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소수자는 틀린게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다. *위 사진은 연출된 사진입니다.사진│차정규 기자 regular@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에서 발간한 ‘한국 LGBTI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성 소수자 인권지수가 12.15%로 유럽국가 순위로 따지면 49개국 중 45위 수준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성 소수자로서의 삶은 어떨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에서 4176명의 성 소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보고서와 성 소수자 김동현(남‧20) 씨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사는 김동현 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조용히 숨기로 했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잘못된 거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친구가 말했다. “동성애자는 걸어 다니는 에이즈야. 너무 징그럽지 않니?” “응 그러니까 말이야.” 오늘도 나는 나를 부정했다. 동성애를 인정하기엔,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무서웠다. 진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게이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그 곳은 별도의 확인 없이도 가능했다. 개인 사진과 자기소개가 담긴 글들이 여럿 있었다. 나도 용기 내어 그 중 한사람에게 연락을 해봤다. 여기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선 더 이상 ‘이상하고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똑같았다. 여자가 되고 싶었다.
전문가들은 성 소수자의 성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발전시키기엔 학업의 부담과 정보와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부분의 성 소수자들은 비슷한 친구가 없고, 친구를 구할 방법도 찾지 못한 채 고립감을 느낀다.
거짓된 삶을 살다.
“동현아 너는 누가 제일 좋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남자아이들이 모인 곳에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나는 현주.” 오늘도 거짓말을 했다. “동현아 넌 왜 여자친구 안 사귀어?” 친구의 물음에 어물쩍거리다 보니 ‘여친소개’라는 것을 받게 됐다. 그리고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것이 들킬까 봐 그 여자아이와 사귀기로 했다. 그 애에겐 정말 미안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너무도 답답했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중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
실제 많은 성 소수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에게 얼마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가’라는 질문에 53%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긴다고 대답했다.
“엄마가 미안해.”
어느 날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학교에 계속 가지 않았던 내가 걱정돼 내 휴대전화기를 봤다고 했다. 그때는 한 커뮤니티에서 만난 한 형과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리고는 동성애가 합법화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살면 어떻겠냐고 했다. 한국에서의 동성애자 삶이 힘든 걸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서는 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날의 영향으로 나는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미국도 가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지지해준다는 것이 내 생각을 바꿔 놨다. 제일 친한 여자 친구에게도 커밍아웃했다. 그 아이 역시 나를 지지해줬다. 이 두 명이 거절했다면  아마 나는 더 깊숙이 숨어들었을 것이다.
성 소수자들은 오히려 대부분 가족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지 못한다. 보고서의 설문조사 응답자 중 어머니에게는 21.8%만이. 아버지에게는 10.8%만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혔다. 그 이후 자신의 성 정체성이 밝혀졌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 상대와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소원해진다고 했다.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일수록 ‘받아들여짐’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족이 그렇기 때문에 대개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시기가 늦다.
‘오빠 안녕 나는 다혜야.’
나의 첫 연애는 고1 때였다. 하지만 동성애자인 우리의 사랑은 보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겉으로 그 형은 여자와 사귀고 있는 거였으니까. 그의 친구들에게 나의 이름은 다혜였다. 어느 날 형 친구들이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제일 친한 여자인 친구를 바꿔줬다. 난 사랑도 당당하게 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연애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네에서는 데이트할 수 없었고 많은 사람 앞에서 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한다고 해도 이성애자의 시선까지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순 없었다. 내가 바라는 꿈은 하나다. 이성애자처럼 평범히 연애하는 것이다.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학교에서 늘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 제스쳐를 취하면 동성애자라는 것을 들킬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숨기지 않기로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짓말이 내 인생이 돼가고 있었다. 그러다 매일 밤 지웠다가 썼다 반복했던 글을 SNS에 올렸다. 그렇게 커밍아웃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용기 있다며 지지해줬다. 하지만 반면 어떤 사람들은 가족까지 욕하며 나를 비하했다.
하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오히려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밝혀서 다른 사람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스러웠다. 내 주변사람들에게 나로 하여금 동성애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전문가들은 커밍아웃의 동기는 내면과 행동의 불일치로 인한 불편함을 떨치고 싶은 마음과 상대와 더욱 인간적으로 친밀해지고 싶어 하는 관계의 영역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또한 커밍아웃을 한 성 소수자는 ‘안전망’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커밍아웃이 조심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면 이 관계들이 안전망이 돼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고등학교가 끝날 무렵 한 회사에 취직했다. 사장님과 과장님은 일을 잘하고 싹싹한 나를 좋아했다. 따로 챙겨주시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모든 게 바뀌었다. 그날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분위기는 싸했다. 회사 한 동료가 내 휴대전화기를 보고 동성애자인 것을 퍼뜨린 거였다. 그 후 나는 철저히 소외됐다. 식사시간에도 나 혼자 회사에 남겨져 있었다.
그다음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일터에 있던 고등학교 선배가 나를 알아보곤 소문을 냈다. 결국, 나는 “저런 얘를 어떻게 직원으로 둬?”라는 말을 듣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느 곳에서든 늘 열심히 일했고 인정받았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실제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 내에 차별은 자주 발생한다.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 차별이나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까’의 질문에 응답자의 41.5%가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특히나 어린 연령에서 차별이나 폭력의 경험이 더 두드러지고(△18세 이하 45.1% △19세~29세 42.8% △30대 37.1% △40대 이상 35.4%),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경우 차별이나 폭력의 경험이 더 많았다.(△아르바이트직 48.9% △계약직 47.0% △정규직 33.5%)
친구가 자살시도를 했다.
“어떡해. 부모님이 내가 동성애자인 걸 알았어.” 한 친구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친구가 다른 사람에 의해 아웃팅을 당했단다. 커밍아웃은 충분한 준비 이후 나의 의지로 이뤄지지만 아웃팅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이뤄진다. 사실상 우리 집은 특별한 사례다. 대부분은 부모가 자식의 성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못한다. 이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쓰러졌고, 아버지는 친구를 정신병원에 보내겠다고 하셨다. 결국은 그 친구가 이성애자인 척을 하면서 간신히 넘어갔지만, 그 친구는 계속 불행해 하고 있다. 자신의 본 모습을 제일 사랑하는 가족이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성 소수자들은 극단적인 생각과 시도를 자주한다. 성 소수자 548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이호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석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여성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 가운데 66.8%가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인들의 6.8% 응답률과 대비되는 수치이다. 또한 자살 충동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경우가 25.5%에 이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2차례 넘게 자살을 시도했다. 
“틀린 게 아닌 다른 거일 뿐.”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길은 힘들다.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을 때도 밝혔을 때도 모두. 몇몇 사람들은 내가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한다. 하지만 나는 다를 뿐 틀린 게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렇게 남을 차별하는 당신도 언젠가는 남에게 차별당할 수 있다고. 또한, 내가 차별한 성소수자가 언젠가는 내 자식이, 친구가,  주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성소수자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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