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민주광장엔 3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텐트 하나가 있다. 2007년부터 시간강사 지위 회복을 위해 운동하고 있는 김영곤 전 강사가 설치한 농성 텐트다. 김 전 강사가 본교에 꾸준히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낸 지도 10년 가까이 됐다. 그동안 본교 시간강사의 지위 회복과 처우 개선은 이뤄졌을까.

 

본교의 시간강사 강의료는 지난 1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인상되지 않다가 2011년 1500원(2.5%) 인상돼 현재와 같은 5만1800원을 유지하고 있다. 윤관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본교 시간강사 시간당 평균 강의료는 5만4900원이다. 연세대(6만5400원), 성균관대(6만5000원), 이화여대(5만5000원) 등 서울 주요 사립대 강의료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다.

또한 대학 강의가 시간강사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시간강사 강의담당 비율은 본교가 타 대학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2014년 2학기 기준으로 시간강사의 강의담당 비율은 안암캠퍼스 37.3%, 세종캠퍼스 33.5%로 나타났으며, 이는 같은 기간의 한양대(28.5%), 중앙대(31.9%), 성균관대(2.6%), 서강대(23.1%), 경희대(31.4) 등 주요 사립대에 비해 높은 수치다. 교내외에서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강사법 개정안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본교 시간강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시간강사로 살아가고 있을까. 본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야기 특성상 취재원들의 이름과 소속은 밝히지 않았다.

 

“잘릴 수 있어 목소리를 함부로 못 내“

본교에서 강의하는 시간강사 A(여) 씨는 강사로 일한 지 20년이 넘었다. 강사휴게실에서 처음 본 그의 첫인상은 다급해 보였다. 그는 강사휴게실에 있던 다른 강사를 의식하면서 기자를 빈 강의실로 안내했다. A 씨는 인터뷰 내내 강의실 문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에게 시간강사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냉소적으로 답했다. “잘못하면 잘릴 수 있으니까. 그건 당연하잖아요. 어쩔 수 없죠.”

한때 A 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한 학기에 43학점을 강의한 적도 있다. 매일같이 하루에 8시간 이상씩 강의만 했다는 소리다. 한 대학에서 한 시간강사에게 9학점 이상의 강의를 주지 않기 때문에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해야 했다. “시간강사의 강의료가 너무 적어 한 학교에서만 수업해서는 먹고살기가 힘들겠더라고요. 먹고 사려면 어쩔 수 없었죠.”

이때는 밥 먹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모두 사치였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에 3시간 이상 자지 못하고, 견과류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이땐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거나 면담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 학교 수업 끝나고 바로 다른 학교로 가는 시간조차 빠듯하니까 학생들에게 수업 외 시간을 많이 할애해주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어요. 한편으론 나는 시간당 돈을 받는데, 교수도 아닌 내가 이렇게까지 더 시간을 쪼개서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어요. 저는 당장 저기(다른 학교) 가서 강의해야지 먹고 살 수 있는 거니까.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받은 만큼만 한다고. 학생들을 위하고 싶지만 때로는 안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는 본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속상한 일도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교직원 버스 차별 대우다. 예전엔 잘만 타고 다녔던 교직원 버스에 이제 강사는 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예 시간강사는 탑승하면 절대 안 된다고 차에 써 붙여놨어요. 그런데 버스에 좌석이 부족했던 적은 거의 없었어요. 자리가 남아도는데도 강사는 탈 수 없다니, 그래서 더 속이 상하죠.”

A 씨는 강사로 재직하면서 젊은 시절엔 성적인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수가 함께 놀자며 술을 마시고, 저를 안으려고 하거나 신체 일부를 만지려고 한 적도 있어요. 이 불쾌함을 대놓고 말하면 잘리기 때문에 ‘현명’하게 피해 가는 방법을 취했죠.”

A 씨는 한국에서 강사로 살아가기란 고단한 일이라 말했다. 교수가 되는 데까지 엄청난 돈과 생각지도 못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간강사가 밥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요. 어떤 시간강사는 교수님들에게 고급 참치 요리도 사주고, 논문도 쓰다 받쳐요. 그렇게 하면서 교수와 친분을 쌓으면 아무래도 그런 강사에게 강의를 더 주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는 교수로 임용되려면 돈도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번은 지방대학에 교수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런데 그 학교에서 저에게 1억 원을 요구하더라고요. 1억 원의 돈만 주면 정교수로 임명시켜주겠다고. 저는 그때 돈이 없어서 결국 안 들어갔죠.”

