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 분야에서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빅 데이터’ 및 ‘사물 인터넷’과 더불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의 생활을 많이 바꿔 놓을 기술로 회자 되고 있고, 관련 상품, 기술들이 속속 개발 되어 선을 보이면서 관련 시장과 그 투자 가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가상현실은 말 그대로 (주로 IT 기술을 활용하여) 사실과 비슷한 가짜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좀 더 쉽게 설명 한다면, 명품 시뮬레이터 시스템 및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1960년대 초 MIT에서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스 시스템을 개발 했던 Ivan Sutherland는 유타대학 교수로 재직 하면서 컴퓨터 그래픽스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표현하는 것을 창안하고, 사용자가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터페이스(Window on a World, WoW)로서의 가상현실 기술을 차례차례 실현하게 된다. 이 이후에 지난 50년 간 가상현실의 요소 기술들은 꾸준히 혁신 되어 왔지만, 아직 현재 가상현실의 대중적인 상용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의 이러한 붐이 우리의 생활 가까이로 까지 확산 될 수 있을지는 (앞서 언급한 장밋빛 예측에도 불구하고)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가상현실 시스템은 아래와 같은 시스템적 혹은 기술적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다.

 

‘오감’ 콘텐츠 – 즉 온몸을 다양한 채널(시각, 청각, 촉각, 역감, 냄새 등)로 자극하고 내용을 표현 하는 시뮬레이션 콘텐츠. 콘텐츠는 가상 객체와 그들의 행위 및 오감적 표현, 가상공간에서의 이벤트, 그리고 이들이 모두 총합 조직화 된 가상환경 (Scene)으로 구현 된다.

디스플레이/출력기 – 오감 콘텐츠를 사용자 신체로 자극 하는 각종 출력기기를 의미 한다. (예: HMD 같은 시각 디스플레이, 3차원 사운드 시스템, 촉각 장치, 로봇을 이용한 역감 제시기, 향 발생기, 몸 전체를 흔들어주는 모션 플랫폼 등)

센서/입력기/인식기 – 사용자의 입력을 가상세계에 실제에서와 비슷한 형태로 전달 할 있게 하는 각종 센서 및 인식 알고리즘(예: 3차원 추적기, 손/손가락/모션캡쳐, 얼굴표정 인식 등)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저자에게 가상현실과 PC게임과 같은 3D그래픽 콘텐츠와의 차이에 대해서 묻곤 한다. 기술적으로는 가상현실이 게임 기술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차이는 각 장르가 지향 하는 목적에서 기인한다. 만약 1인칭 슈팅 콘텐츠를 만든다면, 게임과 달리 가상현실에서는 실제와 비슷하게 그 속에서 ‘무서워서 움츠리게 되는’ 그러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그에 필요한 자극정도, 특정 시뮬레이션, 인터액션, 디스플레이 기법들을 디자인하게 될 것이다. 즉, 가상현실의 주요 목적은 사용자로 하여금 그가 콘텐츠 ‘속’에서 공간적 실재감(實在感, Presence)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상현실 연구가들은 결국 Presence가 사용자의 경험과 실제 상황으로의 전이(Transfer)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요 기술들이 어느 정도 까지 발전했는지 알아보자. 우선, 현재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은, 즉 사실적 시각자극 생성기술, 실제인지 인공적 객체인지 모를 정도의 수준으로 영상 생성이 실시간에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외의 기술이나 필요 주변 기기들이 대중화 (즉 마우스 수준의 사용편의성과 경쟁력 있는 가격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갈 길이 남아 있다.

최근 가상현실의 ‘붐’을 일으킨 기술(혹은 상품)은 우선 ‘Oculus Rift’라고 불리는 저렴한 (500달러 이하) 고립 몰입형 머리 장착 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이다. 그 전 세대의 HMD와 비교하여 Oculus Rift의 가격은 파격적으로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500달러는 여전히 조금은 대중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남아 있다. 더 문제인 것은 그 무게가 400g 정도로 아주 가볍지 않고, 그 크기나 육중함이 보통 안경의 4~5배 정도 되며, 파워코드와 디스플레이 케이블을 연결해서 써야 하는 ‘기존’의 가상현실 기술의 대중화의 장벽을 만들었던 그 불편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HMD 기술의 핵심은 초소형 LCD에서 보이는 영상을 광학 시스템을 (즉 렌즈들) 통하여 왜곡 없이 넓은 시야각으로 확대 하는 기술이다. Oculus Rift는 간단한 광학계를 이용하여 가격을 낮추었으나 그 영상의 질과 시야각이 그리 좋지 않다. 이어서 출시 된 삼성 기어, Google 카드보드 등도 값싼 광학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끼워 해결하여 가격을 더더욱 낮추긴 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사용성 문제는 해결되고 있지 않다.

