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에게 <삼시세끼>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상상했던 것과는 꽤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어느 날 기획회의를 하다가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이우정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런 날은 어디 산골에 콕 박혀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 하며 뒹굴 댔으면 좋겠다’고요. 그 얘기가 시작이었죠. 우리는 그런 집이 혹시 있을까 알아봤죠. 프로그램 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각자 몇 백만 원씩 각출해서 시골집을 하나 살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우리만 할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생각하게 됐고 <삼시세끼>가 나온거죠.”

나영석 PD의 이 제작과정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온 건 그것이 일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나영석 PD는 대부분의 자신이 만들어온 프로그램들이 이런 개인적 취향과 욕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먼저 내가 하고 싶어야 하는 게 그 전제이고, 그것을 타인도 하고 싶을까가 두 번째 질문이다. 자신과 타인이 그렇다면 대중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 개인적 취향과 욕망을 담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1994>를 만든 신원호 PD는 그 드라마를 만들면서 자신이 홍대 앞 ‘밤과 음악사이’의 ‘죽돌이’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90년대라는 키워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 다름 아닌 90년대 음악이다. 스토리에서 당대의 아이돌에 열광했던 이른바 ‘빠순이들’ 이야기를 다룬 건 이우정 작가와 공동작업을 했던 작가들이 실제로 과거 그 주인공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영석 PD도 그렇지만 신원호 PD 역시 자신의 취향이 사실은 그들을 스타로 만들어낸 경쟁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대중문화라는 특수한 상황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많은 기업들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으로 지목하는 게 ‘창의력’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이 창의력이란 시험에 나오는 문제 풀이에서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일과 대립적 위치에 세워두고 어딘지 시간 남는 사람이나 하는 여유 정도로 여기는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창의력이다.

일과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창의력은 나올 수 없다.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이 지배적인 시대에는 노동의 양이 결과를 담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같은 정보화시대, 콘텐츠의 시대에는 노동의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 과거가 고속도로로 상징되는 속도가 경쟁력인 시대였다면 지금은 국도를 통해 조금 느리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디테일하게 공감해내는 능력이 경쟁력인 시대다. 그러니 기업에서도 요구하는 인재란 그저 정답만을 외워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취향과 방식으로 창의적인 해답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물론 현실이 만만찮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다. 그러니 취미 같은 자신만의 취향을 누리는 것이 호사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점점 더 요구되는 것이 바로 그 개인적 취향과 개성이라는 걸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취업 준비는 청춘들에게 넘어야 될 거대한 산처럼 압박감을 주지만 그 산을 넘기 위해서라도 자기만의 취미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엠넷에서 평PD로 시작해 현재는 상무가 된 신형관 PD는 자신을 만든 건 ‘음악’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대학시절부터 빠져 들었던 음악이 그를 방송의 세계로 이끌었고 음악 채널에서 MAMA 같은 세계적인 음악 축제를 만들어내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불혹을 훌쩍 넘긴 지금도 골프 대신 전자기타를 배우고 랩을 배워 <쇼 미 더 머니>에 나가는 게 꿈이라고 한다. 취미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신형관 상무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 사회는 점점 개성과 취향이 경쟁력인 사회로 가고 있다. 암기해서 정답 푸는 그런 재주는 더 잘하는 컴퓨터가 있는 이상 이제 불필요한 경쟁력이다. 청춘들이 이 혹독한 취업전선에도 취미를 포기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