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3 16:09 (수)
등재 전 "Forced to work", 등재 후 "Forced to labour"
등재 전 "Forced to work", 등재 후 "Forced to labour"
  • 이경주, 이영나 기자
  • 승인 2015.07.20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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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5일 오후 3시 독일 본(Bonn)에서 열린 39회 유네스코 회의에서 일본 메이지 유신 시대의 산업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번에 등재된 일본의 산업유산 23곳 중 △하시마 탄광(군함도) △미쓰비시 조선소의 거대크레인 △미쓰비시 조선소 제3 부두 △미쓰비시 조선소 옛 목형장을 비롯한 7곳은 조선인 강제노역이 행해진 곳으로 추정된다.

‘아시아의 산업혁명’ 메이지유신(1853~1877, 일본)
오전 9시에 기차를 타고 요코하마로 나왔다. 황후호에 오르니 서기 유찬, 공사관 번역관 야마자키(일본 사람)가 배까지 들어와 작별을 고하고 갔다. 정오에 배가 출발하여 동쪽을 향해갔다. 그저께 요코하마에 와서 잘 때 산과 개울의 빼어나고 화려함, 부두의 견고함, 누각과 집이 높고 큰 것, 잘 정돈된 가로, 전등과 가스등의 연결이 사람으로 하여금 눈의 경계가 갑자기 밝아지게 하였다. 그런데 도쿄에 들어오니 모든 설치와 배치가 완벽하고 정밀한 중에 정밀하여 날로 새롭고 또 날로 새롭다. 이는 모두 이 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히 서양의 방법을 공부하여 개명한 길로 나갔기 때문인데,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세계일주를 한 민영환의 기행문 <해천추범(海天秋帆) >을 통해 메이지 유신 이후 발전된 일본 사회를 묘사한 구절이다. 메이지 유신(明治 維新)은 1853년에서 1877년 전후로 일어난 개혁이다. 당시 메이지 정부는 서양의 근대산업국가를 모델로 일본을 근대적 통일국가로 탈바꿈 시켰다.
최근 일본은 메이지 유신의 산업 발전을 보여주는 23곳의 근대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등재된 일본의 23곳은 철강, 조선, 석탄 광산을 비롯한 주요 산업 현장으로, 우수한 산업 혁명의 발생지이자 동아시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일본의 자발적 성장을 보여준다.
등재된 23곳의 문화유산 중 쇼카손주쿠는 유일한 교육기관이다.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위치한 쇼카손주쿠는 메이지 유신 주역들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정한론(征韓論)과 제국주의에 영향을 끼친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의 사설 학당이다. 쇼카손주쿠는 한국 통감부의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를 비롯해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체결한 가쓰라 다로(桂 太郞),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 正毅), 3.1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2대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 好道) 등 대표적인 정한론자들을 배출했다. 아세아문제연구소 현대일본센터장 이형식 교수는 “특히 이들은 한국병합을 추진한 대조선강경파인 야마가타 파벌에 속해 있다”고 했다.

 

화려한 산업화의 이면-강제징용(1938~1945, 일본)
하시마는 높은 콘크리트 절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바다뿐입니다. 우리 조선인은 2층과 4층 건물에 넣어졌습니다. 1인 1첩에도 못 미치는 좁은 방에 7~8명이 함께 생활 했습니다. 외관은 모르타르(시멘트와 물로 반죽한 것)나 철근으로 되어 있었으나 안쪽은 너덜너덜했습니다. 우리는 쌀겨 봉투 자루와 같은 옷을 입고 다음날부터 노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도를 찬 사람이랑 다른 사람이 이것저것 명령했습니다.
바다 아래가 탄갱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갱도를 내려가 굴착장에 도착하면, 땅에 엎드려서 굴을 팔 수 밖에 없는 좁은 곳이고, 덥고 고통스러운데다 한편으로는 낙반의 위험도 있고, 이대로는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식사는 콩 앙금 80%, 현미 20%의 밥에 정어리를 통째로 구워 으깬 것이 반찬이었습니다. 나는 매일 설사를 해서 급속도로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런데도 일을 쉬면 감독이 와서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 구타를 했습니다.

