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3 16:09 (수)
33년간 복사기 앞을 지킨 부부 "그 학생이 교수가 됐네요"
33년간 복사기 앞을 지킨 부부 "그 학생이 교수가 됐네요"
  • 이준 기자
  • 승인 2015.11.29 2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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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그 사람들 - 학술정보원 복사실 박석규, 이창하 씨 부부

위잉 탁. 위잉 탁. 복사기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그것이 뱉어내는 종이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가 매캐한 냄새가 풍긴다. 복사실의 오래된 TV는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세종캠퍼스 학술정보원 1층에 위치한 조그만 복사실을 찾으면 무심한 것 같지만 능숙한 손길로 두 사람이 복사를 하고 있다. 박석규(남·59) 씨와 이창하(여·59) 씨 부부다.

▲ 사진|이준 기자 june@

부부가 세종캠퍼스에서 복사를 한 지는 어느새 33년이 지났다. 처음 일할 당시 이창하 씨 뱃속에 있던 아기는 어느새 30살을 훌쩍 넘겼다. 학교가 지어지기 전 박석규 씨는 조치원에서 복사기 대리점을 운영했다. “1980년도에 학교가 처음 지어지고 얼마 동안은 복사기를 고치러 학교로 출장을 다녔어. 그러다 나중에는 전문적으로 복사기 관리할 인원이 필요했는지 학교 측으로부터 같이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

1982년, 부부가 처음 학교에 정착해 복사 일을 할 당시엔 세종캠퍼스에 건물이라곤 인문대와 행정관밖에 없었다. 박석규 씨는 추억에 잠기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는 복사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인문대 로비에서 칸막이도 없이 복사일을 했어. 집에 갈 때는 복사기를 그냥 천으로 덮어놓고 갔지.” 이후로도 건물이 하나씩 지어질 때마다 복사실은 행정관 지하, 주차장에 있는 조립식 컨테이너 등으로 장소를 옮겼다. 지금의 장소에 위치하게 된 것은 15년 전이다.

학교가 지어지고 초창기에는 구성원이 많지 않다 보니 부부는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을 알고 있었다. 박석규 씨는 “그때는 나도 젊었으니까 학생이나 교수들과 같이 운동도 하고 집에 초대해서 저녁도 먹었어. 80년도에 학교를 다녔던 학생이 지금은 교수가 되어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한 경우도 봤지.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니 부부는 가끔 티격태격할 때도 있다. 이창하 씨는 웃으며 이야기를 꺼내 놨다. “나는 복사비를 정확히 받으려고 하는데, 남편은 몇 백 원은 깎아주라고 해. 옆에서 그런 말을 하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되잖아. 자기만 천사되고. 그래도 심하게 다툰 적은 없어. 가끔 마음이 안 맞으면 삐지긴 하지만 집에는 항상 같이 가거든.” 박석규 씨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다. “나랑 살면서 고생 많이 했지. 겉으론 표현을 안 하지만, 속은 서로가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살고 있어.”

부부는 30년 이상 지속해온 이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돈 버는 것을 떠나서 지금 즐겁게 일하고 있고, 학생들하고 생활하다보니 나도 같이 젊어지는 것 같아. 밖에서 동년배들 만나면 다 할아버지야. 내가 가장 젊어. 지금은 학생 수도 많아졌고 나이도 들어서 솔직히 예전만큼의 정은 없는 것 같아. 하지만 학생들이 필요할 때 찾아오면 언제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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