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쿡방(Cook+방송)’ 열풍이 불며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현대인이 지닌 가장 큰 고민은 점심 메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맛과 가격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먹거리를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각 단계의 주체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인 ‘관계망’ 역시 주목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먹거리 관계망’은 과연 무엇이고 본교 구성원들은 어떤 먹거리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을까. 나아가, 우리가 형성할 수 있는 ‘착한’ 먹거리 관계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당신이 오늘 선택한 먹거리 속의 다양한 의미를 파헤쳐봤다.

식탁 위의 사회, ‘먹거리 관계망’
먹거리 관계망은 생산, 유통, 소비 단계의 여러 주체가 먹거리를 통해 형성하는 일종의 사회적 관계망을 뜻한다. 지역재단 허남혁 먹거리정책·교육센터장은 “하나의 먹거리가 최종적으로 소비되기까지 종자를 개발한 연구자, 농민, 판매업자 등 수많은 사람이 개입한다”며 “먹거리 선택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어떤 주체들과 관계망을 형성할지 결정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행위인 셈”이라고 말했다.
먹거리 관계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것은 무역의 발달로 다양한 지역의 먹거리가 식탁에 올라오는 ‘식탁의 세계화’가 본격화된 20세기 후반부터다. 더욱이 대량생산을 위한 노동착취와 일부 다국적 기업의 식량유통 장악 등 먹거리를 둘러싼 문제가 점차 밝혀지자 올바른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증폭됐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먹거리를 선택할 때 관습적 소비에서 벗어나 먹거리 관계망을 주요하게 인식하는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에 이르러 먹거리 관계망은 무역체계, 정치구조, 환경문제 등 세계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는 요소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윤리적 소비의 중요성은 확대되고 있다. 김선업(한국사회연구소) 교수는 “소비자가 먹거리를 단순히 맛을 느끼고 영양을 섭취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먹거리가 지니는 사회적 연관성에 집중하는 윤리적 소비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먹거리에 내재된 생산과 유통과정에 관심을 가지면 소비자 스스로도 먹거리를 신뢰할 수 있고 생산자 역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질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게 된다. 허남혁 센터장은 올바른 먹거리 관계망의 대표적인 사례로 로컬푸드 운동을 꼽았다. 허남혁 센터장은 “소비자와 지역 농민의 사회적 관계를 가깝게 하는 이런 활동을 통해 소비자는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고 농민 역시 농작물의 가치를 이해해주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보도 관심도 부족한 본교
본교 구성원은 먹거리 관계망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대다수는 먹거리 관계망을 주요하게 고려하고 있지는 않았다. 먹거리 관계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관련 지식이 있더라도 실천할 만한 동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자원경제학과의 한 학생은 “먹거리 관계망을 알고 있지만, 개인의 먹거리 선택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체감하기 어려워 메뉴를 선택할 때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교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먹거리 관계망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학내의 음식점들이 가격경쟁력을 위해 저렴한 식자재를 사용하다 보니 바람직한 먹거리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본교의 구내식당 6곳은 모두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중 두 종류 이상의 육류를 국내산보다 값싼 수입산을 사용하고 있었다.
식당 관계자들은 모든 구내식당이 개인사업자나 기업에 위탁돼 운영되는 본교의 특성상 이러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이 창출돼야 하는 위탁운영 식당은 식자재의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대학교 구내식당의 한 관계자는 “구내식당에서 국산 식자재를 사용하면 보통 1.5배의 예산이 소요되고, 유기농 식자재를 사용하려면 2배가 넘는 예산이 소요된다”며 “모든 식당을 위탁으로 운영하는 경우 학교의 지원이 없는 한 구내식당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사용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식당 2층에서 근무하는 방윤정 영양사는 “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친환경 농산물 등의 식자재를 식당에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먹거리에 대한 정보가 제한돼 있다는 문제도 있다. 현행 <농산물품질관리법>의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쌀(밥류), △배추김치(고춧가루 포함) 등 일부 주요 식자재의 원산지 명기만을 규정하고 있어 다른 식자재의 경우 원산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평소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김우빈(문과대 언어15) 씨는 “내가 무엇을 먹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선 원산지뿐만이 아니라 먹거리의 유통과정 등 보다 세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소비자인 학생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보니 음식점에서도 그런 정보를 제공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먹거리에 대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때 식품안전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양승룡 교수는 “현대에 이르러 자국과 다른 농업생산방식과 식품안정정책을 거친 국가에서 식품 수입이 늘어나면서 식품안전 위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며 “소비자가 먹거리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져야 하는 필요성이 더욱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학교 지원과 소비자 실천 병행돼야
전문가들은 학내에서 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생활협동조합(생협)과 같은 공공기구를 통해 교내 먹거리 관계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제안했다. 수익 창출이 아닌 복지의 측면에서 학내 구성원들에게 전달되는 먹거리를 관리하자는 것이다. 상지대 생협의 한 관계자는 “식당을 수익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학내 구성원에게 보다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복지의 측면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생협의 한 관계자는 “생협이 있는 대학교의 경우 생협이 운영하는 공정무역 카페 등에서 발생한 수익을 구내식당의 질 좋은 식자재 구입에 사용해 긍정적인 먹거리 관계망이 순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먹거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었다. 김미자(사범대 가정교육과) 강사는 “최근에는 입시에 치우쳐 먹거리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이 드문데다가 상업화된 미디어가 잘못된 먹거리 정보를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며 “대학에서 올바른 먹거리 정보를 가르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생 스스로도 먹거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바른 먹거리 관계망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남혁 센터장은 “고려대가 위치한 성북구에 농민이 없다고 해서 먹거리 생산자와의 사회적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며 “인근 지역의 농민을 초청해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을 학내에서 연다거나 농촌으로 농민학생연대활동을 가는 등의 노력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47대(2015년) 안암총학생회(회장=서재우, 안암총학)는 흠집이 나거나 모양이 이상하다는 이유 등으로 버려지는 국산 과일을 학생에게 저렴하게 판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안암총학 민동규 생활복지국장은 “평소 안전한 먹거리를 접할 기회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국산 과일을 판매해 농민과 학생 모두에게 도움을 주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선업 교수는 학생들이 보다 넓고 주체적인 시야로 먹거리 관계망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먹거리 문화가 단기간에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인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며 “또한 미디어 등 타인의 먹거리 인식에 동조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소비의 주체라는 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 조현제 기자 aleph@
일러스트 | 김예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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