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는 2월 26일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안에는 △학과제 폐지 △학생의 전공탐색기회 제공 △학생상담 내실 강화 △인문학 및 소프트웨어 교육 강화 △융복합 학문단위 신설 검토 등이 담겼다.
학생 커뮤니티인 중앙인에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 동영상 및 수정계획(안) 안내’란 제목의 영상에서 김병기 기획처장은 이번 계획안에 대해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유연한 학사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며 “학생이 원하고 학생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전공탐색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계획안이 통과하면 2016년부터 중앙대 학생들은 2~3학기 전공탐색기간을 갖고 4학기에 전공 혹은 학과를 선택하게 된다. 또 학생의 전공 선호가 높은 학과 혹은 전공의 배정인원은 최대 120%까지 가능하며 3년마다 정원을 변경한다. 하지만 이 안은 일부 교수와 학생의 반발에 부딪혔고 중앙대학본부는 24일 교무위원회 의결사항을 통해 ‘학과제를 유지하되 단과대학 단위로 광역 모집하고 세부논의를 위한 교수와 학생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밝혔고 25일, 단과대학별 광역 모집의 학칙개정안을 내놓았다.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이 구조조정을 통해 청년실업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긍정적이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위한 기관으로 남아야할까. 기초 학문은 취업에 실용적일 수 있게 변화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중앙대학교를 포함한 대학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시각 중 일부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해야죠. 하지만 충분한 논의와 연구를 거쳐야 합니다.”
대학 구조조정 바람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다. 건국대학교는 19일 학부, 학과를 혼용해 모집하던 기존 제도를 학과로만 모집하고 기존 학과를 통합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화여대는 신산업융합대학을 신설해 △의류학과 △국제사무학과 △식품영양학과 △보건관리학과 △체육과학부가 소속을 이전하는 편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각 대학마다 구조조정의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대학별 구조조정의 방법은 다르지만 취업률에 도움 되지 않는 학과를 없애는 점에서 결국 같다”고 말했다.
중앙대를 포함한 ‘대학의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이화여대에서 20여 년 재직한 A교수, 지영래(문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본교 문과대학에 재직 중인 B교수, 이강석 중앙대 교수협의회장, 중앙대학교에 재직 중인 C교수에게 들어봤다.

▲ 26일 중앙대 정문에서 열린 긴급대토론회에는 김명환(서울대 영어영문학과)교수, 김영(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교육부 정책으로 인한 대학 구조조정
교육부는 2013년 12월, 향후 10년 동안 대학입학정원을 약 16만 명을 줄이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대학 구조개혁안’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모두 대학의 규모는 축소돼야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크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대학평가에 취업률, 재학생 충원률 등을 지표로 삼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그에 맞춰 재정을 지원하기에 대학은 구조조정을 반강제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영래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 어떤 대학부터 어떤 규모로 줄여야할지 문제는 대학 당사자의 이해와 맞물려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교육부는 취업률이란 표면적인 기준을 제시해 경쟁력이 약한 대학부터 도태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지원을 통한 반강제적 구조조정은 대학당국에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 B교수는 “취업률과 관계해 학과의 정원을 늘이고 줄이는 것을 정부가 종용한다”고 말했고 C교수도 “교육부의 정책으로 인해 대학이 단기적 시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자체에 대한 교수들의 맹목적 반감은 없었다. 하지만 대학 구조조정의 방향에 대해선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필요하다’는 입장과 ‘대학의 본분을 지켜야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A교수는 대학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구조조정’은 사회적 수요 변화의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A교수는 “이자율 조정 등 경제정책과 같이 사회적 수요가 변화하는 시점에서 정부차원의 대학 인원, 학과 등을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A교수를 제외한 다른 교수들은 모두 취업을 위한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했다. 그 근거로 대학은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닌 학문교육기관이자 연구기관이라는 명제를 들었다. 지영래 교수는 “큰 학문을 다루는 ‘대학’은 우리가 ‘대학 구조조정’이라고 말할 때의 그 대학과 다를 것”이라고 말했고 B교수는 “대학의 존립 이유가 취업이라면 전문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 문제 해결을 위한 구조조정인가
