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인 딸과 50대인 아버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바로 ‘아빠를 부탁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녀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고, 아버지 또한 자녀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20대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가 성인 간의 관계가 돼버린 데에서 나타나는 어색함 또한 드러낸다.
아버지에게 서운함과 감사, 그리고 그 어려움을 느끼는 건 본교생도 예외가 아니다. 종종 고려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엔 이를 표현하지 못해 죄송하단 글이 올라오고, 여기에 많은 학생이 공감을 표한다.

가정의 달인 5월의 마지막 주를 맞아 본교 학생들에게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받았다. 또한, 자녀가 직접 아버지에게 △대학생이 된 자녀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 △자녀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무엇인지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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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 아버지는 항상 양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출근하실 때, 퇴근하실 때, 학부모 상담을 오실 때도 언제나 정장 차림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양복을 입으셨을 때는 같이 있을 수 없었기에 전 평상복을 입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좋아했습니다. 주말아침에 평상복을 입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그 날은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습니다. 평상복을 입으신 아버지와 구운 오징어를 나눠 먹으며 토요일 오전에 방영되는 ‘영화가 좋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지금도 저희 부자는 토요일 아침이면 이 소소한 가족행사를 챙깁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제가 기억하던 가족 행사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어릴 적 토요일 아침에 정장을 입으신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하던 제가 언젠가부터 친구와 약속, 학교행사 등을 핑계로 토요일 아침에 집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아버지께서는 점점 집에 계시는 시간이 느셨고 토요일 아침에 홀로 텔레비전을 보시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토요일 아침에 오징어를 구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부담으로 인식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을 때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텔레비전 시청은커녕 아버지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와 둘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어색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할 기회도 없이 눈 깜짝 할 사이에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 지나갔고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병휴가를 나와 뵌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 때, 아버지와 식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주제 넘는 생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삶과 겪어 오신 일들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제가 너무 어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군 생활을 하던 중 누나가 결혼을 했고, 제 전역과 함께 아버지는 은퇴를 결정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던 그 판단을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아버지는 저보다 뛰어나신 선택을 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재학생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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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아쉬움으로 가득한 아버지와 저, 올해 처음으로 대학생이 된 만큼 더 따뜻한 사이가 되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드립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을 가지고 계시는 아버지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딱딱한 말투와 다소 거친 사투리.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필요로 했던 저는, 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의를 갖추기를 바라시고, 밤에 늦게 들어오는 것에 대해 엄격하신 아버지가 멀게 느껴진 순간도 있었지요.
이제는 성인이자 대학교의 새내기가 되어 수험생 시절 동안의 바쁘고 지치는 삶에서 벗어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매일 밤 안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시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며, 저희 사이를 돌아봅니다.
늦은 밤 귀가를 해도 안부 인사 외에는 더 나눌 말이 없는 저희의 사이는 아버지가 홀로 만드신 것이 아님을 이제야 가슴 깊이 깨닫습니다. 한 가족이라도 서로의 가치관과 생각이 다른 만큼 갈등이 발생하면 대화를 통해 타협해야 했고, 가족이기에 큰 딸인 저는 누구보다 더욱 아버지를 공경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갓 대학생이 되어 들뜬 마음에 아버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들에 소홀했던 모습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기만 합니다.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죄송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서도 저희의 관계를 아쉬워하기만 한 스스로를 돌아보며, 집에 계실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는 열띤 축제 분위기가 한창인 지금 이 시간도 아버지는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고 계시겠지요. 힘들고, 지치고, 어쩌면 지루하기도 할 텐데, 싫은 티 한번 내지 않으시고 책임을 다하시는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껏 이런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지 못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버지께 지금껏 보여드리지 못한 저의 마음을 이렇게 편지로 전하면서, 이후로는 아버지를 더욱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제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재학생 B씨

 

우리는 얼마나 아버지에게 먼저 말을 걸까. 다음은 본교 학생이 아버지에게 직접 안부를 묻고 들은 대답이다.
대화내용은 ❶대학생이 된 자녀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❷현재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 ❸자녀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❶ 자녀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전보다 걱정을 많이 하지 않게 되었죠. 다른 부모들은 성인되어 더 걱정하던데, 저는 그 반대에요. 딸이 학생일 때에는 ‘혹시나 올바르지 못한 길로 접어들면 어쩌나, 학업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성인이라면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가질 수 있고, 저는 딸의 판단을 믿어요. 딸이 올바른 길로 자신을 이끌 수 있을 걸 아는 거죠. ‘공부하라’는 조언을 가끔 하긴 해도 너무 학업에만 치우치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때론 투정을 부리기도 하죠. 하지만 본인의 행동에 책임감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생활하는 딸의 모습이 보기 좋아요.
❷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재테크로 노후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낼 것인가’에요. 나름 생각해 놓은 노후 생활이 있어요. 여유 있게 여행 다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방면을 살려 식물원에서 가이드를 하고 싶어요. ‘늙어서 지금보다 더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인거죠. 이런 고민 때문에 항상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려고 해요.
❸ ‘딸은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까’ 궁금해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은데, 더 자세히 알고 싶죠. 미래를 어떻게 그려가고 있고,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해요.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앞으로 딸과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요. 맥주를 좋아하는 부녀인 만큼 유럽여행 같이 하면서 맥주기행을 펼쳐보고 싶죠. 예전에 흘러가듯이 딸이 말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❶ 그저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는데, 대학생이 되고나니 성인의 면모가 가끔 보이곤 해요. 특히 자신을 가꾸고 꾸밀 때, 혹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이제 성인이 되어가고 있구나’하고 느끼죠. 그래서 어린애처럼 딸의 행동에 일일이 신경 쓰기보단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지켜보는 편인 것 같아요.
❷ 앞으로 자녀의 진로가 가장 걱정되죠. 스스로 미래를 잘 설계하고 개척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지금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고고미술사학과의 특성을 살렸으면 해요. 큐레이터나 도슨트 등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꿈을 향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❸ 이성 친구를 언제 사귈 지, 누구와 사귈 지 궁금해요. 정말 서로를 존경하는, 서로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이성친구로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성 친구를 제가 직접 만나서 얘기도 나눠보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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