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지난 2월 설 명절 동안 대형마트에서 판매된 포도는 흔한 칠레산이 아니라 100% 페루산이었다. 2년 전부터 페루산 포도가 미국산(9~12월)과 칠레산(3~6월)의 중간에 비집고 들어오면서 빠르게 수입량이 늘어났다. 페루의 포도산지는 2000년 전 사람들이 사막 위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나스카라인 부근의 사막지대 이카(Ica) 지역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건조하다고 알려진 페루와 칠레 북부의 해안사막지대. 황량한 모랫빛 산들 사이에 거대한 포도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막의 관개농업은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속도보다 더 빨리 물을 고갈시킨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안데스의 눈 녹은 물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기여했다. 이카 지역의 오아시스들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역주민들이 생계용으로 농사짓고 마시는 물은 말라붙기 시작했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페루의 물을 고갈시키는데 기여하는 셈이다.

장면 2. 작년에는 990㎡당 무값을 20만원밖에 못 받았다. 종자값도 못 건진 셈이다. 무는 990㎡당 종자값과 인건비, 기계, 농약, 비료 등 자재비가 들어가고 나면 70만원으론 생산비 단가를 겨우 맞출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무값은 50만원을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당진의 농민 한씨는 “50만원 받아봤자 무 하나당 100원도 안 해유. 소비자들은 몇 천원에 사먹는디…”하며 혀를 내둘렀다. 설상가상 인건비, 자재비는 더 오르고 있다. 15년 전 인건비가 2만5000원 정도였는데 현재 인건비는 5~6만원대라고 한다. 10년 전에 비해 200% 증가한 셈이다. (한국농정신문 2014.10.31일자)

장면 3. 캄보디아 노동자 ㅌ(27·남)은 2013년 5월 한국에 왔다. 전남 장성에서 돼지 축사일을 하기로 계약했다. 고용주는 2000여 두의 돼지를 먹였다. 그의 노동시간은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계약서에서는 그렇다. 월 250시간이다. 약속된 월급은 110만원이다. 시간당 4400원꼴이다. 2013년(4860원)과 2014년(5210원) 최저시급을 훨씬 밑돈다. 계약과 실제는 달랐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 전후까지 일했다. 매일 13~14시간 노동했고 2시간 쉬었다. 한 달에 320~370시간씩 혹사당했다. 110만원에 대입하면 시급 2973원이다. 월 100시간에서 140시간치의 임금을 떼였다. 서류상 그는 사장의 양돈 노동자였다. 현실에선 사장 개인의 밭을 매는 인부도 됐다. 사장 식구들이 사적으로 부리는 ‘머슴’이기도 했다. 축사에서 짬이 날 때마다 고추밭으로, 콩밭으로, 고구마밭으로 불려다녔다. 대나무밭에서 죽순도 캤다. 그는 사장 가족이 돌려쓰는 ‘가노’(家奴)였다. (한겨레21 2014. 8.20일자)

우리가 먹는 먹거리는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 산업적 농업방식에 기반한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가 보편화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오든 가까운 우리 동네에서 오든 우리의 먹거리와 관련되어 있는 자연과 사람은 매우 많고 다양하다. 우리는 이들과 관계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먹이사슬처럼 얽혀있는 우리의 먹거리 관계망은 페루산이 아니라 심지어 국내산 농산물이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매우 ‘글로벌’하게 뻗어있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망이 매우 심하게 왜곡되어 있고 그 속에서 노동과 자연이 소외된다는 것이다. 투입되는 먹거리 노동은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연은 지속가능하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착취 속에서 신음한다. 그래서 우리가 지불하는 커피값이건 과일값이건 채소값이건 그 중 농민과 노동자에게 제대로 돌아오는 몫은 점점 줄어들고, 후손에 물려줘야 할 한국의 농촌사회와 지구는 점점 파괴되어 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악덕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일까. 우리가 먹고 있는 대부분이 이 지경이라면, 도덕적인 나는 그냥 굶어야 하는 걸까. 그래도 굶어죽을 수는 없으니까, 먹긴 먹되 대안이 충분치 않다면 그래도 일단은 알고는 먹을 필요가 있다. 그러한 앎이 사회적으로 조금씩 커진다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대안을 만들어나갈 여지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선진국에서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대안적인 먹거리를 추구하는 사회운동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생산자에게 정당한 몫을 보장하고 자연을 배려하며 소비자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먹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좀 더 가까워져야 하고, 소비자는 ‘농(農)’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버드, 예일 등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대학의 지역사회기여와 학생운동 차원에서 지역의 농민들과 함께 농민장터를 캠퍼스에서 정기적으로 열고, 구내식당에서는 지속가능한 식재료(로컬푸드, 유기농, 공정무역산물 등)를 우선적으로 구매하여 식사를 제공한다.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거리 관련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아직도 이러한 앎 자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 이런 움직임 역시 거의 없는 것이 우리의 현 주소이다. 그래도 시작은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를 만들진대, 나의 먹거리가 좀 더 건강해지고 지속가능해야 우리 사회도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허남혁 / (재)지역재단 먹거리정책·교육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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