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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로 승부하라, 6명의 '취업진담'
스토리로 승부하라, 6명의 '취업진담'
  • 고대신문
  • 승인 2015.12.0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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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이 취업현장의 냉혹한 현실 앞에 좌절하고 있다. 본지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6명의 본교 출신 구성원을 만나 그들의 취업스토리를 들어봤다.

▲ 일러스트|주재민 전문기자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3년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우리 곁에 시린 추위가 다가왔다. 하지만 대학생에겐 이 추위가 이미 익숙한지도 모르겠다. 취업시장에는 1년 내내 차가운 경쟁이 존재했다. 이곳에는 경험자의 따뜻한 조언이 필요하다. 그 조언을 구하기 위해 먼저 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신이 꿈꿔온 판사를 하고 있는 이지웅(법학과 04학번) 씨를 만났다. 그는 사법고시 1차부터 3차까지를 한 번에 통과했고 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한 후 30살의 젊은 나이에 판사로 임용됐다.

그는 목표를 가지고 정진할 땐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생활패턴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법고시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지나치게 공부에만 몰두한 나머지 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이대로 가다간 시험의 결과도 제 몸도 망가질 거라고 생각했죠. 다시 예전 규칙적인 생활패턴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어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 나머지 기본적인 것을 잃어버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규칙적인 생활이 목적 달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그는 스스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했다. 그도 직업 선택에 확신을 갖기까지 여러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제가 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는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3년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그는 군대에서 군검찰관, 국가송무담당 장교로 근무했다. “군검찰관은 군에서의 검사와 같고 국가송무담당 장교는 국가를 변호하는 변호사예요.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누군가를 심문하거나 변호하는 검사, 변호사보단 법으로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저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죠.”

마지막으로 그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조바심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가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취업을 1~2년 늦게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조금 늦게 임용된 판사님들로부터 작은 실패 속에서 쌓아온 여러 경험이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판결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들었어요. 요즘 취업하기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그럴수록 당장 주어진 성과를 내기 위해 조바심을 내기보단 차근차근 목표한 것을 이뤄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준비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부딪치세요!”
 

 

“낮은 학점? ‘얘는 뭐했나’ 궁금해 하던데요”

“저 영어 점수도 없고 학점도 3.0이에요.” 대학생 모두가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시대에 이 같은 이력은 오히려 눈에 띌 정도다. 이정호 씨(컴퓨터통신공학부 08학번)는 특별한 스펙 없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현재 KT 통화컨설팅팀에서 기업통신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 생활을 과제만 하며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 그는 대내외 활동을 통해 큰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기를 원했다. 당시 총학과 동아리 활동에만 몰두했던 그의 학점은 2.5였다. “많이 혼났죠. 복학한 뒤에도 동아리 활동하는 저를 보고 부모님이 정신 못 차렸다고 하셨어요.” 학점의 심각성을 깨닫고 학점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던 이정호 씨는 그런 중에도 동아리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복학 후 대한민국 홍보 동아리인 ‘생존경쟁’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기획했다. 동아리 1기 멤버인 서경덕 교수의 지원 아래 런던 올림픽을 맞아 서울 주요 지역에서 플래시몹 행사를 기획했고, 여수 엑스포를 홍보하기 위해 대학생에게 버스를 대절해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그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기획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런던 올림픽을 통해 한국을 홍보하자는 취지로 응원 포스트잇 메시지를 전시하는 활동을 했던 그는 이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 신문사 연락에만 집중했다. “관련 기사를 보고 vj 특공대와 다큐멘터리 3일 등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희의 활동을 취재하고 싶다고요. 그때 아무리 좋은 취지의 행사여도 많이 알리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돼버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꾸준히 대형 프로젝트들을 기획하면서 전공이 본인과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한 그는 기획 관련 분야로의 취업을 희망했다. 그래서 그는 개발자로 지원하지 않고 문과 계열인 소프트웨어 기획 관리에 지원했다. “이 직무에 뽑히게 된 데는 제가 기획했던 많은 활동들이 도움이 됐어요. 동아리 활동을 오래 하고 회장직도 맡았던 덕에 팀원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도 보여 줄 수 있었죠.” 면접에서 여러 활동에 대해 질문을 받았던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몰두했다면 화려한 스펙이 없이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할 때 학점이 좋다면 큰 메리트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좋지 않은 학점도 그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면접관들이 얘는 공부 안하고 뭐 했나 궁금해 하거든요.”
 

