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철버거 대표 이영철(남·48) 씨에게 영철버거는 삶 그 자체였다. 그랬던 그가 2015년 7월, 본점 폐점을 결정했다. 영철버거 창업 15주년을 2달 남긴 채였다. 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영철버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 당분간 그 근처에 가지 못할 것 같아.” 7월 31일 KU 시네마트랩에서 만난 이영철 씨는 수척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고대에서 장사하기 전까진 사랑이란 것을 잘 모르고 살았지. 늘 어려운 여건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그런 건 바라지도 못했어. 그런 나한테 고대는 사랑이라 해야 하나. 보이지 않는 묘한 것을 느끼게 해줬지.”

그가 버거를 팔기 시작한 것은 당장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내일의 생활이 힘들 정도로 삶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단속이 심하던 시절, 노점상을 시작한 그는 유독 고려대 학생들에게 큰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바닥에서 시작해 영철버거가 성황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항상 고려대와 함께했다고 말했다. 그랬기에 고려대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노점에서 영철버거를 팔던 2002년부터 2007년 까지는 ‘1,000원 버거’를 고수했다. 한 학생은 그에게 “아저씨,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하고 묻기도 했다. “그땐, ‘너희도 먹고 살아야지. 아저씨 망할 때까진 가격 안올린다. 배고프면 와. 아저씨 뼈라도 갈아서 줄 테니까’ 했지. 학생 한 명 한 명 다 내 자식 같았어. 학생들과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2년 가까이 적자를 내며 버텼지.”

흥행할 때에도, 그렇지 못할 때에도 그에게 고려대는 늘 감사한 존재였다. 이영철 씨는 한창 인기를 얻은 2004년부터 4년간, 형편이 넉넉지 않은 고려대 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내놓았다. 축제 기간에는 ‘영철버거 빨리먹기 대회’ 등의 행사를 열기도 했고, 고연전 때는 영철버거와 음료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물가와 인건비는 올랐고 적자는 계속됐다. 

이영철 씨는 고민 끝에 2007년 말 가격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에게 질 좋은 재료로 건강하게 만든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생각에서다. 가격을 좀 올리더라도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를 고수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내용물의 가치보다는 기존 저렴한 가격에 대한 이미지만을 찾았다. 직영점들의 매출은 점점 감소했고, 적자는 여전했다.

이영철 씨는 최근 영철버거 폐점 기사가 보도된 후 퍼지기 시작한 각종 유언비어는 모두 잘못됐다고 일축했다. ‘마케팅동아리가 고급화 전략을 제안해 실패했다’, ‘영철버거 초심이 변했다’ 등의 내용이다. “마케팅동아리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내 결정이었고, 그 친구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이번 폐점에서 가장 슬펐던 건 ‘실패’라는 생각보다 ‘초심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야. 내 마음은 늘 초심이고 나에게 고대생들은 가족과 같이 큰 존재였어. 그런 너희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나 스스로에게 실망도 했지.” 

그런 이유 때문일까. 이영철 씨는 다시 태어나도 영철버거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영철버거는 ‘처음으로 사랑을 받은 곳, 가장 신뢰를 받은 곳’이다. 고대생이 주는 사랑으로 얻은 브랜드이기에 영철버거는 그에게 그 어느 것보다도 가치 있었다. 그는 영철버거를 개인의 것이 아닌 고대 모두의 것으로 여겼다. 최근까지 우울증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이 기대하는 영철버거 아저씨로 다시 돌아올 테니, 시간을 두고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싶어.”

2000년 시작한 노점에서부터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 고려대는 그의 삶 전부를 함께한 동반자나 다름없다. KU시네마트랩에서 인터뷰를 마친 그는 ‘심야식당’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심야식당’ 포스터 속 마스터(셰프)가 그와 겹쳐 보이는 이유는 뭘까. 마음고생으로 힘들었다던 그의 얼굴은 한층 수척해졌지만, 카메라를 향한 그의 웃음엔 여전히 학생들을 향한 포근한 마음이 있었다.

 

사진| 조현제 기자 aleph@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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