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뒤를 돌아본다. 글에 마음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고민을 오래도록 했다. 한동안 말없이 부끄러움의 층계를 올랐다. 긴 층계의 어디쯤에서 문득 떠올린 것은 소설이라는 녹슨 꿈이었다. 현실이 배제된 꿈은 공허하나, 꿈이 말소된 현실은 절망적이라는 말을 기억했다. 그때부터 단순히 꿈을 향해 갔고, 마음의 편린들을 조심스레 써내려갔다. 세상의 복잡함을 타개하는 것은 의외의 단순함일 때가 많다.

사람에게는 타인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숭고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위험하다. 이 양면적 진실과 그로부터의 쓸쓸함이 글을 쓰게 했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범위를 좁히면 우리 개개인에 대한, 그리고 결국은 글쓴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하나의 참회록이라 할 수 있다. 또는 현존하는 누군가의 인생일 것이다. 앞으로의 누군가에게는 전환점이 되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자기애(自己愛)일까.

다시 앞을 바라본다. 그간의 고민을 완전히 해결했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 속에 은은한 빛 하나는 담아둔 기분이다. 불확정한 미래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존경하는 국어교육과 교수님들을 비롯한 모든 은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단순한 즐거움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많은 친구, 형, 누나, 동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든든함으로 다가와주는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조금 비인간적인 것까지 포함하자면, 회기역 플랫폼과 지하철, 아메리카노와 노트북에게도 감사합니다.

부족한 졸문을 눈여겨 보아 주신 심사 위원분들께도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앞으로의 글쓰기에 있어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각자의 은은한 빛이, 또는 각자의 언더월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엄수현(사범대 국교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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