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는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사진ㅣ조현제 기자 aleph@

국내에는 20만 여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에 관한 정당한 권리와 작업 현장에서의 인격적인 대우를 주장해왔다. 현재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내세우며 이주노동자들의 정주화를 제한하고, 취업비자를 받아 단기간동안 체류하다 귀국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 이주노동자들은 4년 10개월까지만 근무하다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체류 중에는 고용주의 승인이 있어야만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고, 그 횟수도 3회로 제한된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 인력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국내 중소 영세사업장의 인력 수요와 외국인들의 취업수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2009년과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5만 8000개,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는 50만 2000명에 이른다. 오경석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소장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축산업, 건설업, 서비스업 분야의 기반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등록 신분 양산하는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과 그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를테면 임금지급, 근로시간을 비롯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조건을 위반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한다거나,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폭행, 건강 악화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가 없이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 신분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대표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게 될 사업장의 작업 환경과 노사관계 등에 대해 알지 못하고 오는데도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업장을 이탈했거나 체류 기간을 초과해 미등록 신분이 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권리 침해에 더욱 취약하다. 미등록 신분이 밝혀질 것에 대한 우려로 법적 대응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북외국인근로자센터 김아성 팀장은 “고용주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거나 근무현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단기간 동안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하고 짧은 단위로 인력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한다. 현행법에 따라 외국인 인력은 약 5년을 주기로 교체돼,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전환할 필요도 없고 노동조합 등을 통해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도 적어 유리하다. 김형진 김해이주민인권센터 대표는 “외국인 노동력을 착취해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열악한 고용환경이 지속돼 기업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는 교육, 보건 등에서 제도적 지원을 받기 어렵다. 부모의 신분이 자녀의 출생신고 과정에서 노출될 수 있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은 체류 자격에 관계없이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교육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이주아동의 입학을 거부할 수 있고, 입학하는 경우에도 한국어 학습을 위한 별도의 도움이 제공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0년 이주아동 교육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아동의 학교 이탈률은 40%에 달했다. 단속으로 인한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자녀의 등교나 외출을 금지하게 되면 아동의 교육단절로 이어지기도 한다. 석원정 대표는 “의무교육을 받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경우 체포 및 추방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부모의 단속에서 비롯되는 공포는 아동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의 보호 밖에 있는 농축산업 근로자

농업, 어업, 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는 법적으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의 적용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농어촌 지역에서는 연장근무 수당이나 별도의 휴게시간이 제공되지 않은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이뤄진다. 김진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기준법 63조는 농번기와 농한기의 구별이 명확해 근로시간을 규정하기 어려웠던 당시대 농촌의 현실을 반영했던 것”이라며 “지금은 시설농업 등이 발달해 연중 노동력이 사용되기 때문에 해당 조항은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농어촌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대우가 개선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농어촌의 노동력과 생산성 확보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혹독한 근로조건과 인권침해에 견디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법무부는 2012년 8월 지정 취소를 단행했다. 현재 농어촌에는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많지만, 이들 역시 농어촌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김진섭 연구위원은 “농어촌의 열악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외국인 노동자 이탈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 인력까지도 기피하는 사업장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권리협약, 25년 째 비준 안 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제도권 안으로 포용해야 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순환정책에 기반한 고용허가제를 유지한다고 해도, 단속에는 한계가 있어 장기체류자의 사회 통합과 적응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공익인권법센터 공감 황필규 변호사는 “미등록 신분이더라도 장기 거주자들을 제도적으로 포용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사회 안정을 꾀할 수 있고 범죄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는 이러한 이유로 미등록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는 정책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오경석 소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세수를 늘리고 단속 및 강제추방 비용의 상당 부분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 총회는 1990년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자국민과 동등하게 보호하기 위해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가 이를 비준할 경우 고용허가제의 대폭적 개정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이주노동자 자녀의 출생등록 및 국적 취득 허용 △사회복지 및 보건에 관한 지원 제공 등에 있어서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국내법과 충돌한다. 우삼열 소장은 “협약을 비준하게 되면 이주노동자에게 지금처럼 강제적 노동을 시킬 수 없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해야 해 정부는 협약 체결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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