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3 16:09 (수)
아직 갈 길이 먼 의료분쟁의 해결책
아직 갈 길이 먼 의료분쟁의 해결책
  • 김재훈 기자
  • 승인 2015.05.26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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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7일, ‘마왕’ 신해철이 떠났다. 이후 그의 사망 사유가 의료사고일 수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의료사고와 그 피해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또 많은 단체의 노력으로 ‘일정 규모의 병원에서는 환자안전전담 인력을 두는 것’을 규정한 환자안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신해철이 떠난 지 7달이 지난 지금,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분쟁은 어떨까.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에 반해 의료분쟁 전반에 대한 정확한 통계수치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통계자료는 연간 의료사고로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많다고 말한다. 의료소비자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아직 정부 차원의 통계는 없지만 일부 통계자료는 연간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27000명으로 추정한다”며 “이는 연간 5000명이 사망하는 교통사고보다 훨씬 많은 수치”라고 말했다.
이런 의료사로고 인한 분쟁에서, 환자 측은 병원 측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환자 측이 병원 측의 과실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 점을 꼽는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법률사무소 힐링 홍영균 변호사는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폐쇄된 수술실에서 의료행위가 일어나는 등의 이유로 병원 측과 환자 측에서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한다”며 “이런 상황이지만 환자는 소송에서 의료인의 과실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 2014년 10월 16일, 모 병원에서 사망한 고 전예강(여당시 9세) 양의 어머니 최윤주(여40) 씨가 시위하고 있다. 사진출처 | 난예강이 블로그

믿을 수 없는 진료기록부
의료분쟁 소송에서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진료기록부다. 홍영균 변호사는 “의료과실이 있는 의료인의 진료기록부는 ‘가해자가 쓴 일기’라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의료분쟁에서 유일한 제3 증거인 진료기록부는 판결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환자 측에게 병원 측의 의료과실이 의심되는 즉시 진료기록부를 확보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병원 측이 허위 조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 제21조에는 병원 측이 환자 측에게 진료기록부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있다.
이렇게 진료기록부를 확보한다 해도 환자가 이를 통해 의료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심지어 어떤 병원의 진료기록부는 일부가 누락된 경우도 있다. 법률사무소 해울 신현호 변호사는 진료기록부 작성의 구조적 한계를 그 이유로 들었다. 그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서 진료기록부를 작성할 수 없듯 의료진이 의료행위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료법 제22조에는 ‘진료기록을 상세히 기록하고 서명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실제로 잘 지켜지지 않고 허위 작성 사실을 밝혀내기도 힘들다. 이에 강태언 사무총장은 진료기록부를 ‘어디까지, 얼마나 작성해야하는지’의 규정을 법에서 자세히 명시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진료기록부 누락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 언급했다. 강 사무총장은 “일부 병원에서는 고의로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가 의료사고 발생 후 수치를 조작해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병원에서는 진료기록부를 고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환자의 과실입증은 더욱 어려워진다. 법무법인 로앰 이동필 변호사는 “병원이 마음먹고 진료기록부를 완벽히 허위 작성한다면 환자 스스로 의료과실 여부를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진료기록부는 판결의 명확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안법영(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 이유가 법의 한계 때문이 아닌 비전문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독일의 경우 진료기록부가 누락되면 ‘진료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며 “국내에선 의료에 대한 비전문성으로 판사의 심증에 기댄 판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더 객관적인 증거자료 마련돼야
그렇다면 환자가 의료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방법으로 진료기록부보다 더 객관적 기록물인 CCTV 영상 등을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CCTV 촬영 등이 의무화돼있지 않고 설령 병원이 촬영했다고 해도 환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없는 현실적인 한계도 지적했다.
