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은 주거 빈곤의 극단적인 형태이며 쪽방촌은 대도시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빈민밀집 거주지역이다. 쪽방이란 단어의 뜻은 두 가지로 쓰인다. 성북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은 “쪽방이란 용어는 ‘큰 공간을 쪼개어 만든 방’ 혹은 ‘매우 작은 방’의 의미로 볼 수 있다”며 “쪽방은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지만 사람들이 관용적으로 쓰고 있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쪽방은 외환위기가 터진 1990년대 말부터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쪽방이 밀집된 서울시 5대 ‘쪽방촌’은 △동자동 △영등포 △종로 △동대문 △남대문에 있다. 쪽방촌 거주자들은 대개 인간적인 생활을 누리기 힘든 상황이다. 동자동 쪽방촌의 건강문제를 3년간 연구해 온 정혜주(보과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쪽방에는 ‘보건의료’를 이야기할 것도 없이 기본적인 ‘위생’부터 갖춰지지 않은 곳”이라며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삶을 사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기본권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는 곳이며 쪽방에 갇혀 절대적 빈곤의 대물림이 지속되는 곳. 서울 5대 쪽방촌 중 한 곳인 동자동 쪽방촌의 모습이다.

쪽방 주민의 삶과 생활은 어떨까. 쪽방의 평균 크기는 5.3㎡(1.6평)이다. 별도의 취사공간 없이 방에서 의식주를 다 해결한다. 재래식화장실, 샤워시설 등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동자동 주민의 10%가 여성이지만 샤워시설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샤워시설에 문이 없는 경우도 있다.

▲ 조두선(남.56) 씨의 방은 그의 살림살이로 빼곡하다.사진 | 차정규 기자 regular@

본교 산학협력단에서 2013년 발행한 ‘강점 중심의 자치적 건강증진 사업을 위한 형성연구’에 따르면 동자동 쪽방지역 거주자의 평균 나이는 55세이고 1인가구가 대부분이다. 주민의 월수입은 50만원 미만이 76%를 차지한다. 64.8%가 기초생활수급자다. 쪽방은 대부분 무보증월세 방이라 주민들은 월세가 밀리면 거리로 내쫓긴다. 연구책임자 정혜주(보과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쪽방 거주자와 거리 노숙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약 40%가 노숙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며 “여름에는 월세를 저축하기 위해 일부러 노숙하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 물 새는 건물26일 정화조가 막힌 한 건물에는 갈라진 벽 틈 사이로 물이 샜고 한 시간도 안 돼 발목까지 물이 찼다.사진 | 차정규 기자 regular@

“죽지 못해 살지 뭐”
쪽방에 8년째 거주 중인 조두선(남·56) 씨는 아랫니가 없다. 수년째 앓아온 당뇨병 합병증이 그 원인이다. 당뇨병으로 말초신경에도 장애가 와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몸무게가 55kg인 그는 2013년 5월, 당뇨로 인한 부종으로 온 몸이 부어 몸무게가 65kg에 육박했다. “얼굴, 손뿐만 아니라 성기도 부어 소변을 앉아서 볼 수밖에 없었어.” 그는 당뇨병 외에 중풍도 앓고 있어 2014년 봄까지는 지팡이를 짚었다. 현재도 그의 발목을 누르면 누른 부분의 살이 바로 올라오지 않고 누군가가 밀면 몸을 지탱할 수 없이 바로 넘어진다.
이러한 상황에도 그는 병원에 가기를 꺼린다. 높은 의료비 때문이다. 자활근로로 월 45만원을 서울시 쪽방상담소로부터 받지만 방 값과 공과금, 통신요금 등을 제외하면 그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대략 20만원이다.
부양의무자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도 없다. 부양의무자란 부모나 자녀 중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부양할 수 있는 직계가족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조 씨는 기초생활수급을 원하는 이유로 수급비보단 의료혜택을 먼저 꼽았다. “동자동에 방문하는 정치인들에게 기초생활수급비보다 의료혜택을 달라고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스치고 지나갈 뿐이야.”
조두선 씨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각을 잃어가는 주민의 일화를 소개했다. “옆방엔 당뇨병 합병증으로 실명되고 있어. 그런데도 냉장고에 넣었던 차가운 밥에 고추장과 마늘을 비빈 채로 먹지.” 다행히 조 씨는 과거보다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주기적인 운동과 등산이 좋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는 치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운동과 치료를 함께 했으면 더 효과가 있을 텐데…”
조두선 씨처럼 쪽방 주민들 대부분의 건강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월 50만원 미만을 받는 주민들은 병원에 가지 못하고 영양관리도 안 돼 만성질환을 앓는다. 동자동 사랑방 조승화 사무국장에 따르면 주민들 중 대부분은 신혈관질환을 앓고 있다. 조승화 사무국장은 “영양, 운동 등 관리가 안 되는 상황과 음주, 흡연이 원인”이라며 “건강문제를 해결하기엔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매우 없다”고 말했다.
정혜주 교수는 “몸이 아파 마취제로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며 “한 주민은 주민회의에서 서명지에 ‘나는 죽어가고 있다’고 썼고 후에 돌아가신 채 발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의 건강상태에 대해 정 교수는 “이런 현상은 건강후진국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며 “국제보건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국내보건을 한번쯤 돌이켜볼 때”라고 말했다.

