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상현실 기술은 머리에 기기를 쓰는 형태인 HMD(Head Mounted Display)를 이용해 시각적인 가상현실을 볼 정도로 발전했다. 기술이 발전해 영화 <매트릭스>처럼 가상현실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황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가상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김현택(문과대 심리학과) 교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융합연구실 장훈 부연구위원, 정동훈(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에게 가상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모두 가상현실은 분명 기술의 긍정적인 발전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고려해야 할 쟁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가상현실 체험으로 멀미를 느끼기도

가상현실을 체험하는데 있어 멀미와 같은 사이버 멀미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발견된다. VR기기 체험장에서는 주의사항에 멀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김현택 교수는 “사이버 멀미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감각갈등이론(sensory conflict theory)은 사이버 멀미의 원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시각 기관으로 입력되는 정보와 평형감각, 중력, 가속도에 반응하는 전정감각 정보가 불일치해 멀미 증상이 일어난다. 즉, 두 눈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시각 정보를 받고 있지만 전정감각을 통해 받는 정보는 ‘당신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감각갈등’이 멀미를 일으킨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자세불안정이론(postural instability theory)도 사이버 멀미의 원인 중 하나로 제기된다. 생태심리학적 관점에서 기인한 이 이론은 ‘동물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자하며 이것이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가상현실은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특수한 환경이어서 사용자가 가상환경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습득하기 전 까지 사이버멀미가 지속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이버 멀미 증상은 시각과  전정감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의 감각도 증상의 정도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상환경을 경험할 때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정보도 함께 제시된다면 사용자는 가상현실에 훨씬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이로 인해 사이버멀미를 더 심하게 경험할 수도 있다.

 

▲ 김예진 일러스트 전문기자

가상현실의 심리적 영향

가상현실 구현 수준의 비약적인 발전은 심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현택 교수는 “이미 가상현실 속의 전쟁이나 포르노가 사용자들에게 실제와 같은 경험을 준다는 연구 발표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실처럼 느껴지는 가상현실 속 극한 상황은 가상 체험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우울장애, 공포증 등을 야기할 수 있다.

인터넷보다 현실성 있는 가상현실을 이용한 비윤리적 행위는 도덕적 수치심을 무뎌지게 할 수 있다. 2011년 김정환 씨의 ‘실시간 상호작용 기술의 ‘가상현실치료’ 적용에 관한 연구’에서는 가상현실과 실재환경간의 윤리적 전환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비대면적 특성을 가진 가상현실에서의 자유로운 행동은 현재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발생하는 비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HMD에 대한 정책적·법적 논의 필요

가상현실 기기를 사용하면 주변인식에 대한 주의력이 떨어질 수 있다. 운전 중 DMB 시청 금지에 관련된 법적 논의가 있었듯, HDM 사용도 법적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판 중인 머리에 쓰는 가상현실 기기 HMD는 투시 착용형 디스플레이와 몰입형 디스플레이가 일반적이다. 투시 착용형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면 눈앞의 현실 정보와 HMD를 통해 보이는 가상물 정보 두 가지를 모두 보게 돼 주의력이 분산된다. 운전 중 DMB 시청을 법적으로 금지한 이유도 주의력 분산이다. 만취 상태인 혈중알코올농도 0.1%일 경우 전방주시율은 72%다. DMB를 시청하면서 운전시 전방주시율은 50%로 만취 상태 운전을 할 때보다 위험하다. 정동훈 교수는 “운전 중 DMB와 같은 영상표시장치의 이용을 금하듯이, 투시 착용형 HMD에 대한 정책적, 법적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촬영 기능이 있는 HMD는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법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있어서 관련 법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개인정보 보호법에 영상정보처리기기는 ‘일정한 공간에 지속적으로 설치되어 사람 또는 사물의 영상 등을 촬영하거나 이를 유·무선망을 통하여 전송하는 장치’를 의미한다. 정동훈 교수는 “머리에 쓰는 HMD는 고정 설치돼 지속적으로 일정한 공간을 촬영하는 기기가 아니기에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의 대상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라며 “무단 촬영으로 사생활 및 초상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HMD에서도 발생할 수 있어 법률보완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가상현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많아진다. 가상현실 체험 자체로 메스꺼움을 느끼고, 가상현실에서 생겨나는 정신적인 문제들이 생겨날 수 있다.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 단계에서 기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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