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상담원마다 아르바이트 피해 상담 전화를 적어도 10번은 받아요. 임금 체불 건이 가장 많죠.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사례도 적지 않고요.” 고용노동부의 민원접수를 묻자 고용노동부 구민정 상담원은 이렇게 답했다. 이어 그는 “아르바이트 민원을 넣는 사람 중 20대 초반이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
일하는 곳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부당함에 침묵하거나, 이의를 제기해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후자를 택할 때, 어떠한 절차를 거쳐 어떻게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봤다. 허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임금체불을 경험한 후, 이에 대한 민원을 신청한 숭실대의 김 모 씨의 실제 사례를 1인칭 시점에서 서술했다.

▲ 김 모 씨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의 일부

세 달이 지났다. 쉽게 끝날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여정이 길다. 작년 7월,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야간총무로 일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근로시간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였다. 단, 휴게시간이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였다. 근로계약서상으론 난 하루에 4시간 일했고, 11시간의 휴게시간을 가졌다. 휴게시간이 업무시간의 3배인 것이다.
사장에게 “오후 6시부터 밤12시까지 일하고, 취침을 취한 다음에 아침 7시부터 아침 9시까지 다시 일하는 거 맞죠?”라고 묻자 그는 “그래, 그냥 계약서만 이렇게 쓰는 거지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고 답했다. 근로계약서의 내 근로시간은 4시간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최저 시급 5580원을 넘게 받는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월급이 51만 원이었으니, 하루에 4시간씩 주 7일을 일해야 시급이 약 7000원 정도로 계산돼 셈에 맞았다.
이것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공부하면서 일을 할 수 있고, 비록 고시원에 있는 밥이지만 저녁도 챙겨 먹을 수 있으니 그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내게 이 일은 꼭 필요했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하루에 8시간씩 주7일 일했던 나는 시급 2276원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 못 받은 금액을 계산해보니 450여만 원이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아니, 큰돈이었다. 주휴수당, 4대 보험 등 마땅히 누려야 할 다른 권리들도 당연히 보장받지 못했다. ‘그냥 일을 그만두고 말까, 아니면 이에 대한 민원을 제기할까?’ 고민했다.
순간, 그동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A 고시원에 야간총무로 지원했었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기존의 야간총무와 주간총무가 그동안 최저 시급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들이 실업급여라도 받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장은 그것을 알게 된 내 존재가 부담스러웠는지, 슬며시 내게 ‘4대 보험’을 들어주고 월급도 40만 원으로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기존의 총무들보다 더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있는 B 고시원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주간총무 덕분에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일한 주간총무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고, 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이를 참지 못했던 주간총무는 사장과 마찰이 생겼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사장은 다음 총무인 내게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자고 말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시, 자신이 오히려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 두 경험의 공통점은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근로 환경이 조금이나마 개선됐다는 것이다. 보장되지 않았던 4대 보험을 들어주고, 쓰지 않았던 근로계약서를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 또한 이 부당한 대우를 알리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나에 대한 기사가 나오자, “공부하면서 돈 벌면서 무슨 최저 시급이나 받으려 해”, “일 다 하고 돈 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치사하게 그러기는”이란 반응이 많았다. 처음엔 ‘일을 하기 전에 신고하지 않았던 내가 비겁한 것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일하기 전에 신고했다면, 달라질 수 있는 게 존재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이를 처벌할 근거는 어디에 있을 것이며, 이 이야기를 누가 들으려 했을까. 또한, ‘최저 시급’이 뭔가. 말 그대로 ‘최저’, 가장 낮은 임금이란 뜻이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약 2276원의 시급이 존재하는데 최저 시급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을 필요가 있나? 나의 움직임이 고시원 일을 할 잠재적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최소한 지금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해줄 것이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2월,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에 대한 민원을 넣었다. 허위로 작성된 표준근로계약서와 인수인계 시 적어둔 자료 등 일했던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흔적들을 증거로 제출했다. 근로감독관은 민원 내용이 사실인지 조사한 후 사장과 합의를 유도했다. 하지만 사장은 돈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증거는 충분했지만, 사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근로계약서와 같은 증거자료가 없었다면 게임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민사소송까지 가게 됐고, 3월 초 고용노동부는 내게 ‘체불금품확인’을 해줬다. 체불금품확인이란, 고용노동부에서 체불된 임금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걸 말한다. 만약 증거가 부족했다면 이를 받을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3월 말, 민사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에 상담 신청을 했다. 변호사는 내게 근로계약서 자체가 불량이기에 거의 90% 이상 승소할 것이라 했다. 민사소송과 함께 형사소송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엄연한 위법행위이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비는 변호사 선임은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로 해주었으니, 서류를 떼는 데 들어가는 15만 원 정도의 실비만이 들 것이다. 소송에서 이기게 되면 사장은 소송비용과 체불된 임금 450여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4월 20일쯤, 민사소송이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소 3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기다리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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