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커피에 미쳐 있었죠. 몰입했던 그 순간들이 정말 행복했어요.”
서필훈(서양사학과 95학번) 씨는 2012년 세계 로스터스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그 다음 해인 2013년에도 그는 우승을 차지했다.

▲ 서필훈(서양사학과 95학번) 씨. 사진ㅣ서동재 기자 awe@

서필훈 씨는 세계 각지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커피 생두를 뽑는 컵 오브 엑설런스(Cup of Excellence)의 2013년 국제심사위원이자 국내 1호 큐그레이더(Q-Grader)다. 세계적으로 800여 명 정도인 큐크레이터는 생두의 등급을 평가하고 원산지를 식별해내는 고급전문가다. “정말 커피 생각만 하면서 지냈어요. 매일 늦게까지 연습하다가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면 내일은 어떤 방식으로 로스팅을 해볼지 생각했죠. 커피 관련 논문과 책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국회 도서관보다 고려대 도서관에 커피 관련 도서가 더 많아요. 다 제가 대학원 시절에 주문한 거예요(웃음).”
지금은 ‘커피 전문가’이지만 대학 시절 그의 전공은 서양사학이었다.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러시아 여성사를 공부했다. 그러던 중 앉아서 하는 학문이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공허감을 느꼈다. 문득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실력향상이 눈에 보이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공부와는 다르게 기술이 몸에 쌓이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커피를 내리는 기술이 늘고 있는 게 느껴졌죠.”
그는 학부 때부터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해 정경대 후문 근처에 있는 ‘보헤미안’ 카페에 자주 갔다. 당시 점장과 친해져 집에서 간단히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웠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보헤미안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는 점장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 커피 로스팅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대학원 석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 그는 갑작스럽게 쿠바 여행을 결심했다. 공부하면서 느낀 쿠바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이었다. 무작정 떠난 쿠바에서 그는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쿠바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깊은 곳에서 나오는 웃음이었죠.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살지는 않지만 ‘진짜’ 미소를 짓는 쿠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그는 쿠바에서 느낀 ‘행복’을 기반으로 스페셜티 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스페셜티 커피란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평가에서 80점 이상을 받은 커피로, 생두의 품질, 커피의 향과 질감 등을 평가해 결정한다. 그는 12개국의 업체와 직거래로 비용을 아끼는 대신 커피 수확자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안정적인 계약을 맺었다. “여러 나라에 직접 방문해야 해 힘은 들지만, 저는 좋은 원두를 얻어 좋고 커피 수확자는 더 나은 수익을 얻을 수 있어요. 이 과정이 선순환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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