 

패션브랜드 론칭한 23세 청년

“멀쩡한 애가 고대 갔는데 공부는 안 하고 사업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많이 신기해하죠.” 23살의 나이, 재학생 신분으로 브랜드 사업을 하는 청년이 있다. 2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인 오경준(문과대 노문12) 씨는 8월부터 ‘FILL IN THE BLANK’라는 패션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3일 혜화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봤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본교에서 ‘CAMPUS CEO’라는 창업 관련 교양 수업을 듣고, 여러 회사에서 인턴 생활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어떤 사업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어요. IT 관련 사업이 널리 퍼진 시장에서 문과생이 해볼 만한 분야는 커머스라고 생각했어요. 물건을 사고, 파는 거요.”

그가 운영하는 사업은 디자이너 브랜드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신진디자이너들이 자기 이름이나 브랜드 이름을 걸어서 시장에 론칭하는 것이다. “일반 쇼핑몰은 만들어진 옷을 사서 파는 구조인 반면, 저희는 직접 디자인한 것을 파는 구조예요.”

그는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저희 브랜드 네임이 ‘FILL IN THE BLANK’이고 슬로건이 ‘Fill me with your message’에요. 함께 논의해볼 만한 메시지를 전달할 제품과 컨셉으로 우리 브랜드를 알리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디자이너 브랜드다보니 매출보다 브랜드 인지도를 쌓는 것에 더 집중하는 회사죠.”

2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고 있지만, 제품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영역을 그가 관리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일을 혼자 담당하며 느끼는 어려움 외에도 그는 대학생 사업가이기에 부딪히는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공장 같은 곳에서는 어리다는 게 치명적이에요. 보통 대학생은 금방 그만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공장 측의 ‘갑질’을 당할 때가 많아요.” 공장에서 대형 거래처의 제품을 먼저 만들다 보니 그의 제품이 계속 뒤로 밀려, 제품 출고가 늦어지기도 했다. 또, 부자재를 늦게 제공하는 작은 실수에 공장 측이 크게 화를 내며 제품 제작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때론 어렵기도 했지만, 그는 사업가로 사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지내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조금 힘들 때도 있는데, 돌이켜보면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거든요.” 그는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창업하기 전에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해요. 우선 자신이 할 사업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비즈니스 경험도 해보면 좋죠.”

 

IT 파고든 두더지 “자신만의 색깔 가지세요”

컴퓨터가 좋아서 대학에 왔다는 이준혁(컴퓨터정보학과 05학번) 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남다른 개성이 있었다. 게임을 주제로 한 카페를 운영하며 20만 명의 회원을 100만 명으로 늘리며 다음카페 랭킹 7위의 영광을 얻었다. 또한 당시의 경험을 살려 대학생 때 커뮤니티 운영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배우고 싶었던 그는 대학 커리큘럼에 실망했다. 검은 화면 위에 알 수 없는 흰 글씨만 바글바글한 개발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결국 휴학을 선택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IT 서비스를 비평하는 블로그를 운영했다.

“너는 서비스의 단점을 꿰차고 있으니 서비스를 잘 만들 것 같다. 기획을 해봐라.” 한 블로그 애독자의 권유로, 그는 1년간 ‘MoLock’을 만들었다. 휴대폰 분실 시 위치 추적과 데이터 원격 관리, 습득자의 얼굴을 전송하는 기술을 가진 이 서비스로 2012년 대한민국 모바일 어워드 우수상을 받았다. 또 2013년에 오픈소스의 자동화를 맡았던 ‘Tripvi’는 대상을, 기획을 담당했던 ‘모두의 주차장’은 우수상을 받았다.

대학 강의에선 과거의 학문을 가르쳐 현실에 뒤처진다고 느꼈다. 이준혁 씨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으려 복학 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웹 개발을 독학했다. 졸업 직전에는 새로운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신입생을 대상으로 HTML/CSS 강의도 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왜 구식을 배워야하는지 자괴감이 들었죠. 그런데 돌아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건 기본이에요. 그 위에 관심분야를 개인적으로 파고 들어가야 발전하는 거죠.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해요.”

현재 그는 캐주얼스텝스라는 해외직구 관련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해외직구의 결제와 배송대행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Snappy라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해외직구 할 때 Snappy를 거쳐서 하는 게 당연해지는 시대를 만들고 싶어요.”

