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청년 전태일은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며 평화시장 앞 공터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못 다 이룬 꿈을 꼭 이뤄달라”는 아들의 유언에 따라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항상 노동자와 함께한 이소선 어머니는 2011년 9월 3일 아들의 곁으로 갔다.

전태일 재단(이사장=이수호)은 전태일 45주기와 이소선 4주기를 맞아 2015년 9월 3일부터 11월 13일까지를 ‘전태일·이소선 추모기간’으로 정했다. ‘세상의 모든 전태일, 하나 되는 불씨’의 구호아래 2015년 청년 노동자는 어떤 환경을 마주하고 있을까. 전태일 평전에 나타난 당시의 상황을 통해 현대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노동 문제를 재조명했다.

▲ 사진 | 서동재 기자 awe@

지표 속에 감춰버린 청년 노동환경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태일은 16살이 되던 1964년 봄 평화시장의 학생복 맞춤집에 시다(미싱보조)로 취직했다. 환풍기도 없는 공간에서 하루 14시간의 노동을 통해 얻는 돈은 일일 하숙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0원이었다. 그러나 태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유일한 꿈은 식모살이를 하는 어머니와 길바닥에 내버려진 동생들을 품을 수 있는, 셋방 한 칸을 얻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어서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일자리의 질’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양산되는 저임금 일자리와 단기 일자리로 인해 청년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마주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청년유니온과 서울시 청년허브는 3월 열린 ‘청년 과도기 노동의 실태와 대안’ 포럼에서 보고서를 통해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해지고 스펙과 경력에 대한 기업의 요구가 높아지며 인턴, 수습, 실습 등의 ‘과도기 노동’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들은 학생 신분도, 노동자 신분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 서있어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과도기 노동 당사자 중 49.4%가 60만 원 이하의 월 급여를 받았으며 73%가 인턴 후 채용 연계가 실시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관계당국의 논의가 실업률 등 고용지표를 넘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질적인 부분도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원은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핵심은 실업률이 아닌 안정성과 지속성 등 질적인 부분”이라며 “생활임금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최저임금제도와 지표를 늘리기 위해 단기 일자리만 양산되는 현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유럽과 같은 장기적인 일자리 불안정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부족한 노동 교육

1967년부터 재단사로 근무하던 태일은 평화시장 직공들의 근무환경에 깊은 분노를 느끼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의 경력이 있는 아버지께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된 태일은 컴컴한 전등 아래서 근로시간과 유급휴일, 건강진단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며 충격에 빠졌다. 관련법의 내용을 알지 못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던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은 명백한 불법이었던 것이다.

정규교육과정의 노동교육을 강화시키자는 주장은 수년 째 이어지고 있지만 교육현장의 현실은 여전히 답보중이다. 민주화 이후 노동권 논의가 진전되며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노동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만 그 대상이 노동자로 한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청소년기부터 체계적인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는 노동교육의 의무화 규정이 없고 노동3권과 근로기준법의 일부 내용만 사회학 관련 과목에서 간략하게 언급된다.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관련 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진로교육’의 이름으로 진행돼 노동인권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루지 못한다.

여러 국가에서는 노동교육을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시민교육의 영역뿐만 아니라 정규교육과정에서 활발하게 관련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교육과정에 ‘시민교육’ 교과를 도입하고 노동인권 교육을 주 3~4시간씩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모의노사협상을 통해 노동자와 자본가의 올바른 모습을 교육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대부분의 국민이 노동자로 살아가는 한국에서 노동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이념편향적인 사상으로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규교육과정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비중있게 실시해야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 노동자와 노동조합

1969년 태일은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설치는 놈을 ‘바보’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바보답게 되든 안 되든 들이박아나 보자”며 ‘바보회’를 창립했다. 1970년 바보회를 투쟁조직으로서의 ‘삼동회’로 발전시킨 태일은 노동당국과 언론사에 근로환경의 실태를 알리고 대규모 집회를 열며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일간지를 통해 평화시장의 모습이 보도되는 등의 성과가 나타나자 평화시장주식회사는 “11월 7일까지 근로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청년 실업률과 비정규직 취업률이 증가하며 노동조합에서 청년이 구성하는 비율은 점차 하락하고 있다.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과 지위 향상을 목표로 노조에 가입하는 청년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은 청년들이 노조활동을 통해 청년 노동문제에 대한 주체성을 확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에서 15~29세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25.1%에서 2015년 19.8%로 줄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청년 노동자의 비율 역시 2007년 57.4%에서 2015년 64.3%로 증가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정재우 연구원은 “노조가 청년과 비정규직 등 노동 약자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그것이 노조의 홛동을 제한하는 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며 “노동계는 청년이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참여하도록 자양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년 스스로 노조활동의 주체로 활동하며 청년 노동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기존 노조가 이뤄내지 못한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2010년 국내 첫 세대별 노조로 출범한 청년유니온은 서울시와 청년일자리 정책협약을 맺거나 커피빈 노동자 주휴수당 지급판결을 이끌어내는 등의 성과를 냈다. 청년유니온 정준영 정책국장은 “기존의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조를 중심으로 이뤄져 청년 노동문제는 의제로도 상정되지 못하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며 “노동현장에서 근로기준법 등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청년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출발한 청년유니온은 현재 최저임금협상에도 노동자위원으로 참석하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태일같은 ‘바보’가 돼야”

11월 7일. 약속한 날짜가 됐지만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삼동회를 불러모은 태일은 “11월 13일에 허울뿐인 근로기준법을 화형에 처하자”고 했다. 11월 13일 오후 1시, 500명의 노동자가 모인 가운데 태일은 가슴 속에 근로기준법을 품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당황한 사람들 속에서도 몇 마디의 구호를 짐승처럼 외치던 그는 끝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병원으로 옮겨진 22세의 청년 전태일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뒀다.

노동시장 구조 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노사정 협상은 결국 정부가 제시한 시한(10일)을 넘겼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노동유연성 확보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노동계는 “이는 결국 부모세대의 임금 삭감과 쉬운 해고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맞섰다. 7월 27일 정부가 2017년까지 청년 일자리 20만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 역시 인턴 등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 양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노동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태일 45주기가 지니는 의의는 무엇일까.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은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청년 스스로가 사회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전태일 정신’을 가져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전태일재단이 전태일을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가 스스로의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어쩔 수 없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문제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주변의 어려움도 함께 고민하며, 청년 스스로가 대상화를 거부하고 주체로서의 의식을 함양하는 ‘전태일 정신’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이어 “전태일이 바보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현대의 청년들도 기꺼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바보가 돼야한다”며 “아무런 고민 없이 개인주의와 경쟁심리에 젖어들기보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청년의 가치를 함께 지켜간다면 전태일의 유산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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