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때면 김밥, 삼각김밥, 햄버거,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채울 때가 많다. 집을 떠나 살게 된 후로 영양가 있는 건강한 식사를 한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문득 건강하고 영양가있는 ‘밥’다운 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24시간 안암동 불을 밝히는 식당, ‘전주완산골’을 찾았다. 전주완산골은 정유매(여·46) 사장이 올해로 13년째 운영 중이다. 굴, 낙지를 이용한 음식이 유명한데, 타우린을 함유해 피로회복에 좋다는 ‘낙지’가 들어간 낙지돌솥밥을 주문했다. 반찬은 겉절이 김치, 깍두기, 고추장아찌가 전부이다. 세 종류의 김치가 하나같이 혀에 착착 감겨서 다른 반찬은 생각나지 않는다.

▲ 사진|서동재 기자 awe@

김치로 입맛을 돋우고 있을 무렵, ‘나 뜨거우니까 조심해’라고 경고하듯 무시무시한 김을 내뿜는 돌솥밥이 나왔다. 돌솥밥 뚜껑을 여니 돌솥 안쪽에서 하얀 김이 눈앞으로 올라온다. 김이 거치고 보이는 건 윤기가 잘잘 흐르는 흰 밥 위를 수놓은 붉은 분홍빛을 띠는 낙지다. 알맞게 익어 오동통하게 부푼 낙지의 자태가 한눈에 봐도 탱글탱글해 보인다.

이곳의 낙지돌솥밥은 조금 특이하다. 보통은 새빨간 낙지볶음을 넣어 비벼 먹는데, 이곳의 낙지엔 양념이 돼있지 않다. 함께 내어준 그릇에 밥을 전부 덜어내고, 누룽지만 남은 돌솥엔 물을 부어 그대로 뚜껑을 덮는다. 이건 숭늉이 된다. 그릇엔 무채, 콩나물, 오이, 당근, 날치알과 김가루, 참기름이 뿌려져 있다. 낙지와 밥을 덜어낸 그릇엔 기호에 따라 고추장 양념이나 간장 양념을 넣어 비벼 먹으면 되는 것이다.

간장 양념을 넣고 슥슥 비비니 낙지가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크게 한술 떠 입에 넣는다. 입에서 가장 먼저 씹히는 게 통통한 낙지다. 탱글탱글하게 이 사이를 오가는 낙지는 질기지 않고, 적당히 익어 씹히는 맛이 좋다. 낙지와 함께 촉촉한 밥알이 씹히고, 무채와 콩나물, 오이, 당근의 아삭함이 조화롭게 뒤섞인다. 간간히 눌은밥이 씹힐 땐 훨씬 맛이 좋다. 삼삼하게 간장양념이 배어든 담백한 낙지를 먹으면 매운 양념에 가려져 느끼지 못했던 낙지 본연의 매력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낙지의 맛에 놀랄 새도 없이, 입안에서 톡 터지는 날치알은 맛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탱글탱글한 낙지, 윤기 나는 밥알을 위해선 밥 짓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 살아있는 채로 급 냉한 낙지는 물에 살짝만 데쳐야 한다. 너무 오래 익히면 질기고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돌솥밥을 안쳐서 보통 불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에 놓고, 뜸을 들인다. 뜸을 들일 때쯤 살짝 데친 낙지를 밥 위에 올려 조금 있다 불을 꺼버린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윤기가 자잘한 밥과 수분을 머금은 탱탱한 낙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이 사라지는게 아쉬운 순간 숭늉이 그 허전함을 채워준다. 따뜻한 숭늉으로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하면 깊은 속부터 든든하게 느껴진다. 피로회복에 좋다는 낙지가 들어간 밥을 먹어서 그런지, 오래간만에 건강한 식사를 했다는 기분 탓인지 왠지 모를 힘이 불끈 솟는 듯하다.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때,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싶다면 ‘밥’ 같은 밥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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