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밀물처럼 들어와 온 마음을 후벼놓고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무방비로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다. 그간 쌓아온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그 위로는 온갖 슬픔과 질투, 좌절이 마천루처럼 우뚝 솟아오른다. 늪처럼 침대에 빠져 영원히 눈을 감고 싶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행복해 보인다. 여성에게 28일마다 마법이 찾아오듯, 우리 모두에게 이런 감정의 허(虛)함은 각자의 주기대로 찾아와 우리를 괴롭힌다.

그럴 때, 연필을 잡는다. 신기하게도 연필을 잡으면 시야에서 가려져 있던 모든 것들이 영롱하게 빛난다. 마치 자기를 봐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들은 우두커니 서있었다. 법대후문을 나와 안암학사로 오르는 언덕길을 걷다보면 번들거리는 나뭇잎들의 소리가 고막을 적신다. 신발이 지구에 감기는 맛도 좋다. 등산가는 동네 아저씨의 흰머리도 서리가 내린 것처럼 곱다. 그걸 종이에 받아 적으면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손을 타고 들어와 혈액 속에 녹아든다. 그리고 그 혈액은 혈관을 타고 온 몸을 돌아다니며 세포들을 따스하게 데운다. 진정제 주사를 맞은 것처럼 심장에 얹혀있던 거대한 바위가 녹는다. 어느새 웃고 있다.

 

문학에 관해 유일한 벗이 되어준 현수(玄水) 남현우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느 덧 제 일상이 되어버린, 매주 목요일마다 깊은 영감을 선사해주는 고대문학회 감사합니다. 일상의 끄적임에 지나지 않는 제 글에 공감해주신 고대신문 감사합니다.

옥경훈 (경영대 경영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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