그 와중에 ‘CCTV 설치와 제공의 의무’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현호 변호사는 “중환자실 응급실에선 환자를 알몸상태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등 환자 치부가 다 보이는데 그것을 누가 보여주고 싶겠느냐”며 “개인정보제공 등의 문제가 걸려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3차 의료기관에선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에 대해 홍영균 변호사는 의료인의 진료기록 허위 작성이 EMR의 도입으로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의료기관이 EMR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변호사는 “EMR로 작성하면 접속 흔적 등이 남을 수 있어 진료기록 허위 작성이 더 힘들다”면서도 “아직 몇몇 의료기관은 EMR을 도입하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곳은 연필로 진료기록을 작성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분쟁조정중재 기구
정부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4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정과 함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을 신설했다. 의료분쟁에서 중재원의 주된 업무는 병원과 환자 측을 조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정이란 원고와 피고가 협의해 합의안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재원은 신청인이 조정을 신청해도 피신청인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면 조정할 수 없다. 이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언론중재제도,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피해구제제도 등이 피신청인의 참여 동의와 무관하게 조정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은 2014년 3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발의안의 주된 내용은 피신청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하는 ‘조정절차 참여의무화’가 골자다. 오 의원은 본 안건 검토보고서에서 ‘2012년 4월부터 1년간 조정 신청된 804건 중 40.2%만이 조정개시된 것’을 발의 근거로 들었다. 오제세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조정개시 참여여부를 피신청인이 결정하는 것은 중재원의 역할을 제한한다”며 “조정이 시작되면 합의가 이뤄지는 비율이 90% 이상이기에 조정절차 참여를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현호 변호사도 “환자와 병원 양측에 부담이 가는 소송보단 조정하는 것이 사회갈등을 줄이는 측면에서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절차마저 실효성 없어
하지만 조정절차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의견도 있다. 의료사고 가족연합회 이진열 회장은 조정절차가 환자 측에게 오히려 불만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그는 중재원이 ‘조정중재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불합리한 조정을 진행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 씨는 “조정이 완료되고 막상 보면 배상금이 턱없이 모자란 경우가 더 많다”며 “만족스럽지 못한 배상액이지만 피해자들은 소송비용, 승소가능성 등에 겁먹고 억지로 조정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6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의료사고 피해자 국회 증언대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참석한 피해자 중 한 명은 ‘우리가 한국의료조정중재원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소개되지만 중재원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고 소송비용과 소송결과 등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조정결정을 받아들였다’고 증언했다. 강태언 사무총장도 중재원이 실질적 조정에 힘쓸 것을 주문했다. 그는 “누가 봐도 의료분쟁 소송에서 1억 원을 배상받을 수 있는 환자의 경우에도 조정 후 터무니없는 금액을 받아온다”며 “중재원은 조정 성공률만 볼 것이 아니라 병원과 환자 양 측이 모두 만족하는 실질적 조정을 위해 힘써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입증책임을 줄여야
전문가들은 의료분쟁에서 환자의 권리를 높여야한다는 의견에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선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법무법인 고도 이용환 변호사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현재의 조정 역할보단 의료과실 여부를 판단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의료과실이 명백히 아님에도 환자를 종용해 소송을 부추기는 법조인이 종종 있다”며 “객관적으로 의료과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면 소송기간도 줄고 의료분쟁 건수 자체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무감정인단을 확충해 의료사고를 객관적으로 감정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의견에 대해 홍영균 변호사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감정의 역할만 확대되면 정작 조정의 순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 변호사는 “감정역할을 확대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감정역할만 확대되면 의료사고 당사자들이 감정결과만 받고 본인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소송에 가기 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줄인다는 것은 위험하니 실질적 조정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태언 사무총장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다. 그는 환자가 의료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하며 환자의 알 권리와 사후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강 사무총장은 “의료과실 입증책임을 의사에게로 전환하고 의료행위 전반의 과정을 환자가 알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한다”며 “우리나라 3대 사고가 교통사고, 산재사고, 의료사고인데 산재사고와 교통사고가 보험처리가 되는 만큼 의료사고도 보험 등과 같은 제도를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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