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수장(山高水長), 산은 높고 물은 깊이 흐른다. 군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산의 솟음과 물의 흐름에 비유한 말이다. 예로부터 산수(山水)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자연의 이상적 상태, 나아가 신성하고 경이로운 이상향(理想鄕)을 나타내는 곳으로 인식됐다.

  7월 29일부터 9월 28일까지 진행되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는 동아시아 옛사람들이 꿈꿨던 다양한 이상향의 모습이 담긴 산수화를 주제로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권혜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는 “여러 시각에서 이상향을 그린 한·중·일 정통 산수화를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소상팔경(瀟湘八景) △무이구곡(武夷九曲) △태평성대를 품은 산수 △자연 속 안식처 △꿈에 그리던 낙원이라는 다섯 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권혜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홍선표(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자문을 받아 전시를 재구성해봤다.

 청정한 산수의 세계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4m가 넘는 8첩 화폭에 펼쳐진 산천과 마을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문인들이 자연 속에서 누리고자 한 이상적 삶을 그린 이 작품은 조선시대 대표 화원인 김홍도의 <삼공불환도>다. ‘삼공불환’은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을 조선시대 최고 벼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삼공의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김홍도는 걸출한 표현력으로 문인과 서민의 삶을 한 화면에 조화롭게 그려냈다. 그림의 중심이 되는 문

▲ 1. 김홍도,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조선 1801년, 개인소장
인들은 거문고를 연주하고, 누각에서 산천을 바라보기도 하고, 평상에 걸터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는 등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다. 풍속화로 유명한 김홍도의 작품인 만큼 주안상을 차리는 아낙네, 모내기하는 농부와 같은 서민의 삶의 모습도 나타난다. 아울러 그림의 왼편엔 언덕을 넘어 나루터로 향하고 있는 선비와 시종의 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나타나 여운을 남긴다.

  권혜은 학예사는 “김홍도는 중국 후한 말 학자 중장통이 쓴 ‘낙지론樂志論’의 화제를 조선의 풍속으로 변모시켜 우리네 산천과 집, 그리고 사람들이 어우러진 작품을 만들었다”며 “이 그림은 주제 상으로는 4부 ‘내 마음의 안식처’에 속하지만, 이번 전시의 흐름에 우리 화가의 작품이 중심이 된다는 의도를 보여주고자 전시 전면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절경의 이상화, 소상팔경
  ‘소상팔경’은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 일대의 빼어난 여덟 경치를 뜻한다. 팔경은 △산시청람(봄날 맑게 갠 산속 마을의 풍경) △연사모종(연기 낀 산속의 절에서 들리는 저녁 종소리) △어촌낙조(어촌을 물들이는 저녁노을) △소상야우(소상강에 내리는 밤비) △동정추월(동정호에 비치는 가을 달) 등으로 이뤄져 있다. 
▲ 2. 문진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 산시청람(山市晴嵐), 중국 명 16세기, 중국 상해박물관 소장

  <소상팔경도>는 이상향을 표현한 산수화의 상징이 돼 많은 문인이 시와 화폭으로 소상팔경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가로로 긴 화첩에 물기가 많은 붓질로 그윽한 경관의 분위기를 표현한 중국 명대 유명 화가 문징명의 <소상팔경도>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현재도 육로로는 접근하기 힘든 오지로, 11세기 처음 소상팔경도를 그린 북송의 문인화가 송적(宋迪) 이후에는 대부분 관념화로 그려졌다. 문징명의 작품에서도 실경과 비슷한 그림은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를 표현한 <소상야우>뿐, 나머지는 상상 속 이상향에 가깝다.

현인이 노닐던 아홉굽이, 무이구곡
  ‘무이구곡도’는 중국 복건성에 있는 무이산의 아홉 굽이 계곡을 그린 그림이다. 무이구곡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정사(精舍)를 짓고 제자를 가르치는 장소로 삼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리학을 공부하며 조선시대 문인들은 주자에 대한 흠모와 무한한 존경심을 가졌고, 주자의 삶의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인 무이구곡을 이상향으로서 동경하게 됐다.

  전시에서는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무이구곡도인 1565년경 제작된 <주문공무이구곡도>와, 굽이쳐 흐르는
▲ 3. 이성길,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조선 1592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골짜기와 봉우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이성길의 <무이구곡도>를 볼 수 있다. <주문공무이구곡도>에는 그림의 주인공인 주자의 초상화, 초상화에 대한 찬문에 이어 무이구곡의 모습이 길게 이어져 있다. 곳곳에 나귀를 타고 다니는 선비의 모습이 그려져 주자의 행적에 따라 무이구곡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문공무이구곡도>는 16세기 중국에서 전래된 무이구곡도를 지방 화공이 모사한 것으로, 왼편에 퇴계 이황의 친필 발문이 있어 이황이 그림의 소유자였음을 짐작케 한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은 “당대 유학자들에게 무이구곡도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그림이 아닌 주자와 정서적 교감을 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며 “퇴계 이황이 이 그림을 보며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감동했다고 전해질 만큼 무이구곡도에는 주자에 대한 흠모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고 말했다.

