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그저 수많은 지방대 시간강사 중 한명이라고 했다. ‘노오력’을 요구하는 시대에서 박복한 청춘을 살아온 평범한 삼십대. 언제나 책을 붙잡고 있다가 문득 쓰는 것이 더 좋아졌다는, 그저 그런 이유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 박사과정 수료생.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평범한 연재물은 그렇게 시작됐다.

▲ 사진제공|본인

왜일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여러 매체에서 연재되기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200만 번이 넘는 클릭을 이끌었다. 6일, 이것을 엮은 책도 나왔다.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보이는 저자 소개. 자신이 살았던 집의 주소인 ‘309동 1201호’를 필명으로 정했다는 그 짧은 소개가 어색할 정도로 평범한 이력. 이 사람, 도무지 특이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이 닿은 그에게, 그래서인지 여러 질문을 편하게 건넬 수 있었다.

왜일까. 답변을 받을 때, 편한 구석은 찾을 수가 없었다.

 

- 글 전반에서 대학의 부당함을 짚는다.

“지도교수도, 교직원도, 대학원생도, 모두가 대학의 ‘을’로서 살아간다. 대학이라는 ‘슈퍼갑’ 앞에서 우리 모두는 을일 수밖에 없다.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은 공고하다. 예컨대 대학원생은 대학의 상상 가능한 여러 공간에서 조교로 ‘노동’을 하지만 그 어떤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한다. 그저 등록금의 일부를 감면 받는 식으로 그 보수를 받는다.

어느 개인의 특별함으로는 이런 ‘제도’를 바꿀 수 없다. 주변인을 원망하진 않는 이유다.”

 

- 패스트푸드점 이야기가 많은 호응을 얻었는데.

“월 60시간 이상 노동하면 건강보험을 보장해 준다는 말에 패스트푸드점에 이력서를 냈다. 뽑아주지 않을까봐 이력서에는 석사과정까지의 학력만 적었다.

내가 하는 일은 ‘물류하차’다. 이를 악물고 60시간을 꼬박 채워 나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해도 4대보험, 최저시급, 주휴수당, 심지어 축의금을 보장 받는다. 강의와 연구로 생계가 보장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만, 학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퇴직 처리돼 어차피 다른 노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나는 대학에서 ‘노동’하고 있지만, 노동자로 대우 받고 있다고 생각해 본 바가 별로 없다. 그것은 한 인간이 응당 가져야 할 자존감을 참 쉽게도 무너뜨린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 하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 이번에 강사법이 입법예고 됐다.

“현장에서는 ‘더 나빠질 게 없잖아’하면서도 더 나빠질 게 있는 것 같아 모두들 불안해하고 있다. 예컨대, 1년 임용 보장이라고 해서 12개월 치의 월급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방학 중에는 고용이 유지되면서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1년에 한 번 신청하던 실업급여조차 신청할 수 없는 처지가 되는 셈이다. 월급을 주지 않을 것이면, 차라리 현행대로 퇴직시키는 편이 낫다.”

 

- 독자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학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대학을 ‘슈퍼갑’으로 규정했지만 대학에 대항할 유일한 주체가 있다. 학생이다. 학생은 ‘갑’이다. 하지만 자청해서 ‘을’로, ‘병’으로 내려가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학생들이 당당한 갑으로 대학에서 존재할 때, 대학은 비로소 학생들을 두려워 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내려가 ‘을’이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럴 때 비로소 대학이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의실에 처음 섰을 때, 여러분을 구원하고자 했다. 하지만 저를 구원해 준 쪽은 오히려 학생들이었다. 언제나 고맙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시간강사를 어떤 단어로 정의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유령”이라고 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그저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그렇게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아픈 것이었는지는...”

답변은 거기서 끝났다. 인터뷰도 끝났다. 불편한 마음은 정말이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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