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비시각장애인처럼 평범하게 일을 하며 살아간다.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엔 무엇이 있을까. 또한 앞으로 어떤 직종이 시각장애인의 일자리로 손꼽힐까.

▲ 7일 저녁 본교 인권축제에서 한빛예술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한빛예술단은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역량을 갖춘 시각장애인으로 구 성된 전문연주단이다.사진│조현제 기자 aleph@

촉각 활용하는 안마사가 대표적

시각장애인의 주된 일자리는 안마업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2013년 기준 전국 시각장애인 안마사 수는 8719명이며, 안마사협회에 등록된 안마원은 310개였다. 이처럼 시각장애인 중 안마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촉각을 활용해 일할 수 있고, 많이 움직이며 하는 일이 아니기에 이동하는 게 번거로운 시각장애인도 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일(조선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시각장애라는 특성을 생각할 때 손을 사용하는 안마와 관련된 업종은 모든 시각장애인이 고려할 수 있는 직종”이라고 말했다.

현 의료법에 따르면 안마사 자격증 취득은 시각장애인에만 대상이 한정돼 있다. 또, 2000시간 가량 안마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안마사 업무는 지압 스포츠마사지 발 지압, 활 법 등 손으로써 인체에 물리적 시술 행위를 하는 것을 포괄한다.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준 의료행위 중 하나로 안마사라는 걸 만들었다”며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스포츠마사지나 타이 마사지 등의 행동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각장애인이 안마사란 직업에 대해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안마사 유보 고용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정한 직종에 특정 유형의 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본과 대만도 우리나라처럼 안마업에 대해 유보 고용을 시행하며, 미국의 경우 시각장애인에게 자판기와 카페테리아를 우선 분양한다. 스웨덴은 시각장애인에게만 복권판매업을 허용하고 있다.

유보 고용이 일각에선 비장애인의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라며 반발하기도 한다. 비시각장애인 안마업 무자격자는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근거로 들어 헌법 소원을 수차례 제기했다. 하지만 근간의 재판에선 시각장애인 안마사 유보 고용에 대해 모두 합헌 판결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의 생계 보장 수단이 안마 행위 외에는 충분치 않으며, 그동안 소외돼 온 시각장애인들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들을 우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어둠속의 대화,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영화 <어바웃타임>엔 남녀주인공이 어둠으로 가득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다. 이런 블라인드 레스토랑은 199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유르크 슈필만 목사가 시각장애 체험 레스토랑인 ‘블라인드 카우’를 열면서 시작됐다. 이런 블라인드 레스토랑은 시각장애인을 웨이터 등으로 고용하기에 시각장애인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 북촌 등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어둠속의 대화’도 어둠을 통해 시각장애인 고용을 창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독일에서 시작한 이 전시는 세계적으로 850만 명 이상이 체험했다. 어둠속의 대화 전시를 관람한 심효원(여·15) 씨는 “시각장애인이 겪었을 애로사항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한편으론 그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비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폭넓게 이해하도록 돕는 한편, 시각장애인에겐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예민한 후각으로 일자리 창출하기도

공익활동 커뮤니티 이로움(ELOUM)은 ‘흩날리다’ 프로젝트로 시각장애인의 향기관련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소수의 비장애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돼 있다.

흩날리다는 10년 후의 목표를 정하고 현재 그 과정의 기초적인 일을 하고 있다. ‘어둠속의 캔들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강사가 돼 안대로 눈을 가린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캔들을 만들고, 다양한 연령대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디퓨져, 캔들 만들기 등의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향기전시회’ 향기와 시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매칭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전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향기 관련 ‘흩날리다향’을 만들기 위해 조향사 과정의 커리큘럼을 따라가기보다는 시각장애인이 직접 향기노트, 향기블렌딩, 향기해석 등을 공부하고 있다.

이로움 관계자는 “향기는 단지 후각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이를 통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서 “시각장애인이 수익을 창출하고, 비장애인과 동등한 협업 및 경쟁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로움은 이 프로젝트가 시각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향기를 만들어내는 직업을 넘어 흩날리다 샵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직접 캐셔, 판매자 등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직업군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적 감각을 살리다

조선시대에는 ‘관현맹인’이란 궁중행사에 현악기와 관악기를 연주하던 맹인 악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시각장애인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비춰진다. 지금도 시각장애인의 음악적인 재능은 높게 평가받고, 장애를 극복한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전문연주단 ‘한빛예술단’이 있다. 한빛예술단은 예술단이라는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만들어 시각장애인 자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 TV프로그램 ‘스타킹’이나 ‘슈퍼스타K’에 출연해 뛰어난 실력으로 화제가 된 단원들도 있다. 한빛예술단은 국내 여러 공연뿐만 아니라 해외 공연에도 초청돼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다양해진 직업군...지원할 제도적 장치 필요

안마업 외에도 전문직, 관리직, 공무원, 노무직, 생산판매직 등 시각장애인이 종사하는 직업군은 다양해졌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복지관 내 취업자 1,454명 가운데 안마사업 분야 취업자는 732명, 단순노무직 261명, 사무직 140명, 교사/공무원 85명, 사회복지사/점역사 79명, 서비스직 56명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시각장애인 일자리의 다양화도 필요하지만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정보격차를 해소해주거나, 법적으로 장애인을 지원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영일 교수는 “직업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정보의 힘은 매우 큰데, 정보사회가 되면서 정보 격차가 점차 커지게 된다”면서 “사회 직업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요구가 달라지는데, 시각장애라는 특성은 현실적으로 그걸 따라가기가 힘드니 정보격차를 해소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지원이 잘 매치가 되도록 사회적 보장과 법적인 보장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이에 정부에선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도 마련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에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어길 시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전체 채용인원의 2~3%에 해당하지만, 부담금 액수가 적어 지켜지지 않는 곳도 많다.

또한 안마업을 지금처럼 시각장애인의 주요 직업으로 지켜나가면서, 시각장애인의 직업군도 다각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영일 교수는 “안마업은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시각장애인 일자리를 다양하게 모색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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