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게 ‘현상학’은 낯설기 그지없다. 특히 소크라테스나 칸트, 헤겔 등 철학자 이름을 중심으로 철학 교육을 받은 지금 세대에는 더 그렇다. 현상학에 대한 연구 활동을 펼치며, 학생들에게 현상학을 가르치고 있는 홍성하(우석대 교양학부) 한국현상학회 전 회장에게 현상학의 역사와 필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 대학생이 현상학을 알아야 할 이유는
“실존주의와 해석학,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은 대표적인 현대철학이 현상학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20세기 서양문화와 시대정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상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심리학, 간호학, 행정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 예술 분야에서 현상학을 수용하여 응용하고 있다는 점 역시 대학생이 현상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어요. 특히 인문학이 중요해지고 융·복합, 통섭 등 학문 간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최근의 학문적 경향을 고려할 때, 철학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할 필요가 있어요. 인간의 삶과 존재의미를 근원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현상학적 시도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화답이 될 것이라 봅니다.”
- 현상학은 어떻게 다른 학문에 응용됐나
“현상학적 운동은 비단 철학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분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형태로 발전했어요. 대표적인 예로 유럽의 교육학이나 심리치료학 분야가 있죠. 유럽에서 현상학은 교육학이나 심리치료학 분야에서 활용되면서 순수이론이 아닌 실천적 학문의 성격을 띠게 돼요. 이는 내담자를 고려한 맞춤형 상담,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수업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1950~60년대에 미국에서 현상학은 심리학에 응용되면서 행동주의와 정신분석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본주의적 심리학으로 대중화되기도 하죠. 이밖에 현상학의 세계개념은 생태학에, 의식의 지향적 구조는 인지과학에서 주목을 받게 됐어요. 현상학은 현대에도 예술이나 종교학, 간호학, 행정학, 정치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고 때로는 방법론으로 때로는 이론적 토대로써 활용되고 있죠.”
- 앞으로 현상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현상학은 생활 속에서 인간의 경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기술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데 기여하게 될 거예요. 예를 들어, ‘산후 우울증 산모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를 주제로 한 연구 시, 양적 연구방법에서는 다수의 산모를 대상으로 ‘하루에 우울한 적이 몇 번인가?’, ‘자신이 우울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등의 설문조사를 통해 산후 우울증의 원인을 분석하죠. 하지만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질적 연구방법에서는 소수의 산모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임신부터 출산까지 산모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수집해 이를 토대로 산후 우울증의 의미를 밝혀내요. 또한, 무엇보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보다 개방적이고 개별적이라는 점 때문에 앞으로 사회의 많은 사람이 현상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봅니다.”
- 그렇다면 질적 연구방법에서 현상학이 어떻게 적용됐나
“질적 연구는 양적이고 실증주의적 방법과 가설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과정과 의미를 중요시합니다. 현상학은 양적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적 접근방식으로 질적 연구의 한 방법으로 수용됐어요. 가설과 검증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실증주의와 달리 현상학은 세계 안에서 인간의 경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기술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무엇보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보다 개방적이고 개별적이라는 점 때문에 질적 연구자들이 현상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봐요. 실제 학계에서는 질적 연구를 하던 학자들이 현상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대표적인 질적 연구자로서 지오르지(A. Giorgi)는 연구대상자의 체험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의미를 밝히고 있죠. 현상학적 체험연구 방법을 개척한 지오르지는 ‘사태 자체로 돌아가라’는 후설 현상학의 근본정신에 입각해 현상학적 체험연구 방법을 개발했어요. 현상학적 심리학은 심리현상을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인간에게 나름의 고유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파악해요. 예를 들어, 현상학적 체험연구 방법을 사용해 배움이라는 체험을 탐구하고자 함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배움이라는 체험을 구성하는 요소는 정확히 무엇이며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탐구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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