▲ 변기한 건물의 변기는 물도 내릴 수 없어 누군가가 위층 세면장을 사용해야만 물이 내려간다.사진 | 차정규 기자 regular@


쪽방촌에선 흔한 이름, 고독사
2월 한 달간 4명의 거주민이 생을 마감했다. 2명은 병원에서 2명은 거주하던 쪽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4명 중 1명은 그의 가족이 거둬 장례를 치렀다. 1명은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했고 2명은 가족이 누군지조차 모른다. 그렇게 무연고자가 돼버린 시신 3구는 서울시에서 다른 지역의 무연고 시신과 함께 일괄적으로 화장된다. 동자동에선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조승화 사무국장은 “방에서 생선 썩는 것 같은 냄새가 나 문을 열어보니 돌아가신지 사나흘된 시신만 남아있었다”며 “동자동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정혜주 교수와 함께 쪽방지역 건강문제를 연구해 온 김진성(대학원·보건과학과) 씨는 3년간 주민들을 만나 정신건강자조모임을 진행했다. 상담 결과, 주민들의 정신건강의 문제는 ‘혼자 있는 것’이 원인에 있었다. 그는 학습된 무기력감에 대해 언급하며 “혼자 이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고 이에 ‘차라리 그냥 놔두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쪽방촌 거주민 이배식(남·69) 씨는 쪽방촌 주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고독함을 꼽았다. “쪽방촌엔 갖가지 사연으로 혼자가 된 사람들이 많아. 외로움이 굉장이 힘들고 고통스러워.” 조두선 씨도 같은 의견을 말했다. “정말 아플 때 방문을 보면서 ‘저기서 누군가가 문 열고 들어와줬으면…’이라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야.” 마지막으로 조두선 씨는 웃으며 말했다. “쪽방에 사는 사람도 사람이고 나름의 질서와 서로간의 의리도 있어. 선입견을 갖지 말고 바라봐줬으면 해. 고마워.”
동자동 쪽방촌에서 고독사는 흔한 단어다. 조두선 씨는 옆 방 사람이 하루 이틀 안 보이면 가서 문을 두들겨 생사를 확인한다고 했다. “옆 방 사람이 하루 이틀 안 보이면 가서 문 두들기고 밥은 먹었냐고 확인하고 그래.”
고독사는 단순히 외로움으로 인한 죽음이 아니다. 고독사는 한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라 죽음 그 이후의 상황까지 포괄한다. 정혜주 교수는 고독사는 외로운 삶의 총체적 결과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매일 같이 아픈 사람이 ‘오늘도 적당히 아프다 넘어가겠지’란 마음으로 지낸다”며 “그러다 혼자 아파서 소리도 못 지르고 전화벨도 못 누르는 상황에서 숨을 거두는 것이 고독사”라고 말했다.
고독사는 한 사람의 죽음 후에도 존재하는 단어다. 조승화 사무국장은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도 고독사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생을 마감한 이후에 그 누구도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 자체도 고독사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샤워시설한 건물 복도 끝에는 층마다 수도꼭지가 배치돼있고 물통과 바가지만이 샤워시설의 전부이다.사진 | 차정규 기자 regular@

이런 이유로 동자동에는 마을 장례위원회가 있다. 마을 장례위원회는 고독사한 사람들의 가족을 찾아 시신을 인수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마을에 분향소를 마련해 고인을 위로한다. 주민들은 무연고자가 된 시신을 인수하고 싶지만 이는 위법이다. 조승화 사무국장은 마을 장례위원회 존재 자체에 대해 의의를 둔다. 그는 “수많은 사연으로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망이 0인 사람에겐 큰 위로가 된다”며 “그들은 본인도 생을 마감한 후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쪽방 주민을 구하려면
열악한 쪽방 거주민의 삶은 진전될 수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주거상향만으로는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윤영 빈곤사무연대 사무국장은 주거안정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렴한 주택만이 대안이 되진 않는다”며 “쪽방촌 주민들의 큰 위안인 ‘공동체’가 해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화 사무국장도 같은 맥락에서 지속적인 물품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 사례를 언급하며 “쪽방촌에는 봉사활동이나 구호물품지원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임대주택으로 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며 “임대주택으로 주거를 옮기고 상황이 나빠진 사람도 꽤 많다”고 말했다. 또 그는 “쪽방지역 건물 하나하나를 ‘자본적 시장원리’로 개조하다보면 월세가 높아져 쪽방 주민들이 내쫓긴다”며 “정부가 쪽방을 하나의 거주공간으로 인식하고 오롯이 ‘자본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게 도와주며 책임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혜주 교수는 복지개념 자체에 대해 돌이켜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한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며 “그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 수급비만을 주는 것은 국가가 가진 의무와 책임을 다 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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