그는 교수가 되기 위해 몇 번 임용을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밥벌이라도 하려고 강사 생활을 계속한다고 했다. “예전 젊을 때처럼 일주일에 40시간씩 가르치진 못하겠더라고요. 방학 때나 나이 들어서 생각하면 저금을 하고 재테크를 해서 지금 있는 돈을 불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노후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시간강사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거죠.”

 

강사도 학자로서 떳떳하게 살 수 있어야

B(남) 씨는 본교에서 5년간 강의했다. 그는 데모가 매일 일어나던 어수선한 시대에서 남을 덜 속이는 길을 선택하자는 생각에 학자로서의 길을 택했다. “당시 지도교수님을 보며 선비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살아가시는 모습에 저도 그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강사는 불안정한 계약직이지만, 맞벌이 부부인 B 씨는 그나마 큰 부담 없이 강사 일을 할 수 있다. “아내가 정규직이라 다행이지, 만약 저 혼자 벌어야 했다면 벌써 이혼을 당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한 학기에 18학점만 수업을 맡아도 몸이 굉장히 힘들어요.” 그도 역시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한 통의 전화를 간절히 기다린다. 과 사무실에서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맡아달라는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계절학기를 맡지 않으면 강사들은 8개월 번 돈으로 12개월을 버텨야 한다.

그는 정부나 학교가 강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내놓는 대책은 오히려 강사를 ‘조종’하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했다. “계속해서 강사끼리의 경쟁을 부추기며 학자로서의 양심과 자부심을 버리도록 만들어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해요.” 그는 정말 필요한 건 강사로 살아도 학자로서 자신감과 자부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거라 말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무엇보다도 강사료가 인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사로 살아가도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공부하며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정말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강사료가 인상되어야 하고요.”

강사들은 적은 강사료로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다니는 보따리장수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또한 교수의 비위에 들기 위해 잡일을 마다치 않으며 부당한 요구에도 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게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쫓게 된다는 것이다. “강사들이 돈을 목적으로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은 아니잖아요? 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은 예상하고 학문적 욕구를 위해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B 씨는 이런 초기의 열정이 현실에 부딪히며 사라져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흘 동안 밤을 새우며 첫 번째 강의를 준비하던 기억이 선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결국 이래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강사도 학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줬으면 해요. 제가 원하는 것은 단지 이것뿐이에요.”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은 먹지 않는다”

본교에서 2010년부터 강의를 한 C(남) 씨는 본교 학부생 출신이다. 본교는 본교 출신 강사를 우대한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서 강사들 사이에 퍼져있다. 또한 본교는 영어강의가 가능한 강사를 우대해 강사료도 일반 강사료보다 1.5배를 더 준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본교 학부생 출신이면서, 국외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영어에 능통한 C 씨는 자신을 스스로 ‘부르주아 강사’라고 일컫는다.

저명 학술지에도 논문을 게재해 논문 실적 또한 좋은 그는 ‘겉보기에도’ 좋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강사다. 그럼에도 그에게 교수 임용이란 기회는 잘 오지 않는다. “한국에서 교수 되기는 복불복이란 소리가 있어요.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매우 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는 거죠. 주변에 보니까 그중에 나이와 인맥, 시기적인 운도 함께 맞아 떨어져야 하는 거더라고요.”

한번은 한 사립대학 교수 임용 최종 면접까지 갔었다. “그때 저에게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냐,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게 교수 임용 최종면접에서 물어볼 질문입니까.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길래 면접관에게 제 생각을 가감 없이 쏘아붙이고 나왔어요. 이 이야기를 이미 교수가 된 친구놈들에게 해주니 다들 제 욕을 하더라고요. 저는 후회는 없었어요.”

이런 그가 학자로 살면서 늘 강조하는 삶의 태도가 있다.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이른바 ‘고대정신’이다. 강사로서 살아가는 길에 많은 유혹이 놓여있지만, 고대정신으로 늘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은 홀몸이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기에 그나마 고대정신을 지킬 수 있는 운이 좋은 사례라고 했다. 하지만 부양해야 할 가정이 있는 가장이라면 현실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강사를 보면 고급인력들이 사회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강사는 신분이 확실한 것도 아니며,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못해요. 돈을 들여 공부한 것에 비해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굉장히 열악해요. 가르치는 건 교수와 똑같이 가르치고 연구활동도 하는데, 대우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그렇다고 희망이 많은 것도 아니고 우울하죠. 정말 강사로 강의하면서 대학교수직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막막할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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