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는 ‘고려대학교 인권센터’라는 가상 페이지가 있다. 이 페이지는 2014년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주도로 학내 인권센터의 설립을 제안하고 인권 의제에 대한 관심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다. 교수의 제자 성폭행 사건, 여성혐오 발언, 시간강사 해고, 성소수자 포스터 훼손 등 대학가에선 다양한 인권문제가 발생하지만, 인권문제를 주력해서 다루는 기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전국에 인권센터가 존재하는 대학은 서울대, 중앙대, 카이스트, 충남대, 전남대로 총 5곳뿐이다.

대학에서의 인권교육도 마찬가지로 생소한 개념이다. 성희롱·성폭력 예방 강의는 의무과정이나 온라인 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반면, ‘인권 교육’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실제로 국내 대학 중 절반 정도가 인권 관련 교과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 양천수(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학에서 인권이 교육되는 경우에도 법학 영역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고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그래픽 | 김선희 기자


대학, 인권교육의 마지막 보루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나 교육청의 정책의 일환으로 인권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도덕, 사회 등 특정 교과에만 치우쳐 있고 방송과 특강을 통한 일회적인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학에서 인권교육을 체계화해 중등교육과정에서 충분히 학습하지 못한 인권감수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성상(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의무교육 과정이 수능과 교과지식 습득에만 집중된 점을 고려하면, 대학은 공식적인 교육기관 중에서 개인이 인권을 배우고,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고 말했다.

인권교육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았지만 대학가에서는 크게 확대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인권’이라는 의제가 이념적, 정치적으로 해석되면서 인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지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양천수 교수는 “인권이 특정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공감대가 부족한 것 같다”며 “인권 의제를 정치화하면 적대세력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구정화(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을 이념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 때문에 다양한 학문의 영역에 인권이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무화에 대해선 찬반 엇갈려

유엔은 제2차 세계인권교육프로그램 행동계획(2010~2014)에서 각 대학이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계획에는 ‘대학은 차별철폐, 지속가능한 개발 및 다문화의 이해 등과 같은 현재 인권쟁점에 관한 지식을 생성할 책임을 갖는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 김철홍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과장은 “UN은 대학에서 인권교육을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사항으로 보고 있다”며 “인권교육법 제정을 통해 유엔 권고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교육법’은 국가와 지자체에 인권교육을 제공할 책무를 부여해 국민이 인권을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 교육의 의무화를 반대하는 입장도 제기된다. 최기자 서울대 인권교육·사업부 전문위원은 “필수교양 등을 통해 인권교육을 강제하는 것도 인격에 반할 수 있다”며 “인권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구성원에게 확산시키는 것이 먼저다”고 말했다. 단계적인 접근을 통해 자율적인 교육으로 점차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세희 교수는 “대학에서의 인권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전까지는 의무화를 통해 학내 구성원의 인식을 제고한 뒤, 점차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권을 반드시 별도의 과목으로 다룰 필요 없이 경영, 과학기술, 종교, 예술 등 다양한 영역 속에 인권 의제와 해결방향을 접목해 교육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천수 교수는 “현대 사회가 다원화되고 전문화될수록 모든 영역에서 인권은 필수불가결하다”며 “예를 들면 공학인권교육, 예술인권교육 등 교과목을 신설하거나, 각 학문에 맞춰진 교수법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 목소리에 힘 실어줄 인권기구

인권교육은 참여와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인권은 지식적인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구정화 교수는 “강단에서 일방성, 지시성, 또는 폭력성을 이용하면 ‘인권을 통한 교육’에 어긋난다”고 짚었다. UN은 인권교육을 △인권에 관한 교육 △인권을 위한 교육 △인권을 통한 교육으로 분류하고 있다. ‘인권을 통한 교육’이란 교육의 과정에서도 학습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을 말한다. 본교에 개설된 핵심교양인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차별금지법’과 ‘사회적 이슈와 인권’을 가르치는 이준일(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인권을 통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한 발표와 토론으로 지식을 전하기보다 참여의 공간을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수업 중 교수자와 학생이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면 진정한 인권교육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원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역시 강조되고 있다. 유성상 교수는 “강단에서 교수자와 학생 사이에는 권력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교수자는 인권 친화적인 교육환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권력관계를 이용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주체”라고 말했다. 학생과 교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은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과정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학생의 지위로는 인권 문제에 개인적 차원에서 대응하거나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인권 침해에 대한 체계적으로 대응 방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학내 인권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으로 학내 인권기구가 주목받고 있다. 홍성수(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인권기구는 학생과 교원을 아우르는 모든 구성원에 대한 인권교육과 인권침해 구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경우 2012년 인권센터가 설립되기 이전부터 인권관련 상담 수요가 많아, 성희롱·성폭력 상담소 가 주도적으로 인권기구의 필요성을 학교 당국에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서울대 인권센터 최기자 전문위원은 “학생과 함께하는 인권주관, 인권포럼,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연구공모전 등을 통해 학내 구성원의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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