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안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수면 위에 드러난 갈등이 없어서 모든 순간이 이치에 맞고, 올바르기에 물 흐르듯 흘러가는 걸까. 역사에선 구습에 맞선 사람들을 레지스탕스(resistance)라 칭하지만 현실에서 구습에 맞서는 순간, 부적응자가 되기에 온갖 핍박을 견뎌야 한다. 8~9학기면 떠날 대학에서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다. 이치가 맞지 않고, 틀렸더라도 우리는 잠시 눈을 감을 뿐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자기주문을 외고, 끝내 체제에 적응한다. 그리고 우린, 문화를 익히고 다시 아래로 전달하는 데 일조한다. 대학사회에 자유화와 개인주의 바람이 불었다지만, ‘당연할 수 없는’ 문화가 아직 ‘당연하게’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전통의 탈을 쓰고 강압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학과와 동아리만이 아니더라도 곳곳에 만연해있는 선후배 사이의 잘못된 관계가 그 예다. 혹자는 ‘옛날보다 그래도 나아지는 추세고, 그 정도면 괜찮지 않아’, ‘문화인데 어쩌겠어’라고 말한다. 이에 손애리(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사회 문제에 기여하는 공범이 되는 길”이라 경고한다. “고려대는 학생이 잠깐 거치고 나갈 장소일 뿐 최종 목적지가 아니에요. 최종 목적지는 ‘사회’죠. 만약 대학에서 선배의 잘못된 권위를 경험했다면 위계가 공고히 자리하는 우리 사회에 나갔을 때, 그 질서의 문제를 못 볼 것에요. 그리고 그 악순환을 재생산하는 주체가 우리가 되겠죠.” 아래의 사례들로 대학사회의 모습을 일반화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지금도 이러한 일이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기사의 취재원은 모두 익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너질 수 없는 '전통' 인가
전국적으로 ‘군기 잡기’로 유명한 학과가 있다. 본교도 예외는 아니다. 그 학과들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학생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99%가 거부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학과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적이 없다’며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처럼 극도로 폐쇄적인 구조 때문에 외부에선 그 학과들의 모습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악순환을 끊기 위한 내부의 노력은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A(생명대) 씨는 생명대의 xx학과 학생이다. xx학과는 새터 모습부터 색다르다. 밥을 먹으러 지하 식당으로 이동할 때, 그들은 등에 뒷짐을 지고 걸어야 한다. 분위기는 엄숙하다 못해 살얼음판이다. 새터 응원 연습 후, 숙소로 돌아와 술 먹는 자리에서도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 장난도 칠 수 없다. 생명대 학생회장은 방을 돌면서 주도(酒道)를 알려준다. 주도란 술을 마시거나 술자리에 있을 때의 도리를 말한다. 주도엔 △선배님들 오시면 일어나서 큰소리로 인사하기 △학번제 BGM 깔기(선배들이 마실 때 최대한 가볍고 벌칙 없는 BGM을 하고 선배들이 기다리지 않게 BGM을 넣는 것) △후배가 잔 빼지 않기 등이 있다. 이를 어길 시 술을 마셔야 하거나 선배로부터 핀잔을 듣는다. 1학기만 되면 반복되는 문화도 있다. 학과 행사의 ‘의무’참석이다. 이는 ‘내리갈굼’의 전형적인 예다. 내리갈굼이란, xx학과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고학번이 과 회장을, 이로 인해 과 회장이 반 대표를, 다 시 반 대표가 반 구성원을 압박해 과 행사 진행과 참여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하는 구조를 말한다. 06학번부터 다양한 고학번이 학과 행사에 참여하는 xx학과의 특성상 내리갈굼은 반복되는 굴레다. 