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제국>(이학사)에서 개별 국가의 주권이 쇠퇴하고 WTO, IMF, 세계은행 등 일련의 초국가적 기관들이 주권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제국은 맥도널드나 MS사 같은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초국가적 기구들이다. 그렇다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은?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질서의 최종 권위가 아니다. 국민국가의 주권에 기반 한 제국주의와 달리 오늘날의 제국은 탈중심적, 탈영토적인 지배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국에 대한 대항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대항의 주체는 제국의 실체를 자각한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대중들이다. 그리고 대항의 범위는 제국적 지형 안에서, 그러니까 전지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각성한 전 세계의 대중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거대한 연대를 구축해 초국가적 제국 질서에 대항하는 것이 네그리와 하트의 구상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저자들의 다음과 같은 기대감이다. “한국의 풍부한 정치적 전통, 전 지구적 경제 회로 안에서의 한국의 위상, 한국의 혁신적인 사회운동 모두는 제국의 복잡성과 또한 대중의 힘과 능력을 말해준다.”

 한편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논객 마이클 앨버트는 <파레콘>(북로드)에서 참여 경제(Participatory Economics)를 뜻하는 ‘파레콘’(Parecon)의 구상을 자세하게 전개한다. 파레콘은 ‘공평성, 연대, 다양성, 자율관리, 생태적 균형 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경제 정의를 구현하는 제도적 비전’이다. 파레콘의 적들은 무엇인가? 자본주의적 세계화, 부익부 빈익빈, 문화적 가치의 획일화, 약자에 대한 억압, 공공재에 대한 경시, 중앙계획과 통제와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 경제 행위자들 사이의 적대감 등이다.

 이러한 적들을 극복하기 위한 파레콘의 핵심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사적 소유가 아닌 사회적 소유, 위계적인 직장 조직이 아닌 일련의 노동자·소비자 평의회와 균형적 직군, 재산과 권력 또는 산출에 대한 보상이 아닌 노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 시장이나 중앙집권적 계획이 아닌 참여적 계획, 계급 지배가 아닌 참여적 자율관리 등이다. 아나키즘, 자율주의, 조합주의, 유토피아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의 요소를 아우르는 셈이다.

 참여와 자율에 바탕을 둔 파레콘은 인간 관계의 본질적인 호혜성과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전제로 할 때 유효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본래 가망이 없는 게 아닐까? 저자는 그런 질문에 대해, 인간이 사악한 존재이기를 사실상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 드는 냉소주의라고 쏘아붙인다.

 금년 봄에 출간돼 20여 개 언어로 번역된 <파레콘>과 출간 후 2년 안에 16개 언어로 번역된 <제국>은 전 세계 진보 진영의 머리와 가슴을 설레게 했다. <파레콘>은 한 사회의, <제국>은 전 지구적 청사진이다. 전자가 제도적인 측면의 상세 설계도라면 후자는 현실 인식에 주안점을 둔 거대한 지형도다.
 두 책 모두 보편적 전망을 지향하고 있지만, 한반도가 그 보편적 전망의 틀 안에서 예외적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분단이라는 현실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냉전 이전과 냉전 이후를 동시에 살고 있는 우리의 고민에 이 두 책이 답해주지는 않는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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