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행복은 적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부인과 딸들을 품 안에 끌어안는 것이다.” 칭기즈칸(Chingiz Khan)이 남긴말은 수 세기간 이어졌다. 말이 달리는 곳에서도, 전차가 진격하는 곳에서도 언제나 여성은 전리품처럼 착취당했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성적인 폭력과 기억의 억압에 맞서야 했다.

수많은 영웅의 이야기를 탄생시킨 전쟁이라는 폭력 아래 여성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때로는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로, 때로는 수치스러운 상처로 기억되는 그들은 전시에도 전후에도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 2015년 12월 30일 한일 정부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발표된 이후 첫 수요시위가 열렸다.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뒤로 합의 내용을 비판하는 피켓이 보인다. 사진| 서동재 기자 awe@kunews.ac.kr

무기가 된 여성 폭력

지난 12월 29일 이슬람국가(IS)의 교리 ‘파트와’가 공개됐다. 그곳에는 ‘생포한 여성을 노예로 삼아 성폭행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비슷한 시기,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야지디족 여성이 IS에 끌려가 3개월간 성 노예로 살았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이에 UN 안보리는 IS의 행위를 대량학살로 규정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기로 했다.

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곳에선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Titus Livius Patavinus)는 자신의 저서 <로마건국사>를 통해 “새로운 권력이 탄생하거나 붕괴하는 전쟁 뒤에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 7만 명에서 25만명 정도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여성인권 신장이 지속적으로 담론화되면서 전시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는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2015년 8월 국제앰네스티는 UN 평화유지군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3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처럼 전시 여성폭력에대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은 시급해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전쟁 속 여성의 피해가 계속되는 이유로 ‘남성우월주의’와 ‘강간의 무기화’를 꼽았다. 평화여성회 안김정애 대표는 전시 여성피해를 남성 중심적 사고의 연장선에서 해석했다. 그는 “사회적 인식에서국가와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한 여성은 비주체적인 대상으로 비춰지고 있다”며 “전쟁중 패자의 여성을 소유하는 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 피해가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윤미향, 정대협) 이지영 교육팀장은 전시 여성폭력이 전쟁전략으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그는 “21세기들어 일어나는 강간은 성욕을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종 말살과 패배감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며 “강간을 통해 민간인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수치심을 주는등 여성이 전쟁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2013년 영국 리스크 평가 전문 업체 Maplecroft는 오늘날까지도 전시 여성 성폭력이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험지수를 공개했다.일러스트ㅣ김범석 기자 conan@

진상규명 가로막는 사회적 시선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침묵하도록 강요당하거나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로만 인식되는 등 2차 피해를 겪는 것이다.

전시 성폭력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것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부터다. 1992년 발발된 당시 전쟁에서 5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했고, 이에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는 전쟁 중 성폭력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피해자들은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공개증언을 꺼리고 있다. 사스키아 비에링가(Saskia E. Wieringa, 암스테르담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2000년에 이뤄진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도 증인들은 모두 가면을 쓰거나 스크린 뒤에서 발언했다”며 “성적인 피해를 당했던 경험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로 기억되는 만큼 피해자와 그 대변인들을 비판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피해자의 증언을 막고 관행을 유지시켜 전시 성범죄 문제의 공론화를 늦추기도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평화여성회 안김정애 대표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이 있고 나서야 ‘위안부’ 논의가 진전될 수 있었다”며 “2008년 정대협에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건립하려 했을 때 광복회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저지하는 등 여전히 문제는 이어지고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연세대 젠더연구소 김엘리 연구위원은 여성이 전쟁의 주요 피해자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성을 단순히 전쟁의 피해자로만 인식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가 전쟁의 참혹함을 그려내기 위한 도구로 여성을 활용하고 있지 않은 지 의심해야 한다”며 “기존의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을 주체로서 인식하고, 전쟁의 폭력을 강인하게 견뎌낸 의지적 행위자로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적·역사적 책임 분명히 해야

국제적 조약은 강제력이 없어 전시 여성가해자를 직접 문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이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연세대 젠더연구소 김엘리 연구위원은 비폭력적인 군 문화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군인이 ‘갈등을 조정하고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를 실행하는 조직’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군인은 남성성을 지닌 폭력적인 집단’이라는 통념을 벗어나는 사고가 필요하다”며 “안보는 군사활동으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므로 군사활동에 인권 개념을 도입하는 등 비폭력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국들이 스스로 강제성을 띤 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독일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진행한 뒤 1946년 ‘나치 전범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전쟁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졌다”며 “지금도 분쟁은 발발하는데, 전시여성 성폭행 문제도 당사자들이 해결할 의지를 갖고 법과 제도를 갖춰야 할 것”이라 말했다.

UN 인권피해자권리장전은 제22조(만족)와 제2 3조(재발방지의 보증) 항에서 ‘법적 책임’과 동시에 ‘역사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법적으로 범죄에 대한 책임을지도록 하는 것과 함께, 교육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조성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하는 셈이다.

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현세대는 역사를 알려야 할 책임이 있고, 후세대는 그것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정대협 이지영 교육팀장 또한 “독일은 교과과정에서 나치에 대한 교육과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방문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며 “가해국 스스로가 범죄행위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추후 유사범죄 발생을 막는 제1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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