학과행사에 신입생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으면 고학번의 쪼임이 시작된다. 이로 인해 과 행사는 신입생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 참여하고 싶지 않은 신입생은 선배에게 사유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유는 학생회 구성원 중심의 나름의 ‘회의’를 거친다. 회의를 통과한다면 정당한 사유가 되겠지만, 대부분 통과되기 힘들다. 참여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만으로 불이익이 가해지기도 한다. A 씨의 후배는 새내기 시절, 과 행사에 가지 못한다고 말하자 선배들에게 ‘앞으로 우리의 관계가 소홀해질 것이다’, ‘카톡에서 내 이름을 지워라’는 말을 들었다. 후배가 선배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 문화도 여전히 당연하다. 학번제가 유지되고 있는 xx학과는 과 단체 잠바에 학번이 박혀 있다. 학과 특성상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한 학생이 많아 14학번이 빠른 97년생이고, 15학번이 95년생이더라도 학번제에 따라 자신보다 3살 어린 선배를 깍듯이 모셔야 한다. 친해져 말을 놓더라도 사적인 자리에서만 가능하다. 운이 나빠 들키게 되면, 학생회가 말을 놓은 선후배 학생들에게 연락을 해 ‘왜 말을 놓았냐’는 으름장을 놓는다. A 씨는 소속된 학과 학생들이 이러한 과 문화에 순응하는 분위기라 했다. 그는 “다른 학과의 경우를 잘 모르다보니, 우리의 경우가 잘못된 지 인식하기 어렵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후배의 자유는 어디에
B(의과대) 씨는 의과대 또한 선배들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심한건 당연시 되는 문화라고 말했다. 선배들마다 신입생에게 요구하는 예의가 달라 신입생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한 선배가 “술은 꺾어 마시라”고 해서 다른 선배 앞에서도 술을 조금씩 나눠 마셨는데, 그 선배는 그걸 허용하지 않는 것 이다. 심지어 “얘 꺾어 마시는 것 봐. 대박이지 않냐”라며 그 앞에서 면박을 주기도 한다. 또 신입생들이 선배들 앞에서 경직돼 있을 때가 많은데 어떤 선배가 “너희들 왜 이렇게 굳어서 선배들을 불편하게 만드냐”고 해서 조금 웃으면, 다른 선배가 와 “너네 왜 이렇게 편하게 있냐”고 지적하는 것이다. B 씨는 “이런 상황이 너무 자주 반복되니까 ‘이게 사회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펐다”고 고백했다. C(의과대) 씨는 의과대만의 또 다른 문제는 폐쇄적인 동아리 문화에서 나온다고 했다. 의과대엔 26개(2014년 등록기준)의 동아리가 있다. 애동연 소속 동아리를 모두 합친 수에 버금간다. 의과대 학생들에게 동아리는 일종의 ‘라인(line)’이다. 그렇기에 신입생을 많이 모으는 게 관건이다. 많이 모으지 못 하면 선배들에게 “작년엔 7명은 모였는데 왜 이번엔 3명이냐? 도대체 뭐한거냐”라고 크게 혼난다. 때문에 의과대에선 ‘동아리 엠바고’ 문화가 존재한다. 엠바고(embargo)란 일정 시점까지 보도금지를 뜻하는 매스컴 용어다. 새터 이전엔 동아리에 대한 어떠한 홍보도, 말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한 동아리 문화로 신입생은 ‘간담회’라고 부르는 동아리 소개 술자리에 자주 참석해선 안 된다. 3개의 다른 동아리 간담회에서 얼굴만 비춰도 “쟤 왜 저렇게 간보고 다니냐”는 말이 돌아온다. 한번 들어간 동아리에서 나오는 것도 힘들다. 동아리를 나가면 ‘의과대에서 적응 못한 애’라 낙인 찍히고, 가혹한 페널티(penalty)가 있을 거란 선배의 경고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취직이나 전공 선택 등의 과정에서 불이익이 있을 거란 언급을 해 후배들의 공포를 조장하는 게 한 예다. 의과대 동아리 중에는 아직까지 얼차려나 머리박기를 시키는 동아리가 남아있다. 실제 사례를 말해줄 수 있냐는 질문에 또 다른 의과대 학생 D(의과대) 씨는 “워낙 의과대가 좁은 사회라 말을 하면 어떤 사례인지 다들 알기에 말해주기 조심스럽다”고 답했다.
