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archive)란 기록 보관소다. 개인 및 단체가 활동하며, 남기는 수많은 기록물 중 가치가 있는 것을 선별하여 보관하는 장소, 또는 그 기록물 자체를 이르는 용어다.
관공서, 회사, 병원 등의 기록물 보관실이 아카이브다. 아카이브는 기록물의 형태에 따라 실체로 존재하기도, 하지 않기도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록물은 전산화되기 때문에 기록 보관실이 전산열람실과 같은 형태로 돼있다. 예전의 기록물이거나 전산화가 될 수 없는 기록물의 경우는 실제 공간으로서 ‘아카이브’라는 곳에 기록물 보관 담당자에 의해 보존된다.

개인의 기록이 시대와 사회를 증언한다. 최근 역사학, 사회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분야에서 개개인의 삶에 대한 중요성이 재조명되며 미시사, 일상사, 그리고 생활사 등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관련 정부기관 또한 ‘보통사람들의 삶의 기록’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나라기록관에서는 2014년 9월 25일부터 2015년 3월 25까지 ‘나의 기록, 역사가 되다’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나라기록관을 찾아 이혜경 특수기록관리과 사서 사무관, 공희주 특수기록관리과 주무관과 함께 전시동에 들어섰다. 비스듬히 세워진 전광판에 기록물을 기증한 기증자와 단체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사서 사무관은 개인 기록물이 지닌 가치로 안내를 시작했다. “우리의 일생이 기록과 함께합니다. 출생기록, 병원기록, 학생기록, 사진을 비롯한 기록물을 보면 한 개인의 일생이 보이고, 그 일생이 모여 하나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만들죠.”
2007년 공공기록물법 개정으로 민간기록물 수집 근거가 마련되면서 국가기록원은 본격적으로 민간기록물을 수집했다. 민간인에게 돈을 지급하고 기록물을 확보한 이전과 달리 법 개정 후, 민간기록물 대부분을 기증을 통해 받게 됐다. 국가기록원은 1987년 6·3 항쟁 시기의 옥중 서신과 같이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기록물뿐 아니라 개인적인 기록물도 수집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약 80여 명의 기증자에 대한 감사와 기증문화의 확산을 위해 개최됐다. 전시회는 기증절차, 기증대상 등을 소개하는 글로 시작했다. 전시된 민간기록물을 기자가 자세히 들여다봤다.
# 1972년 11월 5일, 한 씨는 근마다 약 140원의 단가로 돼지고기 97근을 팔아 13380원을 벌었다. 그는 생각보다 싼 값에 실망했다. 장시에 나온 김에 쇠붙이로 만들어진 녹슨 들통도 팔 예정이다. 얼마를 쳐줄까 긴장하며 고물상에 갔다. 웬걸, 200원이나 쳐줬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엊그제 중대장에게 빚진 10200원을 청산하기 위해 중대장의 집으로 향한다.
전시회의 도입은 ‘생활 속 기록 이야기’였다. ‘돼지 판매금(97근 매근 140원) 13380원’, ‘쌀 한 말 팔다 1100원’ 등의 목록은 우리에게 당시 시세를 알려준다. 또한 ‘성숙 고무신’, ‘들통 판다’ 등의 항목을 통해선 당시에 이용한 물품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다. 공희주 주무관은 “가계부를 보면 한 개인의 몸으로 체험한 가계 생활의 모습, 시세 등을 공문서보다 쉽게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김 씨의 기록물 중 1975년도 5월, 6월 업무일지를 통해 업무 작업 명과 노임단가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당시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거나 주워 모으는 ‘나무하기’와 모내기의 임금은 400원~500원이었다.

▲ 베트남으로 파병된 정영환(남,76)씨가 파병당시 바나나 잎에 아내에게 쓴 편지다.

# 바나나 잎에 써진 편지엔 ‘은경. 자유에 십자군 개선하는 날 보고픈 “은경”이를 얼사 안으리 一九七二. 十一. 一 월남에서’
이는 ‘참화 속 그리움의 기록’ 부분에 전시된 기증물로 결혼하고 한 달 만에 베트남으로 파병된 정영환(남·76) 씨가 쓴 편지다. 그는 4년 동안 600여 통의 편지를 써 아내에게 보냈다. 그 속엔 손목시계가 없던 시절, 필름이 없던 시절 등 당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정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월남 전투가 한창 치열했을 때 월남에 바나나가 많아 바나나 잎에 쓰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회엔 지역사회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기록물도 있었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에 살았던 주민들이 만든 앨범이 대표적인 예다. 1960년대 각종 산업에 종사했던 마을 주민들은 가게 사진, 일하는 모습 등을 찍어 지역 앨범을 만들었다. 이 사서 사무관은 “방앗간, 서점, 공업사 등에서 일하는 주민의 모습으로 마을의 개발상을 볼 수 있다”며 “이 앨범은 향토사 연구원과 지역문화원에서 관리하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아직 기록보관에 열악한 기관들이 많아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록관리가 전국적으로 활성화 돼 전문기관이 기록물을 관리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인 기록물 수집 기준은
모든 민간기록물이 국가기록원에서 수집하는 건 아니다. 국가기록원은 ‘민간기록물 수집업무에 관한 규정’에 따라 기증물의 국가적 보존가치를 평가한 후 수집 여부를 결정한다. 현재 6명으로 구성된 국가기록원 소속 민간기록물수집자문위원회가 기증물을 평가한다. 민간기록물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최재희(이화여대 기록관리교육원) 특임교수는 “객관적인 수집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치평가기준’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가치평가기준은 △적격성 △보완성 △진본성 △희소성 △대표성 등 총 10가지로 항목당 1점~5점이 주어진다. 민간기록물수집자문위원은 기증물 당 가중치를 –5점~5점까지 줄 수 있다. 따라서 합산점수는 최저 5점에서 최고 55점까지 가능하며, 20점 이하의 기록물인 경우 국가기록원 차원에서 보관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
기록문화 확산을 위해
민간기록물은 공공기록물 결락(缺落)을 보완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최 교수는 50년 전 가계부 기록을 예로 들며 “민간기록물인 가계부가 물가에 대한 공공기록보다 피부로 와 닿고 그 시대를 보다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민간기록물 중에서도 그 가치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경우 국가기록원에서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하고 있다. 국가지정물 1호인 유진호 박사의 ‘유신헌법 초안’이 그 예다. 최 교수는 “이 자료는 공공기록물의 결락을 보완해주는 대표적인 예”라며 “헌법의 초고는 헌법의 내용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알게 해주는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라고 말했다.
나라기록관은 2011년부터 민간기록조사위원을 선발했다. 특수기록관리과 김민정 주무관은 민간기록조사위원 선발 이유로 “민간기록물의 광범위해 국가기록원이 직접 지역마다 이를 수집할 수 없어 이를 극복하고 민간기록 수집을 활성화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민간기록조사위원은 지역별로 문화원이나 박물관 관계자, 그리고 기록학을 공부하는 사람 등 여러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 민간기록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인 강정식 씨는 국민의 적극적인 기록물 기증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강 씨는 “민간기록이 한 국가의 역사를 구성하는 만큼 큰 가치를 지닌다”며 “적극적인 민간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에서 민간기록물을 모으는 가장 큰 이유는 기록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최 교수는 “민간기록물 모두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건 불가능해 앞으론 기록문화를 확산시켜 민간차원의 아카이브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외국에선 한 할머니의 일생과 같이 민간기록물을 보관하는 민간아카이브가 기관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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