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는 <돈키호테> 저자의 고향이자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엔 스페인 거장 소설가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생가와 곳곳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도시는 마드리드에서 교외선 철도인 세르까니아(cercanía)로 30여 분만에 갈 수 있다. 2층 기차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봤다. 북적이는 수도 마드리드를 조금만 벗어나자 한산한 풍경이 펼쳐진다. 적색으로 된 지붕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벽엔 내용을 알 수 없는 그래피티가 기차역 너머의 돌담벼락을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나라완 다른 바깥 구경에 심취하던 찰나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 도착했다. 기차역 개찰구를 나오자 카메라와 지도를 든 관광객보단 장바구니에 빵이며 야채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는 196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됐지만 역사적 중심지만큼은 개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그래선지 아스팔트 대신 골목마다 펼쳐진 돌길엔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다.
도시 중간엔 세르반테스 광장이 있다. 광장 한가운데엔 기사 동상이 우뚝 서있다. 넓은 광장에 홀로 서있는 동상에선 고독함이 묻어난다. 돌로 된 밑기둥에는 <돈키호테>의 장면들을 묘사한 그림이 덧대어 있다. 돈키호테의 가장 대표적인 장면인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가 그 중 하나다. 광장 중심에 서서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알칼라 대학이 위치해 있다. 이 도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는 ‘오로지 대학만이 들어서도록 설계되고 건설된 세계 최초의 도시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학문의 전당을 지을 때 참고해야 할 모델 역할을 해왔다’는 평을 받는다.
광장의 서쪽 방향으로 난 마요르가(Calle Mayor)를 따라 걸었다. 좁은 너비의 길엔 휴일을 맞이한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점심시간 즈음이 되자 길가의 가게엔 맥주 한 잔을 든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요르가를 중간쯤 걷자 벽돌로 지어진 세르반테스 생가 박물관이 보였다. 박물관 앞엔 산초와 돈키호테가 벤치에 앉아 대화하고 있는 동상이 있었다. 제 몸보다도 커다란 창을 든 돈키호테는 두 팔을 벌리곤 원대한 무언가를 말하는 모양새다. 반면 익살스런 표정의 산초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세르반테스의 생가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갖출 건 갖춘 이 2층집은 하급 귀족 집안이었던 그의 태생을 짐작케 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보인다. 건물은 ㄷ자 모양으로 마당을 둘러싼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접견실은 물론이고 회의실과 와인 저장고도 있다. 1층엔 수술실도 있는데, 이는 외과의사인 아버지 로드리고 데 세르반테스(Rodrigo de Cervantes)가 사용하던 방이다. 로드리고는 이 방에 치실과 정화장치 등의 수술 도구를 보관했다. 그는 당시 집 주변에 위치한 안떼사나(Antezana) 병원에서 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층엔 할아버지 후안 데 세르반테스(Juan de Cervantes)가 주로 사용했을 남성용 방, 여성 및 아이용 방이 있다. 여성 및 아이용 방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장소로 추정된다. 2층 한 편엔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전시실엔 ‘키호테, 현대의 이미지(Quijote visiones actuales)’가 올해 5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전시에선 <돈키호테> 작품에 그려진 삽화 여러 점을 소개한다.
세르반테스의 유년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가족은 외과의사 아버지를 따라 바야돌리드, 코르도바 등으로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 하지만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이곳, 알칼라 데 에나레스는 그를 오랜 시간 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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