우리의 응원단, 그 이면엔
지난해 여름 E(정경대) 씨는 강원도 낙산 해수욕장의 한 수련원에서 응원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응원단의 옆방에 머물렀던 그는 숙소 안팎을 오가며 학교에서 보지 못한 응원단의 이면을 목격했다. 강당에서 응원단원 여럿이 얼차려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E씨의 무리가 보자, 그들은 강당 문을 닫았다. E 씨의 무리는 방으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급한 소리와 분주한 발소리가 들렸다. “애 숨 못 쉰다고? 괜찮아” 밖으로 나가 E 씨의 무리는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응원단의 한 구성원이 “애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갔다”고 말했다. E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 후, 방에서 술을 마시던 응원단원 모두가 다시 강당으로 소집돼 전체적으로 의식 확인이 이뤄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장면도 E 씨에게 포착됐다. E 씨가 화장실에 가니 응원단 후배와 선배로 보이는 두 명이 있었다. 후배로 보이는 학생이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았다. 선배가 “토할래”라고 하자 후배가 군기가 빠짝든 목소리로 “네!”라고 했다. 후배는 ‘억억’거리며 토했다. E 씨의 눈엔 후배가 억지로 헛구역질 소리를 내며 토하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선배는 그나마 ‘착한’ 선배였다고 E 씨는 말했다. 이유는 다음에 본 장면 때문이다. 복도를 지나가니 선배로 보이는 학생이 후배로 보이는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보였다. “너 이따위로 밖에 못해?”선배의 윽박에 그 후배는 펑펑 울고 있었다. E 씨는 목격담을 재차 회상할 때마다 “응원단의 문화를 안 이상 응원단원들이랑 쉽게 친구를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선배의 권유와 강제 그 사이
20명 이하의 절대평가 정족수를 위해 후배는 수업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F(인문대) 씨는 학부생으로 입학해 과가 정해지기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어떤 과를 가야할지 미리 전공수업을 듣고 선택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 학번 위 선배들이 웃으면서 “네가 들어오면 절대평가가 깨진다”고 말하며 전공 수업을 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F씨는 “실제로 동기 중에 그런 선배들의 압박에 못 이겨 수업을 뺀 친구가 있다”며 “또 다른 동기는 선배에게 ‘뭘 벌써부터 전공수업을 듣냐. 2학년 때부터 들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늘 있는 일인지 묻자 F 씨는 단호히 “매학기”라고 말했다. 술자리에서도 선후배의 문화는 계속 된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학생들에겐 술자리가 불편하게 다 가오기도 한다. 술을 강제로 먹이는 분위기 탓이다. 술을 잘 못 마시는 G(미디어) 씨는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선배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는 “한 선배가 공개적으로 ‘선배가 주는 술은 버리지 마라. 차라리 못 마신다고 하라’고 했다”며 “하지만 술을 못 마신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여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학생이 은근히 배제되는 상황도 그들이 술자리를 어려워하는 이유다. H(문과대) 씨는 권주가 등으로 원샷을 강요하는 술자리 분위기로 인해 과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 힘들었지만, 술 잘 마시는 테이블과 술을 잘 못 마시는 테이블이 나뉘는 걸 경험한 후로 과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그는 “술 게임을 신나게 하거나 술을 왁자지껄 마시는 테이블이 소위 ‘핫하다’는 소리를 듣고 선배들도 많이 찾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하거나 별로 안 마시는 테이블은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고 선배들도 오길 꺼린다”고 말했다.
동등하게 서로를 바라봐야 할 때
사회가 그렇듯 모든 학과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후배에게 강압적인 선배도, 후배를 친구처럼 잘 대해주는 선배도 있다. 문제는 그 점을 당연하게 여기며, 강압적인 상황에 대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로 문제를 넘기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있다. 권순민(문과대 사회13)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꼰대저장소’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글과 사진을 공유해 잘못된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본교의 적지 않은 학생 단체에서 구성원간의 평등한 관계가 유지된다. 가장 대표적인 단체는 △생활도서관(관장=곽승찬) △고대문화(편집장=홍주은) △석순(편집장=김지훈)이다. 이 세 단체의 공통점은 구성원들이 학번과 나이로 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이다. 고대문화와 석순의 경우엔 나이에 상관없이 이름만 부른다. 김지훈 편집장은 “성을 떼고 ‘지훈!’ 이렇게 부른다”며 “그 뒤에 오빠, 선배란 호칭은 붙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활도서관은 더 특이하다. 생도의 구성원이 되면 그들은 하나의 별명을 지어 이를 이름처럼 사용한다. 곽승찬 관장은 “내 별명은 첫날 치킨 무를 먹어서 ‘킨무’”라고 말했다.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별도의 별명을 짓는 이유에 대해 곽 관장은 “이름을 부르면 감정적으로 껄끄러운 부분이 있어 이 또한 배제하기 위함”이라며 “이렇게 운영하면 완전히 학번과 나이를 잊게 된다”고 말했다. 홍주은 편집장은 “2000년대 초기에 만들어진 제도라고 알고 있다”며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위해 일종의 권위가 발언권에 지장을 받지 않길 원했고, 그 권위가 학생들에겐 나이 혹은 학번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이러한 문화로 도움이 됐냐고 묻자, 일체 동의했다. 김지훈 편집장은 “여성주의 교지인 석순의 가치 중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계를 없애자는 것인데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게 되는 것 같다”며 “구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말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한건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손애리 교수는 이러한 경험이 공론화되고 해결돼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런 사례들은 문화의 영역이기에 고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학생의 무관심이 학생을 미래 사회 문제의 주범으로 만드는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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