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단어를 찾던 시대는 지났다. 전문가들도 종이사전보다는 디지털 사전의 전망과 한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학생들은 디지털 사전에서 나아가 위키 백과(2001년 1월 15일 지미웨일스(Jimmy Wales)가 제작한 누구나 자유롭게 편집과 관리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를 이용하곤 한다. 위키 백과를 포함한 사전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사전에 담긴 문화는 무엇인지 알아봤다.

  한 전공 수업에서 최성민(정경대 정외12) 씨는 난감한 경험을 했다. 기말 조별과제에서 문서 작업을 맡은 조원이 자료의 출처 대부분을 위키 백과로 적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교수님은 위키 백과보다는 책 같은 공신력 있는 자료를 증거로 하라고 하셨다”며 “신뢰가 필요한 글에 위키 백과를 근거로 제시하면 논거가 약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수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다. 신재혁(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본적인 정보를 얻으려 할 때 많은 학생들이 위키 백과를 이용하는 것으로 안다”며 “기초자료를 찾는 정도에서는 위키 백과가 얼마든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과제의 근본적인 부분은 위키 백과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뢰성에 대한 논란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위키 백과에 대한 신뢰성을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윤은호(인하대 문화경영학 박사수료) 씨는 “위키 백과 자체가 공신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위키 백과의 출처들이 공신력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학술 활동을 위해서는 위키 백과 보다는 다른 학술정보원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일러스트 | 김채형 전문기자

  ‘학술논문에서의 위키피디아 인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02년에서 2012년까지 학술논문에서 위키 백과가 인용된 경우는 총 282건으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에 논문저자 심원식(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수십만, 수백만 개의 논문 중 위키 백과를 인용하는 논문이 수백 개에 그치는 결과를 보면 아직까지는 다른 학술자료와 같은 수준의 공신력은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하지만 위키 백과의 공신력은 10년 전보다는 매우 개선됐고 앞으로도 개선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어와 한국어 위키 백과 간 자료 양의 차이를 지적하기도 했다. 27일 기준 영어 위키 백과 자료는 461만271건, 한국어 위키 백과 자료는 28만9691건이다. 심원식 교수는 “학생의 경우 영어보다는 한글 자료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데 원하는 자료가 없다면 위키 백과의 활용도가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은지(동덕여대 경영12) 씨는 “위키 백과는 누구나 글을 쓰고 수정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며 “신뢰성이 없다고 생각해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단지성의 명과 암
▲ 일러스트 | 김채형 전문기자

  위키 백과는 집단지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집단지성이란 말 그대로 다수의 개체들이 모여 지적 활동을 하여 얻은 능력을 말한다. 집단지성을 믿는 사람들은 소수의 전문가보다 집단의 통합된 지성이 더 낫다고 여긴다. 집단지성에 관해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윤은호 씨는 자신의 논문 ‘집단지성 및 백과사전의 한계, 그리고 미래’에서 집단지성 체계를 사용하는 위키의 장점으로 4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기존 백과사전이 제공하지 않는 학문적이지 않은 주제가 위키 백과에선 허용되기 때문에 집단지성에 의해 정보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시의성을 갖춘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10일 오전 3시 발표된 ‘아이폰 6’에 관한 내용이 당일 발표 2분 전에 새롭게 위키 백과에 게시됐다. 이후 20일까지 열흘 간 18번의 수정을 거쳐 현재의 내용에 이른 것이다. 세 번째로는 위키 백과 제작에 참가하는 사용자들에게 참가에 따른 효용감을 안겨준다는 것을, 네 번째로는 집단 협업을 통한 효율적인 지식 구축을 돕는다는 점을 들었다.

  반면, 위키의 문제점과 한계로 저자는 제한적인 전문가의 참여를 꼽았다. 기여와 보수라는 유인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전문가의 참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참여를 하려고 해도 기존 이용자들과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문가라는 권위가 소용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영어 위키 백과에서 미국인 정치학자 데니스 하트(Dennis Hart)가 ‘한국 전쟁’ 항목을 수정했다가 모두 되돌려진 사례가 있다. 윤은호 씨는 “위키 백과는 전문가들, 즉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두을 위한 지식’에 기여를 하고 싶어 해도 총의 형성을 통한 기여를 바란다”며 “충돌이 생기고 나서 합의가 필요한 내용에 대해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 위키 백과의 특성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위험성으로는 ‘위키얼리티(wikiality)’가 제기되고 있다. 위키얼리티란 위키(wiki)와 리얼리티(reality)의 합성어로, 누구나 항목을 바꿀 수 있는 위키 백과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만 하면 진실이 되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방송인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는 2006년 7월 자신의 TV쇼에서 시청자들에게 ‘위키피디아에서 여섯 달 동안 아프리카 코끼리 수가 3배 증가했다고 수정해달라’고 집단지성의 위험성을 풍자하며 ‘위키얼리티’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편집에 접근하는 것이 일반인에게 어려울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윤은호 씨는 논문에서 위키 백과 내부에 적응하기 위해선 사전에 문화 지식이 필요해 위키 백과의 편집에 접근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편집 도중 출처를 밝히려면 특정 위키 문법을 알고 이를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료주의’라고 불리는 특정 사용자들의 편집 성향이 새로운 이용자들의 참여를 방해한다는 한계가 있다. 윤은호 씨는 “집단 지성적 노력이 관리자 계층의 브레이크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집단지성이 장점만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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