오히려 전 세계 사람들이 MIT에 뜨거운 관심을 가져 대학 지원율이 향상됐다  는 통계 결과도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후 많은 학교들이 MIT의 교육공개에 함께 참여해 현재는 MIT를 포함한 약 250여 개의 대학이 2200여 개의 강의를 공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7년, 본격적으로 대학교육공개가 시작됐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KOCW(Korean Open Course Ware)사이트를 기점으로 이후 국내 대학 교수들도 자신의 강의를 외부에 공개하기 시작했고, 현재 7656개의 대학 강의가 KOCW에 제공되고 있다. 본교에서도 KOCW에 121개의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전달만 하던 교육에서 벗어날 것
▲ 인터넷으로 듣는 학생도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끔 무크 사이트는 수업 중간에 퀴즈를 삽입한다.

  김 교수는 대학교육이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만 하던 단편적인 수업방식에서 탈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이 그 대표적인 예다. 거꾸로 교실은 학생이 오프라인 수업에 참여하기 전에 미리 수업 관련 동영상을 보고 개념을 이해한 다음, 실제 수업시간에는 다른 학생들과의 토론과 실험이 주를 이루는 교육방식이다. 이는 일반적인 지식전달에 들어가던 시간을 줄여 연구와 봉사 쪽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김 교수는 “수업은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무료로 들을 수 있게끔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가을 학기, 미국 스텐포드 대학의 인공지능 수업이 그 예다. 해당 과목의 교수였던 피터 노빅(Peter Norvig, 스텐포드대 교수)과 세바스찬 스런(Sebastian Thrun, 스텐포드대 교수) 교수는 강의를 진행하기 전, 재학생 175명과는 별개로 외부인의 수강신청을 받았다.  그 결과, 10만 명 이상의 외부학생이 수업을 신청했고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학생들이 실시간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교육민주화 이뤄낼 교육 공개
  대학 공개가 오히려 무한경쟁 시대로 회귀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교육 공개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대학이 흔히 말하는 상위권 대학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학공개 이전에는 지역 간 거리문제로, 성적 상의 문제로 들을 수 없던 수업을 대학공개 이후 인터넷 상으로 들을 수 있게 됐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결국 학생들은 더 질 좋아 보이는 상위권 대학의 강의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극단적으로는 많은 대학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대학이 교육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교육민주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에 있어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가 이뤄진 데에 비해 교육은 아직도 대학과 같은 소수 엘리트 집단이 권력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하지만 대학이 무료로 자신의 교육을 공개하면 돈이 없는 사람도 대학교육이 가능해지고 마음에 드는 강의를 선택적으로 수강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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