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아침 6시 반, 학교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새벽같이 나와 강의실을 점검하고, 학교 주변 정리를 돕는 그는 우정정보통신관 경비 이웅수 씨다. “김 기자! 오랜만이네그려.” 4개월 전 우정정보통신관에서 딱 한 번 뵀을 뿐인데 기자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건물을 지키며 이곳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학내 구성원들에 누구보다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밥은 먹었냐, 감기는 왜 걸렸대.” 그는 일찍부터 수고한다며 기자에게 책상 한편에 싸놓은 자신의 아침 식사인 빵과 떡을 건넸다. 어느새 가을이라 쌀쌀해진 날씨, 그가 건넨 따뜻한 보리차가 온기를 더해줬다.

오전 8시 40분이 되면 출근하는 직원들과 1교시를 들으러 온 학생들이 하나둘씩 문을 드나든다. 그들이 건네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는 이웅수 씨에게 소소한 선물과도 같다. 그가 문 앞까지 나가 학생이며 교직원, 신문 배달원을 맞이하는 이유다. “인사를 하면 피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파. ‘안녕하세요.’ 이 말 한마디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데 말이야.”

그는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며 누구에게든지 먼저 다가가 살갑게 대한다. 때마침 한 학생이 로비 구석에 있는 자판기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는 고장이 난 자판기를 고쳐주겠다며 곧바로 달려나갔다. 펜이 없는 듯, 한 손엔 종이를 들고 다른 손을 꼼지락거리는 학생을 보고는 “내가 바로 만물상이야”라며 선뜻 볼펜을 건넸다. 학생들을 눈여겨보는 것이 의무이자 습관이 돼버려 말하지 않아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그 곁을 지킨다. “내가 지나친 참견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길은 항상 학생들을 향해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책상 옆에는 작은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학생들이 가끔 그 자리에 앉으면 그는 가족 사정부터 친구들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자신의 에피소드를 꺼낸다. 이야기하다가 지나가는 한 외국인 학생에게 그가 외쳤다. “Happy Birthday!” 학생은 생일 축하한다는 그의 말에 “기억하고 계셨어요? 감사해요.”하며 기뻐하며 놀랬다.

이런 밝고 친숙한 모습 때문일까. 실제로 몇 학생들은 애인과 싸우거나 학업에 지칠 때면 아저씨를 찾곤 한다. 얼마 전에는 연인과의 스킨십 문제로 고민하던 여학생이 이웅수 씨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시간이 더 많다 보니 다들 내 아들, 딸 같지. 학생들이 진짜 아버지에게는 하지 못하는 고민을 나와 공유하는 것도 좋고, 군대 간 학생이 휴가를 나와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것처럼 뿌듯한 일이 없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앉아 있으면 힘이 들기 마련인데 그래도 이 일이 보람 있는 이유는 학생들 때문이지. 말없이 앉아있는 나에게 말동무가 되어주는 사람들에겐 항상 고마울 뿐이야.”

이웅수 씨가 아낀다는 감색 수첩은 서랍에 애지중지 보관해도 매번 들춰대느라 너덜너덜해졌다. 그 안에 빼곡히 적혀있는 전화번호들은 9년째 본교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이 묻어있는 흔적이다. 휴대전화 번호 11자리를 보며 기억을 더듬는 그에겐 학생 한 명 한 명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다. 학생들의 찡그린 표정, 활기찬 웃음, 오가는 대화 소리가 가득한 로비. 이곳에서 그들이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들은 이웅수 씨에겐 기억 속 소중한 한 조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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