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 경제대) 교수는 <21세기 자본>에서 그의 이론을 설명할 때 흔히 경제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문학을 적극 활용했다. 이에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스티픈 펄스타인은 “이론과 수학적 모형이 대세가 돼버린 최근 경제학계를 넘어서는 경제사의 쾌거”라고 평하기도 했다.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에서 나타나는 문학적, 철학적 요소를 알아봤다.

  #1. “서른 살에는 연봉 1200프랑을 받는 법관이 되겠지. 마흔 살이 되면 지참금을 6000리브르정도 들고 오는 방앗간 집 딸과 결혼할 테고. 감지덕지할 일이지. 자네가 원한다면 약간의 더러운 정치적 수단으로 마흔이 되기 전에 검사장이 될 수도 있을거야 ⋯ 하지만 프랑스에 검사장은 고작 스무 명 뿐인데. 그 자리를 노리는 자가 2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네. 자네는 매달 1000프랑씩 써가며 10년을 고생한 끝에 서재와 사무실을 얻고, 여러 모임에 뛰어다니고 소송을 얻기 위해 법정 마루를 혀로 핥기까지 해야 할거야. -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고리오 영감> 중

  냉소적 현실주의자인 보트랭은 법을 공부하며 성공을 꿈꾸는 가난한 청년 라스티냐크에게 막대산 유산의 상속녀 빅토린에게 청혼할 것을 제안한다. 공부하고 노력해서 출세하는 것보다 훨씬 손쉽게 재벌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케티 교수는 작품의 배경이 된 19세기 프랑스에서 최고 부유층이 누리는 생활수준은 노동에 기초한 소득만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정도를 크게 넘어섰다고 말한다. 피케티 교수는 우리에게 ‘과연 지금은 그때와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상속받은 재산에서 오는 소득이 노동이 창출하는 소득을 크게 웃도는 ‘세습 자본주의’를 바로잡아야한다고 강조한다.

  #2. “그분은 정말 그 생각을 고집한단 말이요?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의 유산을 박탈하겠다는 생각 말이오! 당신은 그의 그 잔인함을 전혀 누그러뜨리지 못할 것이라는 거요?” - 헨리 제임스(Henry James) <워싱턴스퀘어> 중

▲ <워싱턴 스퀘어>를 무대로 올린 "The Heiress"의 한 장면. 캐서린은 모리스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캐서린 슬로퍼와 약혼한 모리스 타운센드는 그녀의 결혼 지참금으로  많은 부를 얻게 될 거라 기대하지만, 모리스의 물욕을 간파한 캐서린의 아버지가 약혼을 반대하기 위해 캐서린에게 유산을 박탈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모리스는 캐서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돈이 1만 달러 정도에 그칠 거라 판단하고 그녀에게 화를 내며 달아나버린다. 1만 달러는 당시 미국인 연평균 소득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지만, 모리스가 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시 상류층의 소득이 이를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다. 피케티 교수는 이를 불평등한 재정적 구조가 낳은 극심한 부의 불평등이라 말한다.

  #3.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사회적인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 1789년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중

  피케티 교수는 두 번째 문장을 강조한다. 첫 번째 문장이 절대적 평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음에도 두 번째 문장이 실질적 불평등의 존재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의 신분제도였던 ‘앙시앵레짐(ancien regime)’에서 중시하는 신분의 위계질서와 상류층의 특권이 공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의적이고 쓸데없는 불평등의 전형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케티 교수는 이에 대해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 관점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후 프랑스혁명을 거쳐 성장해온 정치체제는 주로 재산권 보호에만 집중했다고 비판한다. 국가가 시민의 재산권만 보장할 뿐, 경제적으로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조건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내는 실질적인 수단은 무엇인지, 개인에 있어 행운의 영역의 범위와 노력과 성취의 영역의 구분점 등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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