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이라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세상과 연결되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웹툰 ‘은주의 방’에서 한 공무원수험생이 주인공 ‘은주’에게 셀프인테리어를 부탁하면서 건네는 대사다. ‘은주의 방’은 백조(여성 실업자를 이르는 말)인 은주의 싱글 라이프 인테리어 이야기를 다루며 특히 2030세대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방’이라는 공간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개성을 담은 공간으로 여겨진다. 집 혹은 방을 꾸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인테리어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특히 관련 시장의 이용객 중 20대의 이용률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20대도 주거공간에 관심이 있고, 자기만의 방을 꾸미는 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 사진|서동재 기자 awe@

떠오르는 시장, 홈퍼니싱

홈퍼니싱(Home furnishing)이 뜨고 있다. 홈퍼니싱은 ‘집(home)’과 ‘단장하는(furnishing)’의 합성어로 인테리어 소품, 벽지, 침구 등으로 집안을 꾸미는 일을 말한다. 보통 소형가구와 잡화용품, 부엌용품, 인테리어 소품 등이 같이 언급된다. 통계청에 의하면, 2008년 약 7조 원이었던 국내 홈퍼니싱 시장은 2014년 약 12조 5000억 원으로 그 규모가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와 같은 홈퍼니싱 성장의 배경에는 1인 가구의 증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약 415만 가구)에 비해 2014년 1인 가구 수는 약 488만 가구로 증가했다. 네 가구 당 한 가구는 1인 가구 형태인 셈이다. 그 증가 속도는 더욱 커져 2030년엔 1인 가구 수가 전체 가구 수의 30%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돼, 홈퍼니싱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이상현(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핵가족화가 확산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자신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더 커지게 됐다”면서 “홈퍼니싱은 개인적인 공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이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대로 살아가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예전보다 인테리어 관련 소품이나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점도 홈퍼니싱 성장의 주요한 이유다. 양수진(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인테리어 관련 소품을 판매하는 저가의 리테일 샵이 많아졌으며, 오프라인 로드샵뿐만 아니라 온라인 등을 통해 인테리어 소품을 쉽고 빠르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따라서 앞으로 홈퍼니싱 시장의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경험’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샵의 성장

홈퍼니싱 시장이 떠오르면서, 최근 라이프스타일샵이 주목을 받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샵은 의류나 잡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생활용품, 가구, 잡지, 예술, 음악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2014년 12월 우리나라에선 광명에 처음 문을 연 ‘이케아(IKEA)’가 대표적이다.

홈퍼니싱에 대한 수요가 늘자, 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라이프스타일샵에 뛰어들었다. 2014년 10월 글로벌 SPA 브랜드인 H&M과 자라(ZARA)가 각각 국내에 라이프스타일샵인 H&M홈과 자라홈을 열었다. 이어서 국내 업체들도 홈퍼니싱 시장에 눈을 돌려 라이프스타일샵을 만들었다. 가구업체인 한샘을 비롯해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신세계의 JAJU(자주), 롯데의 MUJI(무인양품), 이랜드의 모던하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라이프스타일샵은 대형가구 판매에서 벗어나 소형가구와 그 외 매우 다양한 생활소품을 판매한다. 이케아 코리아의 경우도 판매상품의 60% 이상이 가구가 아닌, 생활용품이 차지한다. 학생, 직장인, 신혼부부로 구성된 1~2인 가구는 상대적으로는 전·월세 비중이 높다. 그렇다 보니 잦은 이사를 고려해 가구보다는 생활소품으로 주거 공간을 꾸미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또한 라이프스타일샵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샵 매장마다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서로 다른 분위기나 스타일을 구현해낸다. 이상현 교수는 “라이프스타일샵에서 소비자는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경험을 하는 것으로 쇼핑의 형태가 바뀌게 되는 것”이라며 “마치 이케아를 구경하면서 그려지는 매장의 이미지를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접목해 상상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대로 확대되는 홈퍼니싱

과거에는 흔히 30,40대 주부들의 전유물로만 인식됐던 ‘집 꾸미기’가 1인 가구의 발달 등으로 20대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 라이프스타일샵의 20대 이용객이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한민(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이는 20대의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취를 하는 이들이 기왕이면 ‘나만의 공간’에서 익숙함과 편안함, 안락함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1020세대를 겨냥한 라이프스타일샵인 ‘버터’를 론칭하기도 했다. 재미있고 특색있는 캐릭터들이 반영된 생활용품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한 쇼핑 공간으로 꾸며졌다. 버터 관계자는 “손님 중 80%가 10,20대이며, 동양권 외국인 손님도 많이 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버터를 찾은 박소라(여·25) 씨는 “자취방 꾸미는 걸 좋아해서 이런 라이프스타일샵을 자주 찾는 편”이라며 “요즘은 라이프스타일샵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나 같은 20대도 부담 없이 방을 꾸밀 수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서로의 방 인테리어를 공유하는 공간도 생겨났다. 페이스북 ‘원룸만들기’ 페이지는 28만 명이 넘는 사용자들이 팔로우하고 있다. 페이지 관리자는 자신이 원룸을 꾸미는 과정에서 인테리어 정보에 부족함을 느껴 이런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내 또래 중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나와 같은 고민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 페이지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 페이지엔 하루에 20건이 넘는 방 인테리어 제보가 들어오며, 이용자 대부분은 대학생이다.

전문가들은 20대가 홈퍼니싱에 주목하는 것이 개인의 개성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자아표현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양수진 교수는 “현재 20대는 창의 중심의 교육을 배경으로 성장했고, 개성을 중시하기에 자아표현의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예뻐지고 발전하는 자취방

이승현(남·29) 씨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취방 인테리어를 바꾼다. 그에게 자취방은 단순히 방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생활하는 공간’이란 개념이 크다. 그는 “나 혼자만의 유일한 공간이기에 나의 취향과 안락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방을 꾸민다”고 말했다. 이승현 씨가 인테리어 관련 정보를 얻는 곳은 다양하다. 그는 “요즘은 1인 가구 수가 많아서 예전보다 정보를 얻기 쉬워졌다”면서 “인테리어 카페나 블로그, 페이스북 페이지, 서점의 카탈로그, 이케아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샵 등에서 정보를 얻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20대가 자취방 인테리어 정보를 얻는 방법은 최근들어 더욱 다양해졌다. 페이스북 페이지나 인터넷 카페 등은 물론이고, 관련 애플리케이션까지 생기면서 접근성이 높아졌다. 1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집꾸미기’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인테리어를 공유하고, 홈퍼니싱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얻는다. 또한 쿠션, 담요, 수납장 등의 공동구매를 통해 함께 인테리어 소품 등을 구매하기도 한다. 집꾸미기 앱을 1년째 운영 중인 운영자 노대영 씨는 “많은 사람이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예전보다 더 하게 되면서, 집(방)에 대한 의미가 단순히 잠자고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자기만족과 개성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지응(문과대 철학11) 씨는 처음으로 갖게 된 ‘내 공간’에 대한 소중함으로 자취방을 꾸미고 살게 됐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주방을 바(bar) 형태로 꾸몄다. 그의 집에선 가끔 친구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홈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이상현 교수는 “20대에게 홈퍼니싱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는 수단이고, 스스로 이것을 가치 있는 소비라고 느끼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의 삶은 더욱 디지털화되겠지만, 반대로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채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서의 ‘방’의 개념은 더 절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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