그는 하고 싶은 걸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당부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관심분야를 파고드는 두더지와 같아요. 열정이 얼마나 표출되는지의 차이일 뿐이죠. 여러분이 어떤 두더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전력을 다하세요. 두더지가 되는 건 재미있고, 재미있으면 힘이 나니까요.”

 

 

낮은 곳을 보며 살라는 말에 난민 인권 관심가져

지난 9월 터키 보드룸(Bodrum)의 한 해수욕장에서 세 살배기 꼬마, 아일란 쿠르디(Alan Kurdi)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 사건으로 전 세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고, 난민수용에 대한 정책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난민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다. 난민지원 NGO, 난민인권센터에서 근무하는 류은지(정치외교학과 08학번) 씨를 만나 그 얘기를 들었다.

류은지 씨는 2014년 2월부터 난민인권센터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난민인권센터에서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난민이 난민지위를 인정받는 절차를 돕고 있다. “난민 스스로 난민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는 법률절차를 중점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그는 학교 선배의 영향으로 난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느 선배가 ‘우리가 지금까지 높은 곳만 보며 살아왔으니 이제는 낮은 곳을 보며 살아가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소수인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는 난민에게 법률적인 도움을 주는 재단법인 동천에서 인턴 생활을 마친 후 난민인권센터에 지원했다. 채용절차는 복잡하지 않았다. 이름, 주소, 장래희망이 적힌 자기소개서와 ‘난민인권과 그리고 나’라는 주제의 에세이 한 장이면 충분했다.

류은지 씨는 난민인권센터에서 일하며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직접 느낄 때 가장 힘들다고 했다. “IS의 파리테러 이후 우리나라에도 IS가 난민들 사이에 숨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다는 걱정이 제기되는 상황이에요. 난민에 대한 시선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마치 그들이 테러하러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들은 민간인이고 오히려 IS의 피해자에요. 어려움을 겪고 본국을 떠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을 테러범으로 여기며 배척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에요. 평범하지 않은 일을 겪은 평범한 사람들일뿐인데 말이죠.”

그는 후배들에게 난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난민은 사회적 이슈나 쟁점이 아니에요. 그들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자식이며 그리워하는 자식이 있는 부모예요. 우리 모두가 난민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했으면 합니다.”

 

 

“바꿀 수 없는 조건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모구 안녕? 모구 왔어? 다들 저한테 이렇게 인사해요. 민우회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별칭으로 부르거든요.”

류형림(역사교육과 09학번) 활동가는 성평등한 민주사회를 목표로 1987년 설립된 NGO ‘한국여성민우회’에서 근무 중이다. 2일 망원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그의 삶과 꿈에 대해 들어봤다.

류형림 활동가가 민우회에서 여성운동을 시작한 것은 올해로 3년째다. 그는 전공인 역사교육과는 거리가 있는 ‘페미니즘’에 빠져든 계긴 이렇게 설명했다. “페미니즘이 그동안 해소되지 않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줬어요. ‘여자는 교사가 되는 게 좋지.’ 이런 말들이 묘하게 불쾌했는데 이유를 몰랐거든요.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내가 남자라면 듣지 않았을 말이기에 불쾌했던 거란 걸 알게 된 거죠.”

활동가가 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역사 교사를 꿈꿨던 그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회의감이 들었다. 학생과 소통하는 선생이 되고 싶었지만 임용고시는 그것과 관련 없는 시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우회를 만난 것은 바로 이 즈음이었다. “제가 1학년 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졸업 후에도 계속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민우회의 책읽기 소모임에 가입한 게 시작이었어요.” 이 때 류 씨는 민우회의 소통 방식과 가치관에 매력을 느꼈고, 2013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가로 일하게 됐다.

류 활동가는 2년 연속으로 여성노동팀에서 이슈담당을 맡았다. 작년에는 백화점 서비스직 노동자 근무환경 개선 캠페인을, 올해는 청년 여성 노동자 인터뷰와 책자 발간을 진행했다. “특히 올해 진행한 인터뷰가 좋았어요.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 힘을 얻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뿌듯했죠.”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목소리에 다부진 다짐이 실렸다. “단기적 목표는 새로 배정받은 여성노동팀 상담 업무를 잘 해내는 거에요. 장기적으로는 민우회에서 오래 일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해 노동 문제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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