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생(未生)’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되었다. 드라마 ‘미생’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아직도 그 여진(餘震)은 계속 되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각자의 평가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드라마가 보여준 극적인 요소에 흥분하고, 누군가는 기존 공중파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사실적으로 보여준 직장인의 삶을 강조한다. 이 많은 평가들 가운데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면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소는 역시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장그래’가 보여준 비정규직의 슬픈 현실이었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가 32.4%를 차지하고 있고, 그 비중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극중 ‘장그래’가 처한 현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는 대다수 청년의 삶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의 인기를 재빨리 이용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였다. 작년 12월 29일 고용노동부는 일명 ‘장그래 법’으로 지칭하며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마련하여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 구조개선특위 회의에 정부의 공식의견으로 제출하여 논의를 요청한 것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정규 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 정규직 채용문화 확산, 정규직 전환기회 확대 등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목표에 부합하는가에 있다. 정부가 제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에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근로자(35세 이상)가 계약기간을 연장신청할 경우 계약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해 총 4년으로 늘리고 있다. 그리고 총 4년이 경과하였을 때 회사가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면 근로자에게 이직수당(연장 기간 임금총액의 10%)을 주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을 가중시킨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방안을 놓고, 당장 노동계는 고용 불안정의 고착화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고, 경영계는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규제만을 강화하면서 고용의 주체인 기업의 사정을 도외시한다고 비판하는 실정이다.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것 같다. 실례로 한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조사 결과,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였는데, 그 중 특히 주요 당사자 층인 30대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월등하게 높게 나타났다(60.7%). 이러한 부정적인 기류는 과거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정부의 이러한 대책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던 유사한 경험을 이미 했다는 데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기간을 2년 더 연장해 주는 것이 고용의 안정화 대책이 된다고 믿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연봉 2000~3000만원일 경우 이직수당은 고작 400~600만원 수준임을 고려할 때 이직수당이 정규직 전환의 방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은 수많은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파기하거나 후퇴시키고, 전임 정부의 대기업 위주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표방하는 현 정부의 모습도 한 몫 거들고 있다. 한 마디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 대책이 단시간 내에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인건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택할 방안이 매우 제한적이고, 어려울 것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우리 국민은 비정규직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는 모습을 꿈꿀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것은 어차피 꿈같은 얘기라는 걸 잘 안다.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정부가 이름만 ‘장그래 법’을 제시하는 모습이 아니라 심층적인 연구와 함께 각계각층과의 끊임없는 대화로 장기적인 해결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진심어린 노력일 것이다. 주어진 문제를 다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진정어린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든 ‘장그래’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권상호
경영학 박사
(주)리버밸리 경영총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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