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옥경훈(경영대 경영12)

 

 

제가 보잘 것 없어보이죠

여리여리한 몸매에 톡 부러질 것 같이 얇은 허리

그러나 목질의 하얀 속살 깊숙이

당신을 유혹할 새까만 흑심을 품고 있어요

그 마음을 날카롭게 갈아 하얀 A4용지 위에 휘갈기면

당신의 마음은 제 손아귀에 들어오죠

눈을 떼지 못할 거에요, 마음도 단단히 매일 거에요

날카로운 흑심으로 당신을 찔러 정복할 수도 있을 테지만

백지에 남긴 제 흔적에 눈이 멀어 당신 자의로 오게 만드는 편이

보기 좋아요

 

그러니 샤프를, 펜을 쓰지 말아주세요

샤프는 줏대 없는 놈이라 흑심이 닳면 또 다른 흑심을 갈아 끼워요

마음은 부품이 아니에요

펜은 계산이 빠른 놈이라 당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당신을 위해 닳아서 몽당연필이 되잖아요

 

그러니 몽당연필을 쉽사리 버리지 말아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의 과거형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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