입체 영상을 제시하는 경우 현재 거의 모든 디스플레이 시스템들(스마트 TV, HMD 등 포함)은 각기 다른 2D 좌우 영상을 좌우 눈에 따로 제시하여 입체의 느낌을 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생리학적으로 어지러움을 유발하게 돼 있다. 최근에는 공간적으로 직접적인 허상을 생성하는 홀로그래피나 Light Field 기술(예: Microsoft Hololens)이 선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완전 상용화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이 새로운 디스플레이들도 상기한 사용성 문제를 똑같이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청각 자극의 경우 3차원 공간 사운드 시스템은 그 기술이 어느 정도 성숙돼있으나 그 활용도가 실제로 높은 것은 아니어서 그 기술의 임팩트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 같다. 햅틱/촉각기술은 실제적인 인터액션을 제공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자극 전달 기기(예: 로봇 매커니즘, 모션 플랫폼 등)를 쉽게 설치해 사용하는 것이 아직 불편하고, 그 가격 또한 비싼 편이다. 후각 자극의 경우 어느 냄새나 합성할 수 있게 하는 시각의 3원소에 해당 하는 구성 요소가 없어서 다양한 냄새를 발생시키기 어렵고, 한번 공중에 뿌려진 향의 여운이 없어지려면 시간이 걸려 그의 적용에 아직 어려움이 많다. 마지막으로 미각은 예를 들면 혀에 약한 전기 자극을 통한 자극 제시기가 연구되고 있지만, 그 실용화는 아직 매우 먼 것 같다.

한편, 센싱의 경우, 데스크탑에서의 마우스와 같이 기본적으로 공간이 3차원인 가상환경에서는 x, y, z 축으로의 선형 운동, 그리고 회전을 추적 할 수 있는 ‘트래커’ 가 가장 중요한 센서이다. 최근 자이로에 기반한 회전 트래커는 그 가격이 낮아지고 정확도가 매우 좋아서 HMD나 스마트폰에 내장 되고 있다. Microsoft Kinect 등과 같은 깊이 센서, Leap / Google Soli등과 같은 정교한 손가락 센싱, 그리고 그간 혁신을 거듭하여 눈부시기 발전한 컴퓨터 비젼 기술(얼굴 인식, 실시간 모션 캡쳐)과 인공지능 인식 알고리즘(표정, 제스쳐 인식 등)에 의해서 사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해석하는 것은 가격이나 정확도가 고급의 가상현실 콘텐츠 구축에 충분히 활용할 만큼 성숙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 기술로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기술을 들 수 있다. 영화가 20세기 초에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사용하기 쉬운 카메라를 통해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된 것이 배경에 있었다. 가상현실도 마찬가지인데, 비슷한 기술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게임 콘텐츠 저작도구들이 속속 가상/혼합현실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고, 이러한 저작도구들이 무료배포를 통해 확산 되고 있어서, 이제는 초보자들도 가상현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다.

요약하면 현재의 기술이나 그 실용화 수준에서는 소위 오감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가상현실이 가능하지 않고 더욱이 사용성이나 가격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나 오감을 모두 동원 하지 않고서도 현재 실용적으로 적용가능한 기술만을 가지고도 가상현실의 쓰임새는 여러 분야에서 이미 검증되고 있다. 각종 정신질환(예, 공포증, 중독증, 정신분열) 치료, 각종 교육이나 훈련, 원격 현실기반 회의나 가상 여행, 몰입형 게임 등이 그런 적용 성공사례들이다. 즉, 꼭 오감을 모두 동원 하지 않더라도 해당 적용 분야에서 중요한 콘텐츠 요소에 집중하여 그 실제감(Reality)을 최대한 높이고, 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사용자가 실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목표하는 효과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서 가상현실 기술의 대중화를 더욱 가속화 할 기술로 360 몰입형 비디오를 꼽을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시각적 경험을 몰입화 한 형태의 가상현실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만으로도 매우 ‘Compelling’ 한 경험감 제시가 가능하다. 여러 회사에서 360 비디오를 획득 저장할 수 있는 카메라 상품을 내놓고 있다. 관련 콘텐츠도 Youtube, Facebook등을 통해 대중들에 의해 공유 되고, 이들을 더욱 발전될 HMD 등으로 감상 할 수 있는 Eco 시스템이 곧 구축 될 것 같다. 이러한 움직임은 가상현실 관련 시장을 공고하게 만들고 기타 기술의 발전을 가속화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단순 360도 비디오에 3D 사운드, 입체/햅틱적 상호작용 등이 가능한 형태로 점진적으로 진화)

앞으로 가속화 될 가상현실의 기술 혁신, 안정화 및 대중화가 (그리고 또한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인공지능이나 상호작용 기술들이 함께) 가지고 오게 될 가장 매력적인 미래의 그림은 천리안, 카카오톡, 네트워크 PC 게임을 넘어서는 내가 육체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음 차원의 ‘3D 실감 공간’일 것 같다. 음악가처럼 직접 악기를 다루면서 즐길 수 없는 글쓴이는 가상공간에서 (예를 들면 가상 카네기홀에서) 컴퓨터 음악기술을 빌려 피아니스트로 빙의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 하고 있다. 이러한 가상공간은 방이 3개 밖에 없는 우리 집의 제4의 방으로서 자연스러운 생활문화공간이 될 것이고, 이런 면에서 가상현실은 앞으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인터넷 이후 또 한 차례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다.

김정현 본교 교수·컴퓨터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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