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 2014년 기준 전체 대학교 평균으로 볼 때 전체 교원 10명 중 4명꼴로 존재하는 이들은 법적으로 교원이 아니다. 4대 보험도, 퇴직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은 3학점 강의 하나에 평균 6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방학이면 특별한 일거리가 없는 이들은 학기 중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강의를 맡기도 한다. ‘보따리 장사’, ‘지식 행상꾼’이라는 별명은 그들의 특징을 잔인하리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발의된 ‘고등교육법 및 후속 법령 개정안’, 일명 ‘시간강사법’은 시행논의만 5년째 지속되고 있다. 교육부가 시간강사법을 2016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겠다는 입법예고를 10월 2일 진행한 가운데 각 단체의 입장이 판이해 또 다시 시행이 유예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간강사 측은 이번 개정안이 여전히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학연금법의 적용대상에서는 자신들을 제외하는 것을 문제 삼는 한편, 대학 측 역시 인사위원회를 거치는 임용절차와 비용 증가 문제 등에 있어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원 아닌 교원’ 시간강사
1977년 교원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 시간강사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려왔다. 법적 지위 자체가 불안정한 시간강사는 대학이 자체 기준에 따라 임용과 임금을 결정해도 교육공무원법 등 관계법령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대학알리미 기준 2014년 사립대 시간강사의 평균 강사료는 시간당 51000원, 평균 강의시간은 4.5시간으로,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다면 시간강사의 평균 월수입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약 95%의 시간강사가 6개월 미만의 계약기간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부분의 시간강사는 매 학기마다 계약 갱신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1980년 85개교에 불과하던 대학이 2010년 202개교로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시간강사의 수도 2만여 명에서 7만8000여 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IMF 등으로 안정적인 재정운영이 대두되던 시기에 대학이 전임교원보다 시간강사 충원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연구소(소장=박거용) 김삼호 연구원은 “1990년대부터 대학의 수가 증가하며 시간강사의 수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이는 싼 값으로 강의수요를 충당하려는 대학의 이해관계와 전임교원을 충당하지 않아도 대학을 운영할 수 있었던 규제의 허점이 맞물려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 시간강사의 지위와 처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됐지만 관계당국의 움직임은 미비했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학강사의 차별적 지위 개선’을 교육인적자원부에 권고하기도 했지만 해당 권고는 법적 효력이 없어 관계법령 개정 등 가시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0년 5월 조선대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하던 서정민 씨가 시간강사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고등교육법 및 후속법령 개정안, 일명 ‘시간강사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5년 째 표류중인 ‘시간강사법’
2011년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인정 △4대 보험료 및 퇴직금 지급 △계약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의 내용이 발표되자 시간강사들은 시행을 반대했다. 개정안이 시간강사를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학연금법의 적용 대상에서는 제외해 사실상 ‘무늬만 교원’으로 인정하는 셈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학 역시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며 우려를 표했고 국회는 결국 시간강사법 시행을 2013년 1월에서 2014년 1월로 1년 유예했다.
2013년 12월까지 정부, 대학, 강사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자 국회는 시간강사법 시행을 2016년 1월로 2년 추가 유예했다. 개정안 시행이 이렇듯 차일피일 미뤄지는 동안 대학은 시간강사의 고용비율을 줄였다. 대학구조개혁평가 등 각종 대학평가에서 전임교원 비율이 평가요인으로 자리 잡은 데다 개정안 시행 이후의 재정 악화를 우려해서다. 실제로 대학교육연구소가 4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간강사의 수는 2010년 7만8000여 명에서 2014년 6만 3000여 명으로 1만 5000여 명 감소했다. 대학교육연구소는 해당 보고서에서 “전임교원 확보율 등이 평가지표에 포함되자 대학은 시간강사를 대폭 감축하고 있다”며 “또한 대학은 전임교원을 충원하면서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임금과 정년보장에서 차별을 받는 ‘비정년트랙’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부담’ 교육부 ‘행정지원 할 것’
두 번째 유예기간 종료가 다가오자 교육부는 10월 2일 개정안 입법예고를 진행했다. 교육부 대학정책과 김도영 주무관은 “개정안 시행 유예 이후 대학과 강사 측 관계자의 의견을 여러 차례에 걸쳐 청취했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강사의 신분보장과 고용안정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측은 여전히 개정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개정안에서 크게 달라진 부분도 없을뿐더러 정부가 대학에게 일방적으로 행정적, 재정적 부담을 지우려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부구욱) 강낙원 정책연구팀장은 “사실 강사에게 제일 필요한 부분은 강사료의 인상인데 이는 정부의 지원 없이는 힘들다”며 “인사위원회 설치를 통한 강사 임용 역시 많은 숫자의 강사를 일일이 담당하기에는 행정적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사에게 1년 이상 임용을 보장하게 되면 그간 여러 사람이 맡아왔던 강의가 몇 사람에게 집중되고, 이는 곧 시간강사의 대량 실직과 강의기회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문제임을 인지하고 각 단체의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또다시 유예를 결정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시행에 초점을 두고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도영 주무관은 “행정적이고 재정적인 부담이 대학에게 주어지는 것은 실무 가이드라인을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강사 역시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인 정책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강사 단체, 각각 입장 달라
시간강사 측은 입장이 나뉘고 있다.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위원장=김영곤, 전강노)의 김동애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장은 “이번 개정안은 강사의 교원 신분 보장과 대학의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충원 저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개정안 시행에 찬성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에는 비정년트랙 교원을 법정전임교원으로 인정하는 조항이 사라졌다”며 “이를 통해 대학의 교원 비정규직화는 어느 정도 저지될 수 있다는 것은 우선 확보하고, 처우 개선에 있어 미흡한 부분은 이후 논의를 통해 개선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위원장=임광순, 한교조)은 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선 고등교육법 자체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교조 임광순 위원장은 “악법에서 선한 시행령이 나올 수가 없다”며 “현재의 고등교육법은 계약기간을 비정규직으로 명시하고 강사의 지위와 처우를 학교의 자율에 맡기는 등 차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형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사 역시 전임교원처럼 학칙이나 정관이 아닌 교육공무원법 등의 법률로 보호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며 “지금의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결국 1년짜리 비정규직 강사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개정안의 일정부분에서 예외를 적용하고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만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실 교육부의 이번 개정안은 시간강사의 최대 문제점인 해고위험의 증가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며 “강의시간 등의 부분에서 대학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일정 기간만이라도 예외를 인정하는 한편, 4대 보험 적용 및 강사료 인상을 이유로 시간강사가 고용불안정에 놓이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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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시간강사’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52년이다. 정부는 1952년 4월 교육법 시행령을 제정하며 제43조에 ‘상시 근무하는 자를 전임강사, 상시 근무하지 않는 자를 시간강사로 칭한다’고 교원 관련 규정을 뒀다.
전임교원과 동일하게 법정 교원으로 자리하던 시간강사의 지위는 박정희 정권에서 변화를 겪었다. 1962년 국공립대학 및 전문대학 강사료 지급규정에 따라 시간강사 강사료 지급에 별도의 기준이 마련되는가 하면 1977년 교육법 개정에서는 시간강사가 교원의 범주에서 제외됐다. 1997년 고등교육법이 새로 제정되고 수차례 개정을 거치며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지만 시간강사는 여전히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