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크기의 여행용 캐리어 가방과 함께 임공빈(정보대 컴공11) 씨는 홍대로 향한다. 공항철도가 있는 홍대역에 여행 가방을 끄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의 가방은 어느 여행 가방과 다르다. 그 가방에는 그가 노래를 부르기 위한 준비물이 들어있다.
▲ 사진 | 차정규 기자 regular@

# 공연장 찾기
버스커에겐 겨울 날씨는 가혹하다. 매서운 칼바람이 마이크를 잡은 버스커의 손을 칠 때면 따끔따끔하다. 추위를 의식한 듯 두꺼운 남색 외투를 걸치고 그는 자신만의 무대를 찾아 나선다. 버스커는 스스로 공연장을 찾아야 한다. 그가 자주 찾는 무대는 홍대 앞 놀이터. 의자가 마련돼 있고, 사람들이 왕래가 잦은 놀이터는 버스커에게 안성맞춤인 공연장이다. 그가 앉는 벤치는 관객의 객석이며 무대가 된다. 벤치에 캐리어 가방을 올려놓은 채 한동안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미 먼저 온 팀이 있네요. 어쩌죠. 저쪽 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는데요.” 웅장한 사운드의 보컬 목소리와 함께 댄스를 추는 4인조 그룹 버스커의 공연이 계속됐다. “지금처럼 다른 팀이 큰 소리로 공연하고 있으면 다른 버스커들은 공연하기 힘들어요. 소리가 묻히기 때문이죠. 주 장르가 발라드와 어쿠스틱 이다 보니 힙합과 댄스를 하는 공연 팀 소리에 묻혀 조용한 곳을 찾으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아요. 이럴 때면 발만 동동 구르다 장소를 옮기거나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죠”
버스커들이 선호하는 공연 장소인 ‘걷고 싶은 거리’ 주도로와 홍대 놀이터는 경쟁이 치열하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자리 잡기도 힘들어요. 날이 풀리면 더 일찍 와서 자리를 잡기도 해요.” 기웃기웃 버스커들의 공연을 지켜본지 10여 분, 미끄럼틀 앞 댄스 그룹 버스커들이 앰프를 주섬주섬 가방에 담아 놀이터를 떠난다.
# 무대 설치하기
그가 미끄럼틀 옆 조그만 벤치에 섰다. 가져온 여행 가방을 열어 빨간색 테두리를 가진 앰프와 그리고 마이크를 벤치에 올려놓고 조립한다. 그가 사용하는 앰프는 건전지를 이용한 충전식 장비다. “거리에는 전원을 연결할 전기가 없어요. 건전지 6개를 넣는 앰프를 사용하는데 배터리가 다 되면 공연도 그만해야 해요. 버스커는 마이크 스탠드부터 앉아야 할 의자까지 가지고 다녀요. 많은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버스커에게 스피커와 마이크는 필수장비가 됐다. 주변 상점, 길거리 소음, 그리고 다른 버스커들의 공연소리 때문이다. “마이크 없이 노래하는 건 무모해요. 예전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와 기타로만 공연한 적도 있었는데 이젠 장비가 있어야만 해요. 홍대는 사람도 많고 소리도 많은 곳이니까요.” 빨간색 테두리를 가진 그의 엠프는 작년 가을 낙원 상가에 직접 찾아가 깎고 또 깎아 현찰로 산 귀중한 앰프다. “보통 음악 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요. 저처럼 학생인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저도 직접 종로 낙원 상가에 가서 악기상점 주인에게 사정사정해 15만 원을 깎아서 샀어요. 아무래도 부담스럽죠. 무명이고 수입원도 없으니 경제적 부담이 커요.”
# 관객 단 1명이라도
설치한 앰프와 마이크를 잡은 뒤 그가 벤치에 앉아 공연할 채비를 한다. 스피커에 연결한 스마트폰은 MR용이다. “일반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MR을 사용할 수 있어요. 가끔 노래방 에코처럼 적절치 않은 MR이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잘 골라야 해요. 사실 버스킹 만을 위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결제하는 돈도 만만치 않아요.” 작은 생수 한 병을 한 모금 들이킨 뒤 곧바로 첫 곡을 시작한다. “항상 첫 곡을 시작할 때면 관객이 대부분 없어요.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노래하기란 민망해요. 하지만 노래를 불러 관객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은 관객이 처음부터 있을 때도 있어요. 그때는 오히려 관객이 떠날까 봐 초조해요. 그래서 더 잘 불러야겠다고 마음먹고 노래하죠. 처음 노래는 항상 떨리지만 이젠 익숙해요.” 그의 노래가 1절이 끝날 무렵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한둘 모여든다. 5명의 관객이 의자에 앉아 조용히 박수를 치며 리듬을 맞춰 준다. 관객의 호응에 그는 종종 관객과 눈을 맞추며 리듬을 탄다. 하지만 곡 하나가 끝나기 무섭게 몇몇 관객들은 자리를 뜬다. 다음 곡 준비를 위해 재생 목록을 바꾸던 찰나였다. “공연 중 잠시라도 공백기가 생기면 관객은 가차 없이 떠나요.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관객이 사라지면 허탈하죠. 공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해요. 또 멘트가 지루하면 관객이 떠나요.” 두 번째 곡도 관객 없는 무대에서 시작됐다. “노래만 잘해서는 버스킹을 할 수 없어요. 재미있게 진행해야 관객을 묶어둘 수 있거든요. 재밌게 진행하다 보면 관객은 공연을 계속 봐줘요. 입담도 좋아야 하고 순간순간 재치도 있어야 하죠. 관객과 직접 호응하는 방법도 알아야 해요. 어쩌면 노래보다 이게 더 중요한 부분인 것 같기도 해요.”
1인 공연 이다 보니 공연진행과 관객관리까지 모두 버스커의 몫이다.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공연을 훼방 놓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공연하는 바로 앞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길에 앉아 방해 하는 사람도 있어요. 또 자기가 노래 한 곡 하겠다고 마이크를 뺏어가기도 해요. 애써 모은 관객들이 다 떠나가는 것 같고 훼방 놓으시는 분들이 원망스러워요. 너무 심할 경우엔 자리를 옮기거나 공연을 끝내기도 해요. 아무 이유 없이 공연을 방해할 때는 참 힘들죠.”
# 떨렸던 기억 ‘첫 콘서트’
2013년 가을 무렵 군 복무 시절 외박 기간, 그는 처음으로 버스킹에 도전했다. 군인의 자신감과 용기로도 거리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 무작정 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고 덜덜 떨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어요. 처음 버스킹을 하게 된 건 군대에서 만난 후임 덕분이었죠. 평소 노래 부르기도 좋아했고 버스킹을 꿈꾸었지만 두려웠거든요. 하지만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하던 후임에게 노래를 배우고 버스킹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하게 됐어요.”
버스킹을 시작한 후로 그의 삶은 더 윤택해졌다고 한다. “버스킹을 하면서 이전보다 더 질 좋은 삶을 사는 것 같아요. 관객 앞에 서는 자신감 때문인지 모든 일에 자신감이 붙었죠. 관객 없이 허공에 혼자 말할 때도 있지만 제 성격이 밝아지고 있는 게 느껴져요. 이러한 모든 것이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혹시나 버스킹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권유하고 싶어요. 노래하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모든 고민을 잊어버린 채 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어요. 그게 버스킹을 하는 이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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