대학은 학생들의 취업을 도와야할까. 대학의 주목적은 취업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청년 실업률은 11.1%로 이는 1999년 통계기준 변경 이후 최대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실업문제 해결에 있어 대학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취업문제의 책임이 대학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취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은 엇갈렸다. A교수는 대학에서 취업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왔으며 대학이 학생의 미래를 열어줄 책임이 있다고 봤다. A교수는 “업계 정보를 알아보고 학생을 추천해주는 등의 노력이 제자의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라며 “청년들이 취업을 못해 자살하는 시점에서 대학이 그 책임을 부담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다른 교수들은 대학의 주목적이 ‘학생 취업시키기’여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구조조정은 정부가 취업 문제에 대한 책임을 대학에게 미룬 결과라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B교수는 취업 문제를 대학이 아닌 정부나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신규채용과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에게만 법인세율을 조정하는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신규채용을 늘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비율을 높이는 등 기업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 구조조정의 결과가 실업률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강석 중앙대 교수협의회장은 “대학에서 취업률이 높은 학과에 인원을 편중해도 사회의 취업할 일자리 자체가 늘어나진 않는다”며 “취업할 일자리는 정해져있는데 그 일자리로 갈 사람만 늘어난 꼴이니 실업률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문 영역은 지켜야하지만…
중앙대 계획안에 따르면 중앙대학본부는 학생의 전공 선호도에 맞춰 정원을 3년마다 조정하고 그렇게 되면 일부 학문영역은 사라진다. 전공 선호도가 높은 A전공과 전공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B전공이 있고 두 전공에 대한 학생 선호도는 변화가 없으며 두 전공 모두 정원이 100명이라고 가정해보자. 중앙대 계획안에 따르면 A전공은 정원이 3년마다 120%가 늘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전공 선호도가 낮은 B전공은 12년 만에 사라지는 산술적인 결과가 나온다.
학문 영역이 사라지는 것에 해 전문가들은 대학이 학문 영역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방법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A교수는 모든 대학에서 모든 전공자를 배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일부 전공의 졸업생이 과잉 배출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4년제 대학이 많은 현실에서 각 대학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특성화해 효율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며 “한정된 자원, 인력 등을 투자한다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학부 교육에서 사라진 학문은 대학원 석·박사과정에서 진행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A교수를 제외한 교수들은 대학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지영래 교수는 “취업난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이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을 배출하는 곳이 대학”이라고 말했다.
이강석 중앙대 교수협의회장은 전공의 선호는 매우 유동적이여서 기준으로 삼기에 부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전공에 대한 인기는 그 잣대가 모호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영화 건축학개론 개봉 당시 건축학과가 인기를 끌었었다”며 “전공의 선호도는 이처럼 유동적인데 이에 맞춰 전공의 정원을 정한다는 것은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교육 스스로 연구하고 담론을 형성해야
중앙대 선진화 계획은 구성원의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 계획안 발표 전날까지 몇몇 학장들은 계획안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고 했다. 이강석 중앙대 교수협의회장과 C교수는 구조조정 안 자체보다 이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사실이 더 큰 문제라고 봤다. 논의되지 않은 채 발표된 계획안에 대해 자세하게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그는 “몇몇 보직교수와 재단이 만들어낸 계획안은 읽어볼 필요도 없다”며 “구성원의 논의뿐만 아니라 사전 공지도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안은 무효하다”고 말했다. C교수는 교육부의 현 정책 하에서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그 논의를 구성원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는 원천적으로 교육부의 문제지만 그럼에도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내부적 합의와 상당기간의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번 안은 의사결정과정도 부실하고 내용도 부실하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앞에 놓인 대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 C교수는 대학 내부에 교수들로 구성된 자율적 대학 연구기관이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논의 없는 안을 대학본부에서 통보하는 식의 방식을 방어하기 위해 대학 교육을 스스로 연구하고 담론을 주도할 기관이 필요하다”며 “교수들이 대학 교육 혹은 대학 발전방향을 연구할 자율적인 팀을 꾸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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