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전공에 상관없이 수학은 꼭 배워야 합니다.” 이국헌(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원론Ⅱ수업에서 그래프를 그리며 말했다.
대학교에서도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 지식을 활용한다. 오주영 (경영대 경영14) 씨는 “경영 과목을 공부하다보니, 고등학교 수학이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시장표본 분석에 활용되는 통계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나오는 내용을 기본으로 한다. 재무 분야는 미적분과 지수와 로그, 그래프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이처럼 대학교육 과정에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이 요긴하게 활용되기에 오 씨는 “고등학교 수학이 ‘쓸모’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과목별 교과 효능감에서 수학은 국어, 영어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수학교육의 현실, 수포자
한국 청소년의 수학 효능감은 OECD 34개국 중 28위로 국어, 영어에 비해서도 수학교과의 효능감은 낮다.  ‘수학을 포기한 자(者)’라는 의미의 ‘수포자’는 한국 수학교육의 현실을 보여준다. 2013년에 수능을 본 심영은(미디어14)씨는 “학생들이 노력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아 수학공부를 포기한다”고 했다. 많은 중·고등학생이 수학에서 답만 맞으면 풀이과정을 확인하지 않고 ‘자신은 이 문제를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수학은 답보다는 과정이 중요한데, 대충 넘어가는 습관으로 수학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게 한다.
시험 문제가 수포자를 만든다는 의견도 있다. 수능 수학, 내신 수학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방법으로 고등학교 수학 교육자와 상위권 학생들은 ‘반복학습’을 추천했다. 일례로 인터넷 강사 신승범을 검색하면 ‘고쟁이(수학 교재)를 세 번 반복해야 지옥에 안 간다’는 발언이 나온다. 수능 수학A형에서 만 점을 받은 김수경(미디어14) 씨는 “수능을 잘 보려면 문제집 10권을 푸는 것보다 한 권의 문제집을 10번 푸는 것이 낫다”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반복 학습해야 이길 수 있는 시험제도에서 학생들의 흥미도는 자연히 떨어지게 된다.
‘수학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대입전형’ 또한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이유다. 고등학교에서의 공부는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이 되다보니, 목표 전형에 수학점수가 필요하지 않다면 수학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이 많다보니, 입시설명회에서 수학 과목은 ‘상위권 대학과 하위권 대학 진학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표현된다.
이렇다보니, 수학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선행학습은 필수’라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의 통념이다. 역으로 선행학습이 오히려 수포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 김동중 (사범대 수학교육과)교수는 “대부분의 선행학습은 의미가 없는 기계적 문제풀이와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며 “학생은 깊이 알지 못하는 내용을 대충 안다고 믿음으로서 ‘피상적인 이해’가 누적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피상적 이해는 다음 단계의 학습에서 오히려 수학적 사고과정을 싫어하게 만드는 부정적 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수학을 왜 배우나요”
수포자를 만드는 교육환경은 수학과목의 낮은 효능감으로 나타난다. 특히, 문과와 예·체능 계열을 선택한 학생은 진로가 수학과 큰 연관이 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 수학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낮은 수학 교과 효능감은 △수학 자체의 단계적 구성 △수학용어의 추상성 △수학학습에서 유의미성의 결여가 주요한 요인이다. 수학교육에서 학년이 올라가며, 언어보다는 기호를 도구로 사용한다. 수학 기호는 일상 언어와의 연계성이 적어 수학은 다른 과목에 비해 추상적이다. 김동중 교수는 “수학 용어의 추상성과 더불어, 유의미성이 결여된 기계적 문제풀이는 학생들의 수학학습 동기부여에 큰 걸림돌이다”라고 덧붙였다.
고등학교에서는 수학을 재미있어하는 학생을 신기하게 여길 정도다. 서울 인문계 여고를 졸업한 본교생은 “수학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애는 국어나 영어를 잘하는 애와 다르게 신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그만큼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적어 일반고에서 내신 수학 1등급 따기는 쉽다”고 말했다.

현실에 적용되는 문제해결능력
전문가들은 한국 고등학교 수학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이 학생들로 하여금 부정적인 측면으로 인해 수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우려한다. 김동중 교수는 ‘실생활 속에서의 유용성’을 수학 공부의 가치로 꼽았다. 수학 문제를 풀며 기른 문제해결능력은 현실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극복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수학학습은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만나는 문제를 분석해 전략을 세우고 추론하여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전략을 발견해 실행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사고를 개발해 가는 유용성이 있다”고 했다.
복잡해진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도 수학 학습이 필요하다. 부동산, 주식, 월급, 실적. 수학을 빼고는 사회를 논할 수 없다. 수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전공인 문과대의 학생이라도 수학을 배워야 사회에서 소통할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수학을 배워야 한다는 이국헌(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가 다양화돼 한 가지 전공을 갖고 사회에 적용할 수 없다”며 “영문학을 알아도 사회를 전혀 모르면 교수가 되더라도 학생들에게 지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 한다”고 했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들 중에는 대학에서 본인의 전공과 무관해도 수학을 배우는 학생이 적지 않다. 김수경 씨 또한 ‘인문사회학을 위한 수학’이라는 교양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김 씨는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수학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학생이 중심이 돼야 한다.’ 교사, 교수, 학생이 입을 모아 제시한 해결책이다. 수학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을 양산하는 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생의 다양한 수준을 고려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35년 간 고등학교 수학과목의 교편을 잡았던 유항목(남·60) 씨는 현재 고등학교 교육에 대해 “소수 엘리트들을 위한 속도전”이라며 “각 학생의 이해 수준에 맞는 교육 속도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김동중 교수는 “획일적인 교육과정의 변화가 아니라, 학생들의 개인 차이를 고려한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했다. 전직 수학 교사인 유항목 씨는 수준별 수업의 평가에서 ‘공정성’을 벗어나는 것을 우려하며, 기본적으로 80점을 맞게 해주는 구조가 적당하다고 제시했다.
입시 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개편 또한 건강한 수학교육의 걸림돌로 제기된다. 교육 현장에서 수학은 ‘내신 줄세우기’의 용도로 사용된다. 문제를 출제하는 교사들은 학생의 등급 맞추기에 골몰하는 불필요한 노력을 해왔다. 유항목 씨는 “수학적 사고를 즐기는 상식교육이야말로 보통 교육의 지향점”이라며 현 입시제도에서 현실적으로 힘든 해법이라고 했다. 학생이 수학을 즐기는 교실이 되기 위해서는 시험 중심의 입시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유항목 씨와 김동중 교수 모두 ‘내신과 수능 평가 중심에서 벗어난, 서구식의 입학사정관 제도의 정상적인 안착’을 강조했다.
대학에서도 수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유항목 씨는 “대학에 진학한 후에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해 재미있게 공부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하지만 문과에서 상경계열이 아닌 경우, 교양과목을 제외하면 수학 교육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 이국헌 교수는 “대학에서 문과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야 한다”며 “꼭 학교가 주도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주축이 돼 인문계 학생들이 수학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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