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이 한국 문화 콘텐츠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동력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군중(crowd)으로부터 자금조달(funding)을 받는다는 의미로 개인, 단체, 기업이 웹이나 모바일 네트워크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소셜 펀딩’이라고도 한다. 그 중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은 자본이 없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려운 예술가와 사회활동가들이 △작품창작활동 △문화예술상품 △사회공익활동 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창구로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방송, 출판, 영화, 공연, 전시,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이 최근 들어 국내에서 활성화되는 추세다.

국내 크라우드펀딩은 올해 7월 6일, 증권형과 지분투자형에 해당하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1월에 시행될 예정이지만, ‘후원·기부형’에 대한 법안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화·출판 분야에서 특히 활발해

국내 문화예술 분야 중 영화·출판 분야에서 크라우드펀딩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6월 개봉해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한 <연평해전>도 금전적인 이유로 제작이 무산될 뻔했지만 크라우드펀딩으로 총 제작비의 25%인 20억을 후원받아 개봉할 수 있었다. 제작사는 영화 티켓 뿐 아니라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후원자 모두의 이름을 실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크라우드펀딩에 특화된 펀딩 포털 ‘텀블벅(tumblbug)’의 통계에 따르면, 텀블벅은 2011년 창업 이래 매년 3~4배씩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후원·기부’형 크라우드펀딩이 증가했다. 9월 9일 기준, 텀블벅에 등록된 누적 프로젝트는 2079건이고, 그 중 성공한 사례는 1222건, 누적 펀딩금액은 53억 원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은 주로 펀딩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는데, 대표적으로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리기업인 △굿펀딩 △네이버 해피빈 △다음 뉴스펀딩 △오마이컴퍼니 △유캔펀딩 △와디즈 △텀블벅 등이 있다.

이 중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문예위)는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인 자금을 기부금으로 처리하며, 처리된 기부금을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전입한다. 문예위에서 크라우드펀딩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서유미 대리는 모인 기금이 특히 ‘창작물 제작금’으로 많이 이용된다고 했다. 서 대리는 “문예위의 크라우드펀딩은 예술계가 재원의 한계가 있는 공적기금에 의존하지 않고, 대중이나 민간의 재원에서 창작기금을 모을 수 있는 모금플랫폼의 기능을 한다”며 “불특정 다수에게 프로젝트를 알리고 대중들이 직접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영리적 목적의 펀딩 포털에서도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이 활발하다. △문화콘텐츠 △제품개발 △착한소비 등 다양한 종류의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와디즈(WADIZ)에서는 특히 출판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이 활발하다. 와디즈의 황인범 마케팅 파트장은 “크라우드펀딩을 하기에 적합한 것 중 하나가 ‘출판’ 분야”라며 “<누워서 읽는 법학>이라는 책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pdf파일로 무료배포가 됐는데도 직접 책으로 보고 싶다는 수요가 많아 책 제작 펀딩을 진행한 결과, 7000여만 원의 펀딩을 받았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에 특화된 펀딩 포털 ‘텀블벅(tumblbug)’에서도 출판과 영화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가 활발하다. 텀블벅의 이현지 운영팀 팀장은 “전체 펀딩에서 영화와 출판 카테고리의 비중이 크며, 특히 보드게임과 만화 분야는 후원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아 해당 후원자들이 같은 장르의 프로젝트를 반복적으로 후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화적 다양성을 실현하는 통로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떠나, 제작자와 후원자가 재미있고 다양한 시도들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어 일종의 ‘문화적 다양성 실현’의 기능을 한다. 텀블벅의 이현지 운영팀 팀장은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이나, 송호준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화 <망원동 인공위성> 등의 사례는 소재의 특성상 대형투자를 받긴 어렵지만, 대중의 지지로 제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문화적 다양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캣치캣츠’는 고양이와 반려인을 위한 스마트 장난감이다. 이 프로젝트의 후원자는 424명이고, 후원금은 목표액의 511%나 초과 달성했다. 프로젝트 제작자인 유상준 씨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크라우드펀딩의 성공사례를 연구하고 참고해 자신의 프로젝트를 구성했고,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미지와 동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프로젝트의 스토리텔링이 대중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내 결국 펀딩에 성공할 수 있었다.

크라우드펀딩은 문화적 다양성을 실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시장의 사전 수요 조사도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제작자들은 제품을 기획하고 시장에 선보이기 전, 펀딩 포털을 이용해 제품 수요자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 이 경우엔 대개 조달한 후원금을 제품의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고, 후원금에 대한 보상(reward)으로 해당 제품을 후원자에게 일찍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먹튀’와 ‘상업화’, 자금조달 문제의 이면

문화예술분야 내 크라우드펀딩의 성공사례가 대두하며 시장의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지만, 그 이면엔 후원금 ‘먹튀’ 사례와 프로젝트의 상업화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보다 일찍 크라우드펀딩이 도입된 해외의 경우 펀딩포털의 먹튀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에 시작된 미국의 한 펀딩업체인 ‘킥스타터’에서 보드게임을 만든다며 돈을 모은 뒤, 환불조치 없이 일방적으로 개발을 취소한 에릭 슈발리에 사건이다. 에릭 슈발리에는 초기에 설정한 목표액보다 큰 12만 2874달러의 모금 조달에 성공한 뒤, 개발 진척상황을 공유하지 않고 개발중단을 선언한 채 개인적으로 모금액을 사용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서유미 대리는 국내에서 소위 ‘먹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선 자금의 집행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절차가 필수라고 말했다. 서 대리는 “크라우드펀딩 모금이 달성된 이후, 후속 소식들을 후원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중에게서 모은 자금인 만큼 쓰인 용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펀딩포털의 개입으로 인해 소위 ‘잘 팔리게끔’ 프로젝트를 상업화, 획일화한다는 지적에 대해 와디즈의 황인범 마케팅 파트장은 이는 일각에서 크라우드펀딩을 단순히 ‘기부’라는 프레임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파트장은 “국내에선 크라우드펀딩이 기부의 한 형태라는 인식이 많아 프로젝트의 공익성만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며 “펀딩은 일종의 ‘투자’이기도 하니까 펀딩 포털은 제작자가 프로젝트를 잘 설계하게끔 돕고, 참여자에겐 프로젝트에 동참할만한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크라우드펀딩의 동향은

국내 문화예술 분야 크라우드펀딩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만큼, 그 전망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양하다. 하나금융연구소 정중호 실장은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단기적으로 크게 성장할 시장은 아니라고 말했다. 문화예술 분야의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이 수익률이 나는 구조가 아니어서 해당 시장의 매력과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공익적 목적이나 취지에 공감해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도 있지만, 한국은 후원‧기부문화의 정착이 안 돼 있기에 해당 시장의 성장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김치호(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앞으로 문화콘텐츠산업의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소비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대중의 많은 참여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김 교수는 “문화콘텐츠 부분은 사업 자체가 소비자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부분”이라며 “앞으로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크라우드펀딩은 중요한 자금조달 책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김정주 입법조사관은 투자형 크라우드펀딩법안이 2016년에 시행될 예정이지만, 비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법적인 논의가 없는 것은 안타깝다고 했다. 김정주 입법조사관은 “최근 ‘투자형’외에도 기부형이나 보상형의 ‘비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기에, 비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의 확대는 이들 시장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관심과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것”이라며 “향후 법제화를 하게 된다면 새로운 법체계를 만들기 보다는 기존 법체계 하에서 활동하는 업체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풀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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