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5일에 2차 민중총궐기가 예고돼 있다. 많은 이들이 서울 도심에 모일 것이고, 그날 오후 내내 그리고 다음날도 참가자들의 ‘폭력’과 ‘불법’을 강조하는 보도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도심에 모이는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차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으면 한다.

지난 14일 1차 민중총궐기에 많은 노동, 농민, 시민, 정치, 학생단체들에, 집회의 취지에 공감해 모인 가족과 개인들로 10여만 명이 모였다. 그럼에도 며칠간 언론보도는 참가자의 요구와 주장은 외면한 채 차벽 앞에서 버스를 흔들어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데에만 골몰했다. 물론 집회일 이전부터 정부부처 장관이 합동담화문을 발표하며 집회가 불법이라고 규정하면서 시민여론과 분리를 계속 시도했다. 14일 시위도중에 농민 한 명이 경찰이 쏜 살수차의 물대포를 맞고 중상을 입었는데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더 강력한 공권력 집행을 다짐하는 게 현 정권이다. 더욱이 프랑스 파리테러 사건에 빗대며 시위하는 국민을 테러범으로 규정하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과 이에 호응하는 사법기관의 행태가 이어질 뿐이었다.

이후 여당 국회의원이 제기한 이른바 ‘복면시위 금지법’이 시위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시도인데도, 보수언론은 가능한 일이라는 듯이 외국의 사례를 들먹이며 옹호했다. 그 외국의 사례 뒤에 있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와 시위를 보장하려는 서구국가의 사법기관의 태도는 생략한 채 말이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세월호특별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현지 한인들의 시위가 있었다. 당시 캐나다 총독 관저를 나서던 박근혜 대통령의 차량이 지나던 도로변에 있던 시위대를 한국 경호원이 제지하려 하자, 현지 캐나다 경찰이 한국 경호원들에게 경고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와 서구 사이에는 시위대의 차이보다는 사법기관의 차이가 훨씬 더 큰 것이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고, 경찰의 차벽설치와 살수차의 운용이 불법이라고 해도, 종편과 보수신문 등에서 폭력의 장면을 찾는 것은 금방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요구와 주장을 무효로 돌리는 여론몰이에 쓰인다.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이후 당시 집회운영 방식을 두고 행사를 지지하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폭력의 경험이 낯선 시대에 사법기관의 불법성을 강변하는 것만으로 많은 국민을 설득할 수는 없다. 정부여당이 복면시위를 금지하겠다고 나선다면, 다른 프레임으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차라리 이름표를 달고 당당히 요구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차벽으로 앞으로 나갈 수 없다면 그 차벽을 등지고 앉아 주장과 요구의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 퇴행하면서도 교묘해지는 사법권력의 집회방해와 폭력의 연출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주장의 정당성을 높여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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