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Jane Goodall) 박사가 25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희망의 씨앗(Seeds of Hope)’을 주제로 강연했다. 3000여 명의 청중이 참석한 강연에서 구달 박사는 자연과 인간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제14회 김옥길 기념 강좌’의 일환인 이번 강연은 송기정 이화인문과학원장의 사회와 최재천(이화여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순차 통역으로 진행됐다.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제인 구달 박사는 영국 런던 태생으로 1960년대부터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야생 침팬지들과 함께 지내며 연구를 시작해, 40년 넘게 침팬지를 연구하며 ‘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린다. 구달 박사는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며, 스스로 필요한 도구를 만들기도 한다는 점을 처음으로 발견해 ‘도구는 인간만이 사용한다’는 당시 통념을 뒤집어 과학계에 큰 업적을 남긴 바 있다. 구달 박사는 현재 동물, 이웃,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적 환경운동인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을 우리나라를 비롯해 110개 국가에서 전개하고 있다.

침팬지의 도구사용을 발견하다
  제인 구달 박사는 그녀가 23살에 처음으로 침팬지 관찰을 시작하던 때를 회상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정식적인 과학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구달 박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침팬지를 관찰했다. 침팬지를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두고 침팬지 사회에 스스로가 직접 동화되기를 택한 것이다. 그녀는 침팬지들에게 숫자가 아닌 이름을 붙여줬고, 이는 당시 과학자들이 동물을 연구할 때 번호를 매기는 것을 벗어나는 방법이었기에 학계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동물에게 친화적으로 대하며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가까워지는 구달 박사의 연구방법은 이제는 동물행동학의 표준적 방법으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구달 박사는 초기에는 침팬지들이 그녀에게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내 관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침팬지와 동화돼서 연구를 하려면 그들이 사는 숲으로 가야 했어요. 당시 저는 20대 어린 여자아이였기에, 침팬지들이 가득한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큰 다짐이 필요했죠. 막상 들어가서도 그들과 친해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죠. 처음엔 대부분 침팬지가 제게 반감을 표시하며 머리를 때리거나 나뭇가지를 던졌어요. 제가 나타나면 도망가는 경우도 많았고요.”

  구달 박사는 끊임없이 그들과 융화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한 침팬지가 그녀에게 친근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녀의 침팬지 연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David Greybeard)다. 데이비드는 구달 박사가 야생에서 침팬지를 연구할 때 그녀에게 가장 먼저 친근감을 표시한 침팬지다. 또한 구달 박사가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학계 최초로 발견하게 해준 대상이기도 하다. “여느 날과 같이 망원경 하나를 들고 숲 속에 들어갔는데, 데이비드가 흰개미 굴 위에 엎드려있었어요. 조용히 앉아 관찰을 시작했죠. 그런데 데이비드가 갑자기 작은 나뭇가지를 하나 집더니 흰개미 동굴 안으로 집어넣었어요. 그러더니 한참 기다린 후, 나뭇가지를 다시 뽑아 그것에 붙은 흰개미들을 잡아먹더군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한 것이었죠. 더 놀라운 것은, 만약 그가 집은 나뭇가지에 이파리가 많이 달려 동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것을 막무가내로 쑤셔 넣는 게 아니라 이파리를 하나하나 다 떼어서 집어넣었어요. 도구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 도구를 ‘만들기까지’ 했던 거죠.”

 머리와 가슴 연결돼야
  구달 박사는 침팬지를 비롯해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날카로운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른 존재가 아니며,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구달 박사는 한 실험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두 마리의 까마귀의 행동을 관찰한 실험이 있었어요. 과학자들은 까마귀들에게 먹이가 든 튜브와 끝이 구부러진 막대를 주고 철사로 먹이를 끄집어내도록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막대의 구부러진 부분이 잘라져 먹이를 뺄 수 없게 됐어요. 그런데 갑자기 까마귀가 그 철사를 들고 자기 부리와 다리를 이용해서 막대 끝 부분을 기존과 같이 휘어서 훅을 만들더랍니다. 결코 ‘새대가리’가 아니었던 거죠.”

  구달 박사는 인간이 가장 똑똑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동시에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동물보다 월등히 높은 지능을 갖고 있어 고층 건물을 만들기도, 로켓을 만들어 우주에 발사하기도 하지만 정작 인간의 유일한 터전인 지구를 점점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다가올 미래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는 지혜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나, 그리고 내게 닥친 일들, 예를 들어 다음 주에 열리는 주주총회와 같은 일들에만 신경을 쏟죠. 마치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걸 얻으려는 쥐들처럼요. 우리의 기막힌 머리는 딱딱한 가슴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의 변화 필요해
  제인 구달 박사는 자연 파괴를 설명하며 한국의 사례도 언급했다. “한국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며 500년 된 산림을 파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안타까웠어요.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 뿐만은 아니에요. 세계 곳곳에서 경제 개발이 환경보호보다 우선시되고 있죠.”

  구달 박사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경제력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경제 발전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나서야 사람들이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갖고, 그동안 자신들이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반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그녀는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를 막는 데 쓰는 돈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에 매우 중요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구달 박사는 청년들이 경제활동을 할 때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쇼핑을 좋아하는데, 무언가를 구매할 때 자연 파괴와 해당 제품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했으면 해요. 이 물건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고, 혹시 동물을 학대하며 생산된 것은 아닌지 등이요. 청년이 이런 마음을 갖고 제품을 구입한다면 경제발전과 환경이 공존하는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의 젊은 친구들이 인간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연결고리를 다시 이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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