 태평성대를 품은 산수
  18세기 무렵 조선은 영조와 정조의 안정된 통치 하에 도시가 발달하고 문화예술이 융성했던 시대였다. 3부에서 주목할 작품은 김홍도의 동갑내기 맞수이자 함께 18세기 조선 화단의 쌍벽을 이뤘던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다. 전시 초입에 있는 김홍도의 <삼공불환도>가 문인의 이상적인 전원생활을 표현했다면, 전시관의 정점에 위치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조선이 꿈꿨던 이상사회를 그렸다.

  ‘끝없이 펼쳐지는 강과 산’이라는 뜻의 <강산무진도>는 조선 회화 중 가장 긴 작품으로, 총 길이가 8m가 넘는다. 그림은 오른쪽 여백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펼쳐진다. 이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닌 작품의 일부
▲ 4. 이인문,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부분,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과 강, 즉 ‘강산무진’을 표현한 것이다. 오른쪽 여백에서부터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아스라이 소나무가 등장하며 본격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부드럽고 둥근 산부터 괘석이 솟아오른 바위산까지, 다양한 산세가 역동적으로 이어진다. 산과 강 사이사이에는 마을이 있고 그림 하단엔 나귀로 짐을 나르는 등 각자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각자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던 김홍도의 <삼공불환도>와는 다른 모습이다. 권혜은 학예사는 “<강산무진도>에 나타나는 풍경은 백성은 맡은 일에 충실하고 군주는 그들을 덕으로 다스리는, 조선이 꿈꿨던 유교적 이상 국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한 “작품의 왼쪽 끝에 이인문의 도장 외 추사 김정희의 도장이 찍혀있어 후대에 김정희가 이 작품을 소유하고 감상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자연 속 내 마음의 안식처
  선비는 덕을 갖추고 관직에 나아가 왕을 보좌하는 것이 도리였지만, 출사해 혼란스러운 현실을 겪은 이들은 자연 속 은거를 꿈꾸기도 했다. 4부 ‘자연 속 내 마음의 안식처’는 성리학적 이상세계와 속세의 괴리에서 오는 갈등을 자연에서 위로받고자 한 산수화를 다룬다. 

 
▲ 5. 이한철,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중 조선 말 활동했던 중인 출신 화원 이한철의 <매화서옥도>는 현존하는 매화서옥도 중 그림의 크기가 가장 큰 작품이다. 눈 덮인 산속엔 매화가 만발하고 화면 중앙에는 매화나무 세 그루에 감싸인 초가집이 있다. 마당에는 학 두 마리가 서 있고, 초가집의 둥근 창 안쪽으로 보이는 선비는 책을 읽는다. 고사에 따르면 중국 송대 임포(林逋)는 벼슬을 버리고 산속에 은거하며 매화를 아내, 학을 자식으로 삼아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홍선표(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매화는 사대부적 기상의 상징이었지만 조선 말기로 오면서 사대부 외 중인 화가들까지 탈속의 의미를 담아 매화서옥도를 즐겨 그렸다”며 “겨울에 피는 꽃인 매화를 ‘한사(寒士), 즉 추운 선비’로 여겨 신분의 한계에 부딪혀 춥고 배고픈 중인의 현실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꿈에 그리던 낙원
▲ 6. 안중식,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 191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진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에는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복숭아꽃이 핀 동굴을 지나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누리는 낙원에 발을 디딘 한 어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시의 마지막 주제는 ‘도화원기’에 나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낙원인 ‘도원(桃源)’이다. 권혜은 학예사는 “한·중·일의 도원도 모두 청록의 안료를 사용해 이상향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 중 1915년 작품인 안중식의 <도원행주도>는 다양한 명함의 청록을 사용해 도원의 모습을 나타냈다. 20세기 초 활동한 조선시대 마지막 도화서 화원 안중식은 조선시대 화가 중 가장 많은 도원도를 남겼다. 안중식은 어부가 배를 타고 도화원 입구 동굴에 들어서는 장면을 주로 그렸다. 권혜은 학예사는 “안중식의 작품은 대부분 화려하고 복잡하게 산수를 구성한 것이 특징”이라며 “초월적인 이상향을 그리며 일제 통치 아래 각박했던 현실의 우울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심정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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