군함도에서 강제노동을 했던 서정우 씨의 경험을 채록한 내용이다. 이는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에서 발간한 소개책자에 실렸다. 이번에 등재된 23곳의 산업 문화유산 중 논란이 된 7곳은 조선인 강제징용이 일어났던 현장이다. 그 중 하나인 군함도에 위치한 하시마 탄광에서 강제 징용 피해 심사가 완료된 사건은 112건이다.
이외에도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일부 △다카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항구 △야하타 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이 자행됐다. 이 중 가장 많은 피해자 수가 드러난 곳은 야하타 제철소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배상금으로 만들어진 야하타 제철소에서는 709건의 강제노동 피해자 심의가 완료됐다.
201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메이지 시대의 비단 공장인 도미오카 제사공장 또한 강제징용의 장소다. 이곳은 세계 비단산업 발전에 공헌하고 비단 소비의 대중화를 이끄는 등 일본 근대화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형식 교수는 “도미오카 제사공장은 메이지 산업 혁명의 산실이자 노동 착취의 산실이다”라며 “저임금 노동자들을 장시간 고용해서 노동 착취가 일어났던 곳”이라고 말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12곳 중 △사도광산 유산 △무네타카 오키노시마와 관련 유산군 △아마미 류쿠 역시 강제징용 문제의 소지가 있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2014~2015)
유태인 100만 명이 학살당한 독일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1972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등재 이유로 나치가 행한 인종 학살이라는 극악한 범죄를 밝히는 증거이자 나치에 대항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준 장소라는 점을 들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나 2015년 7월 5일, 독일 본(Bonn)에서 열린 39회 유네스코 회의에서 군함도를 포함한 일본 근대산업 시설 23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산업혁명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것을 권고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연구위원은 “일본은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라며 “등재된 근대 산업시설은 메이지 유신 당시 근대화를 보여주는 장소여서 때문에 산업유산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유네스코 등재가 결정된 일본의 근대산업 시설 중 7곳은, 부정적인 역사를 외면한 채 산업화의 산물이라는 긍정적인 면만 조명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양기호(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이 문제가 될 것을 막기 위해 1853년부터 1910년 까지만의 시설을 등재 신청했다”라며 “이에 한국 정부는 1940년대에 조선인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는 것을 유네스코의 자문 기관인 5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 알렸다”라고 말했다.
올해 일본 문부과학성은 태평양 전쟁 말기 전투기를 타고 미군 항공모함으로 돌진했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관련 유산을 일본 유네스코 위원회에 심사 신청을 했다. 이장희(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예로 들며 “가미카제 특공대 관련 유산을 등재하려면 반성의 의미가 돼야 한다”라며 “비참한 전쟁이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 반성의 의미가 아니라면 가미카제 특공대 관련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많은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또 다른 장소는 쇼카손주쿠(松下村塾)다. 근대 산업시설이 아닌 쇼카손주쿠가 산업시설로서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된 것에 대해 아베 총리의 개인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이형식 교수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이 야마구치(山口県)이기 때문에, 쇼카손주쿠가 문화유산에 포함된 것은 지역 선배를 찬양하는 일의 일환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이 된 23곳의 일본 산업 문화유산은 아베 총리의 수정역사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수정역사주의란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는 역사관이다. 새로 발견한 사료 등을 통해 기존의 역사를 재분석하고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수정주의자는 주류 사학계의 해석 뿐 아니라, 보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며 수정하려고 한다. 김민철 연구위원은 “아베는 역사수정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려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국가 의식이 부족한 젊은이들을 교육할 때 위안부, 난징 대학살 등이 자랑스러운 역사 교육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르치지 말자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려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군함도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유네스코에서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문화재 등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은 실제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179개국 중 가장 높은 35만 3730달러의 자발적 기여금(Contributions assessed for)을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기부했다. 6만 5104달러를 기부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차이나는 금액이다. 김민철 연구원은 “유네스코에 많은 금액을 기부하고 있는 일본의 영향력이 이번 문화유산 등재에 어느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일본이 강제노동을 인정한다면 일본 정부와 기업은 패소해 배상을 해야 한다. 양기호 교수는 “만약 강제징용 소송이 국내에서 승소판정이 나면, 국내 기업에 투자한 일본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야하타제철) 등은 국내에 투자한 자금을 법원에서 피해보상금 명목으로 차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군함도를 포함한 23곳의 근대 산업시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5일,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에 강제징용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해당 시설에 안내 센터 설치 등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일본 대표단은 39회 세계문화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징용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는 5일,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의 후속조치에 대한 점검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은 2017년 12일 1일까지 권고이행 경과보고서를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18년 제 42차 회기에서 일본 정부의 이행 상황을 직접 점검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국민과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을 강조했다. 김민철 연구위원은 “인포메이션 센터를 보이지도 않는 곳에 형식적으로만 지어놓고 끝날 가능성이 커서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식 교수는 강제징용의 장소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에 미흡하게 대처한 우리나라 전문가들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실제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한일 관련 역사 분석이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많이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다”라며 “국제 사회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스스로 관련 역사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주재민 전문 기자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2010) 피해자의 아픔을 마음에 새기고, 전후 보상의 실현과 비전(非戰)의 다짐을 (평화자료관발간 소개책자(한글판)) p.17. 평화자료관에는 일본어로 기술되어 있는데, 한글판 자료보다 더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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