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마션(The Martian)’은 탐사 도중 사고로 낙오된 우주비행사가 화성에서 생존해나가는 모습을 그린 맷 데이먼 주연의 SF영화다. 압도적인 규모와 철저한 기술 고증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 영화는 사실 한 블로그에서 시작했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앤디 위어(Andy Weir)는 개인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하다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자비로 전자책을 출판했고, 결국 종이책으로도 출간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정식 작가가 블로그에 올렸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제작된 것이다. 이는 최근 문학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문학 등장

국내 문학의 침체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교보문고 2015년 9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00위 안에 진입한 국내 소설, 시는 김진명 작가의 ‘글자전쟁’을 비롯해 4권뿐이다. 대신 외국 소설과 에세이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문학 시장이 침체돼있는 사이에, 문학을 직접 창작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등장했다. SNS문학, 웹소설, 1인 출판 등이 그 대표적 예다.

SNS와 모바일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상에서 본인의 글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자신의 SNS나 블로그에 자신의 시나 소설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시를 쓰고 있는 손우헌(문과대 한국사12) 씨는 “순간적으로 느끼는 발상을 시로 표현하면서 성취감을 느낀다”며 “문학을 통해 창조적 욕구를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SNS를 통한 일반인의 문학 창작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대중으로부터 유명세를 얻은 이른바 ‘스타작가’도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하상욱 작가는 전문적으로 시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재치 있는 글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간의 시를 모아 엮은 그의 시집 ‘서울 시’는 교보문고가 2004년 8월부터 2014년 8월까지 10년간 집계한 시집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SNS 문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작가가 되고 독자가 되는 웹소설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더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올해 웹소설의 시장 규모를 작년에 비해 2배 성장한 400억으로 전망했다. 빠른 성장세를 바탕으로 웹소설에서 인기를 얻은 일부 작가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웹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문학을 전공하거나 등단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웹소설을 연재하는 작가의 대부분은 아마추어 작가다. 웹소설 업체 조아라 이수희 대표는 “웹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작품을 게재하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신춘문예나 출판사 등에 인정받는 과정 없이 독자에게 직접 평가받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소설과는 달리 웹소설은 한 회차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5~10분 정도로 짧아, 빠르고 쉬운 콘텐츠 소비에 익숙한 최근 대중들의 요구에 더 쉽게 부합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수희 대표는 “바쁜 현대인에게는 순수문학을 향유할 여유가 없어, 쉽고 짧은 웹소설이 소비하기 최적화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웹소설의 성장은 문학 소비뿐 아니라 창작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웹소설 업체 북팔 차성민 홍보팀장은 “SNS를 자주 이용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에 익숙해진 대중들이 웹소설 시장에 쉽게 참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나 출간할 수 있는 전자책

전자책 시장이 점차 성장하면서 본인의 글을 전자책으로 출판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한국전자출판협회에 따르면 전자출판산업의 시장규모는 2010년 1975억에서 2013년 5838억 원까지 성장했다. 최근 전자책 전문업체 한국이퍼브가 출시한 전자책 단말기 ‘크레마 카르타’가 1차 완판되고, 리디북스에서도 곧 자체 단말기를 출시하기로 하는 등 전자책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본인이 쓴 글을 출판사의 도움 없이 직접 제작해 독자에게 제공하는 개인 출판은 자신의 글을 책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종이책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간단히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전자출판협동조합에서 지난 7월 개발한 전자책 제작 오픈플랫폼 e-페이지는 전자책 제작 및 유통을 무료로 지원한다. 이를 통해 콘텐츠가 있다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고, 독자들은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다.

개인출판을 하게 되면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을 온전히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에 따라 문학의 소재 및 장르가 조금 더 다양해질 수 있다. e-페이지 측은 “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되면 보통 출판사 측의 방향과 기획의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개인 출판의 경우 오로지 작가만의 시각으로 창작활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유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빠르게 변화하는 문학에 대한 논의 필요해

일각에서는 빠르고 쉽게 창작하고 소비하는 최근의 문학 트렌드가 문학의 질적 수준 저하와 장르의 편중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이우성 작가는 “SNS 문학도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존재할 필요가 있다”며 “독자들이 이를 향유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이 좋은 시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르 편중에 대한 우려는 웹소설이나 전자책 대부분을 장르문학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기된다. ‘한국 웹소설의 멀티모드성 연구(2015)’에 따르면 네이버 웹소설, 조아라, 북팔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 퓨전, 무협 등 장르문학이다.

반면, 문학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이 수월해져 결국 문학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진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많다. 한국문인협회 채문수 사무국장은 “어디까지를 문학으로 볼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없다”며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문학이 나오기 마련이기에 SNS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것도 별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운영하는 ‘연희문학학교’에서 소설 수업을 담당하는 전민식 강사는 “최근 일반인들이 문화센터 등 다양한 곳에서 문학을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다”며 “수강생들에게 지금까지 배워왔던 문학에 대한 접근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문학을 향유하는 방법의 변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문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박형서(인문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는 “고급문학에 대한 소비 없이 문학 창작의 양만 늘어난다면, 그 사회의 문학 수준은 높아지지 않는다”며 “고급문화에 대한 소비가 선행된다면 오늘날의 창작 붐은 상당히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출판계와 문학계 전반을 회생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극소수 저자의 권위를 쓰러뜨리고 시민이 직접 저자의 자리에 올라서는 문학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서동재 기자 a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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