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면서

법적 책임, 역사 교육 언급 안 돼

아베, 강제연행 사실까지 부인

"청년이 관심 갖고 기억해야"

 

▲ 383개 시민단체와 개인 335명은 14일 프레스센터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을 발족했다. 사진ㅣ조현제 기자 aleph@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에 대한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 하에 일어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하는 재단에 10억 엔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합의안을 두고 국내외는 찬반양론으로 들끓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재차 발표되자 법적 책임 인정 등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내용이 누락된 굴욕적인 합의라는 여론이 거세졌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군위안소가 설치된 지 80여 년, 관련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30년 가까이 흘렀다. ‘할머니에게 명예와 인권을’이라는 외침은 과연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가 밝혀지기까지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드러난 것은 1988년 4월 열린 국제세미나 ‘여성과 관광문화’에서다.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진상규명과 사죄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일본 정부는 국가 차원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김학순(1991년 당시 67세)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국내 거주자로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했다. 한국 정부는 같은 해 9월 ‘정신대 실태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관련 자료 조사에 나섰고, 한국 정부와 역사학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모집과 이송 과정에서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내용의 증거자료를 여럿 찾아냈다. 1992년 1월 11일 아사히신문이 이를 보도하는 등 공론화가 가속되자 가토 고이치(加東康一) 당시 관방장관은 “일본군이 ‘위안부’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은 ‘고노 담화’를 통해 강제연행 사실까지 인정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국가 차원의 조사를 진행하고 아시아여성기금을 마련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지만 2006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집권 이후 강제연행 사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2007년 3월 16일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일본군이나 정부에 의한 강제 연행을 나타내는 내용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으며 2014년 6월 20일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가 한국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발표된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일본 중의원에 제출했다.

 

법적인 책임 없다는 일본 정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윤미향)를 비롯한 지원 단체들은 일본 정부에게 범죄 인정, 진상 규명, 일본 국회 결의를 통한 사죄, 법적 배상, 역사 교과서 기록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해 국가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명확히 인정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은 물론 이러한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만 질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법적 책임에 관한 피해자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해소됐기 때문에 이행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근거로 한일청구권 협정 제2조 3항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와 제2조 1항의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조 a(한일간 민사적·재정적 청구권)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청구권 관련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학 전문가들은 해당 협정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 지배 문제 책임이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강병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65년 협정 당시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에 관한 청구권은 염두에 두지 않았고 일본 측의 추후행위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며 “결국 손해배상 청구권은 남아있고, 법적 책임은 해결되지 않은 셈”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법원도 2012년 5월 24일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일본 정부가 반복적인 사죄를 하고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의원 168명은 역사적 책임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교육을 이행할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발적인 사고에서는 일회적인 사죄만으로 충분하지만 국가범죄와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에서는 반복적인 사죄, 책임 인정, 보상 제공, 재발 방지의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의 관심과 기억 필요

대학생들은 개인 혹은 단체로 활동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자체 모금으로 2014년 이화여대 앞과 2015년 제주에 평화비를 세웠다. 또한, 작년 12월 30일부터 매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비 근처에서 밤샘농성을 벌이며 활동해왔다. 밤샘농성에 참여했던 ‘대학생 겨레하나’ 소속 김혜빈(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밀화학과14) 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민으로서 알아야하는 역사 중 하나라고 생각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참여 중인 대학생들은 특히 대학생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미래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올바르게 해결되는지 지켜봐야한다는 것이다. 전국 8개 지역에서 활동 중인 대학생 단체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표 김샘(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11) 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전쟁범죄”라며 “미래를 살아갈 대학생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관심을 가진 대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윤인진(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의식을 가진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안부’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라며 “또한, 한일협상의 절차와 결과에 대해 올바르게 아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지영 교육팀장은 “청년들이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방문하거나 7대 요구안에 대해 명확하게 알아보는 등의 방법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올바르게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