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포스트휴먼 테크놀로지’가 발달하고 있다. 뇌 과학과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인 공장기 같은 제한된 결합을 넘어 인간과 기계의 포괄적인 결합까지 상상하게 됐고, 나아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지 능뿐만 아니라 감정도 갖춘 로봇의 출현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태수(인제대 인간환경미래연구소) 연구원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 개량을 어떤 방향으로 진행시켜 현재의 인간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제대로 알 수는 없다”며 “좀 더 전문가적인 수준에서 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그린 미래인간을 포스트휴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영화 A.I.에서의 착한 인조인간과 터미네이터2(아래)에 등장한 나쁜 인조인간. 차후 우리세계에는 어떤 포스트휴먼이 등장할까.

  포스트휴먼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정체성과 인간의 본성이라는 개념을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앞으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 속에 살게 될지도 가변적이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인문학은 포스트휴먼 기술의 방향을 제시한다.

 인공생명은 무엇인가
  포스트휴먼은 사람이 인공적인 생명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가능해진 건 생명공학의 발전 덕이다. 20세기 말, 과학자들은 인공지능관련에 관한 연구 방법을 합리적 접근법에서 bottom-up 접근법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합리적 접근법은 전통적, 물리적 계획의 문제해결 및 목표달성을 위해 모든 조건과 모든 수단을 조사, 분석하여 합리적 계획을 수립시키는 목표 달성적 의사 결정방법이다. 이에 비해 bottom-up 접근법은 마치 레고블럭을 쌓듯이 나노입자를 차곡차곡 쌓아서 원하는 형태의 패턴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이종관(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생명공학의 발전이 이뤄졌다”며 “이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생명의 진화를 개발, 설계하기 위한 시도가 일어났고 이는 인공생명의 출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사전적 의미의 인공생명(artificial life)은 ‘유전·돌연변이·교배 등 생물의 진화과정을 적용시켜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꼭 로봇처럼 특정한 모습을 갖지 않아도 인공생명체가 될 수 있다. 실제 인공생명체냐 아니냐를 나누는 기준은 ‘창발 현상’이다. 창발 현상이 나타나면 인공생명체이고, 나타나지 않으면 인공생명체라고 부르지 않는다. 창발 현상이란, 본래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이 환경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지 않던 사람이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영향을 받아 공부를 시작한다면 이를 창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컴퓨터 프로그램 상에 어떤 패턴이 창발 현상을 갖고 있다면 이것도 인공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 터미네이터2에 등장한 나쁜 인조인간.

  1987년 9월, 미국 로스앨러모스에서 열린 제1회 인공생명 워크숍에서 발표된 인공생명의 정의에 따르면, 인공생명은 ‘생명체의 특징을 갖는 인공체를 창조하기 위한 과학의 한 분야’로, 유기체가 아닌 물질을 재료로 해야 한다. 이 교수는 “이 분야 연구자들은 인간 중심주의와 하나의 생명 형태, 하나의 우주라는 고정관념을 부정한다”며 “우주에는 수많은 생명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탄소를 기초로 하는 생명 형태 이후의 생명 형태를 연구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가상세계를 만들고, 이 가상세계 안에서 생명체의 탄생·성장·진화과정 등 생명활동의 본질을 연구하고 재현함으로써 인공생명을 탄생시킨다.

  인공생명 기술은 앞으로 인류의 미래 자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많은 국가들이 앞 다퉈 기술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역설적으로 기술발달 속도가 가속화될수록 인간이 미래에서 추방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인공생명의 철학적 영향
  이 교수는 진화의 논리로 인공생명이 가지는 철학적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이론생물학의 발달로 생명의 기본적 특징이라 생각되던 것들이 다른 물질을 기반으로도 실행될 수 있게 됐다”며 “예를 들어 이제는 탄소기반의 살아있는 단백질이 아닌 실리콘으로도 생명 형태를 띨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탄소기반 진화의 경우 진화를 방해를 받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생명 형성이 불안한 상태가 되거나 지체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실리콘 기반의 생명진화가 더 효율적이며 빠르고 완전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여기에서 인간은 실존주의적 고뇌에 직면한다”고 말한다. 그는 “덜 진정한 존재는 더 진정한 존재에게 길을 내주는 것이 도덕적 의무가 아닌가”라며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인공생명이 종국에는 현 인류를 초월할 수 있도록 NBIC(나노, 바이오, IT, CT) 기술 발달을 급속하게 몰아가야 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인공생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디지털 생명이 생명의 원리를 더욱 진정한 방식으로 실현한다면 인간은 디지털 생명의 출현을 진정한 생명체의 출현으로 인정하면서 진화의 역사에서 퇴장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것이다.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먼의 등장이 우리로 하여금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트랜스휴머니스트라 부른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생명과학과 신생기술이 그런 조건들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들이 제창하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 문화적 운동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의 여러 요소를 공유한다. 여기에는 이성과 과학에 대한 존중, 진보를 위한 헌신, 인간 존재에 대한 존중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트랜스휴머니즘은 여러 과학기술의 영향으로 인간 삶의 본성에 일어날 급진적 변화를 예상한다는 점에서 휴머니즘과 다르다. 이 연구원은 “트랜스휴머니즘의 트랜스는 현재 우리는 휴먼을 넘어서는 존재인 포스트휴먼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사회에 통용되어 온 윤리규범이 입각하고 있는 휴머니즘이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미래에 포스트휴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연적이라도 그 모습을 어떻게 꾸밀지, 어떤 특성을 부여할지 등 세부적인 것을 결정하는 출발점은 어쨌든 지금 이 시점”이라며 “지금의 기준에 좋다고 생각되는 방향이 과연 종래에도 좋을지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 없이 당장 발달된 기술력을 뽐내기 바쁘다면 인류의 역사는 그대로 정지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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